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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히 May 07. 2024

난임의 조짐들

내 몸의 시그널과 진단


난임 진단


나는 서른 넷에 난임을 진단 받았다. 


사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좋아하고 서로가 좋은 부모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딱히 아이를 갖지 않을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남편은 조금 더 경제적으로 안정이 된 상황에서 아이를 기르고 싶었고 나는 내 학위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떻게 아이보다 학위가 우선순위가 될 수 있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아이 때문에 학위가 늦어진다면 아이를 원망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하고 싶다. 서른 살의 나는, 우리 부부는 왜 그렇게 용기가 없었을까. 


서른 셋의 나이를 꼬박 다 채우고 졸업이 결정되었다. 곧바로 본격적인 임신 시도에 들어간 우리 부부는 20년 2월 자연임신이라는 기적(지금으로선 기적이었던 것 같다)을 맞이했다. 생리를 안 해서 이상하다, 하던 찰나에 본능적인 느낌이 왔다. 집 앞 약국에서 테스터기를 사다 테스트를 해보고 얼떨떨한 남편과 마주 앉아 떡볶이를 먹던 풍경이 너무 생생해서 슬프다. 잠깐 기뻤던 마음이 무안하게 테스터기는 점점 흐려졌고 화유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래, 화학적 유산은 유산으로도 안 친다잖아. 마음을 다잡고 다음달 부터 본격적으로 산부인과에 다니며 임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임신은 그리 쉽지 않았다. 내 몸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낀 건 그 무렵이었다. 자연임신을 준비하면 산부인과에서 배란일을 확인해주고 숙제라는 걸 내준다. 이 날짜를 확정하기 위해 배란 예상일 앞뒤로 병원에 가서 난자가 잘 크고 있는지 체크도 하고 배란 뒤에는 배란이 잘 되었는지를 확인한다. 


그런데 나는 난자가 너무 느리게 커서 난자를 키우는 주사를 몇 차례 맞았는데, 이 주사에도 난자가 안 자라는 게 아닌가. 게다가 배란이 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선생님 표현에 따르면 힘있게 팡, 배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배란이 되다가 물혹이 생겨버리기 일쑤였다. 물혹이 생기면 배란이 안 되었을 수도 있다는 말에 얼마나 좌절했던지. 배란 중 물혹이 생기는 일은 흔하고 대부분은 생리와 같이 빠져나간다고 해서 안심하긴 했는데 그것도 몇 번 반복이 되니 마음에 조바심이 일기 시작했다. 


자연임신을 시도한 뒤 1년이 지나도 아이가 안 생기면 난임 병원으로 옮긴다고 하던데 나는 도저히 1년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난임병원에 발을 내딛고 말았다. 



설마 내가?


대부분의 난임환자가 그러하듯, 나도 내가 난임환자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다. 


스물 살 이후로 나는 수영, 요가, 스쿼시 따위의 운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었다. (물론 잘 하진 못 한다. 꾸준한 것과 잘 하는 것은... 생각보다 관계가 깊지 않다;) 식습관이야 나쁘긴 하지만 술, 담배 중에 한 가지만 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운동을 하니까 스스로 당연히 건강할 거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몸은 엉망진창이었다. 


난임병원을 선택했던 건 자궁 내막종이 마음에 걸려서였다. 나는 2cm 짜리 자궁 내막종을 두 개 가지고 있었고 이미 꽤 오랜 시간 추적 관찰을 해온 터였다. 임신이 안 된다면 요녀석들 때문이겠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는 상태였다. 


난임병원에 가면 가장 먼저 하는 검사가 나팔관조영술이라는 검사다. 나팔관이 제대로 뚫려 있는지 액체를 넣고 엑스레이를 찍어서 확인하는 검사인데 정상이면 별로 안아프지만 막혀있으면 엄청 아프다. 종종 액체를 세게 넣어서(?) 막힌 나팔관을 뚫기도 한다는데 (이건 사실 여부는 잘 모르겠다) 상상도 하기 싫다. 엄청 아플 거다. 


검사 결과 나는 오른쪽 나팔관이 막혀 있었고 수종이 있었다. 나팔관에 물혹 같은 게 생기면 그걸 수종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물이 차 있는 거라 착상을 방해해서 난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는 왼쪽에는 난소랑 유착된 자궁 내막종이 있고 오른쪽 나팔관은 막혀 있는 데다가 수종이 달려 있는, 총체적 난국이었던 셈이다. 



