기록의 시작
난임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21년 9월 무렵의 일이었다. 20년 여름부터 시험관을 시작했으니 1년쯤 지났을 때였는데, 반복되는 실패로 몸도 마음도 엄청 지쳐있을 때였다. 한 회차가 끝날 때마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는데 유독 밤에 잠이 안오는 날이 있었다. 그래서 지난 일들을 기억을 더듬어 가며 기록해 내가기 시작했다.
나는 오랫동안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 즈음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글쓰기는 돈벌이의 수단이 되어서 더 이상 글쓰기에 대한 설렘이나 감흥은 없었다. 그치만 그날 밤에 왜 갑자기 난임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던건지, 지금 생각해도 참 이상한 일이었다.
난임을 기록해야 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 흔한 주사기 사진도 남아 있지 않다. 즐거운 일도 기록의 대상이 되면 즐거움이 감소하는데 하물며 그 힘든 난임 치료의 과정을 기록한다니, 상상도 하지 못 한 일이었다. 주사기 사진? 절대 찍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기록이 하고 싶어지다니.
아마 그 때 나는 글쓰기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힘듦을 남편조차 온전히 이해해주지 못 하는데, 그렇다고 마음 속에 쌓아 놓고 있기에는 터질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쨌든 그렇게 기록이 시작되었다.
이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미리 결과를 이야기하자면, 나는 7번의 채취와 9번의 이식 끝에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총 3개의 병원, 4명의 담당의를 거쳐갔고 pgta, era, prp 등 할 수 있는 모든 검사와 시술을 경험했다.
힘들어서 시작한 기록을, 한동안 중단했던 기록을, 아이를 출산하고 다시 시작하는 이유는 나처럼 힘든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혹은 자신과 비슷한 케이스를 찾아 인터넷 카페 여기저기를 헤매는 누군가에게 약간의 정보라도 주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시험관 시술 횟수가 10번을 넘어가고, 20번을 향해 달려갈 때 나는 너무 포기하고 싶었다. 실제로 시험관 시술을 그만두어야하나 진지하게 고민할 때쯤 아이가 찾아왔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