어쩌면 그때부터


난임 치료는 난임의 원인을 찾아가는, 아주 고단한 과정이다. 내막종 수술과 난관 수종 수술 후에도 나는 꽤 오랫동안 난임 치료에 실패했다. 그러니까 내막종과 난관 수종이 난임의 절대적인 원인은 아니었던 거다. 그럼에도 어쩌면 그때부터 인가, 싶은 찝찝한 순간들이 있다. 


나는 생리는 규칙적으로 하는 편이었지만 대학원에 다니면서 몇 번의 하혈을 한 경험이 있다. 생리와 헷갈릴 만큼의 피는 아니었고 오백원 짜리 동전 크기의 피가 속옷에 묻어나는 정도였는데 기억하는 바로는 두 번 정도 있었던 것 같다. 적은 양의 부정출혈 때문에 병원을 가기엔 나는 너무 어려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 했고 건강을 지나치게 등한시했다. 


그리고 또 언젠가는 대학원 수업 중에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쓰러진 적이 있었다. 수업 시간이 길어져서 중간 중간 자유롭게 화장실을 다녀오는 분위기였길래 망정이지, 정말 두고두고 회자될 뻔했다... 배가 아프니 화장실 신호인줄 알고 화장실로 달려갔으나 별다른 소득이 없었고 그 와중에 아픈 배는 맹장 위치 언저리였다. 학교에서 근무하시는 미화 아주머니들의 '맹장 아닌가?' 걱정해주시는 말을 들으니 더 아픈 것만 같았고 결국 난 화장실 앞에 드러 누워 119에 실려가고 말았다. 얼마나 아팠는지 실려가는 내내 소리 질러서 구급대원에게 혼나고 병원 의사는 내가 도착하자 마자 간호사에게 진정제와 진통제 부터 주라고 했다. 그리곤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역시, 진통제 만세. 


맹장은 당연히 아니었고, 병원에서는 자궁외 임신을 의심했지만 아무리 돌이켜봐도 임신을 했을 이벤트가 없었고, 생리혈이 역류해서 생긴 통증 같다는 것이 의사의  진단이었다. 생리혈이 역류를 한다니, 아니 도대체 사람 뱃속은 어디까지 연결이 되어 있다는 말인가.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더 어이 없는 건 수액을 다 맞을 즈음 정말로 예정에 없던 생리가 시작되어 버렸다. 자궁내막종의 원인 중 하나가 생리혈 역류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 후로도 한참 뒤였다. 


사실 미리 알았다고 해서 난관 수종이나 내막종이 생기는 걸 막을 수는 없었겠지만, 후회되는 건 있다. 평소와 다른 일이 벌어졌다면 반드시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너무 둔감했던 거. 굴욕의자에 앉기 싫어서, 남자 의사가 싫어서 등등의 이유로 산부인과에 안 간 거. 조금 일찍 병원에 찾아갔더라면 치료를 일찍 시작하든가 혹은 아이를 더 일찍 갖기 위해 노력을 했을 텐데.. 뭐 이제와서 후회한들 되돌릴 순 없다. 그러니 아주 조금이라도 아프면 바로 병원을 가자. 



[난임 용어]

* 화학적 유산(화유) : 임신테스터기, 피 검사로 임신을 확인했지만 이후 착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임신이 종결되는 것 

* 난관수종 : 난관(나팔관)에 염증으로 인해 생기는 물혹. 배아(수정란)가 자궁벽에 자리를 잡는 것을 방해하는, 난임의 원인 중 하나 

* 자궁 내막종 : 자궁내막조직으로부터 발생하는 낭종(혹). 난소에 유착되는 경우 배란을 방해해서 난임의 원인이 될 수 있음. 강한 생리통을 유발. 복강경 수술로 간단히 제거가 가능하지만 재발 확률이 높아 수술후 호르몬 주사를 통해 재발 확률을 낯춘다. 

* 나팔관조영술 : 나팔관에 조영제를 넣고 초음파 사진을 찍어 나팔관의 막힘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 나팔관이 막혀 있으면 자연임신이 어렵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는 검사로, 난임 진단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검사. 나팔관이 막혀 있으면 조영제를 투입할 때 많은 통증이 유발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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