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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고인 김종섭 Jan 17. 2022

광고 카피에 관하여

멋진 것은 이미 누군가가 만들어 두었다.

'카피를 쓴다'는 말은 어쩌면 잘 못 되었다.

'카피를 발견한다'는 말이 맞을지 모른다.


카피는 창조의 대상이 아니다.

카피는 창작의 대상이다.


하지만 창작이라는 것 역시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필요한 것은 이미 신이 만들어두었기 때문이다.


물, 바람, 공기, 땅, 사랑, 마음을

이미 신은 만들어두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것을 만들 필요가 없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겠다는 패기를 부릴 필요가 없다.


단,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이 만들어 둔 것을 연결하겠다는 의지다.

그가 멋지게 만들어 둔 것을 우리는 연결시키기만 하면 된다.


미국 유학 시절 일이다.

큰 기대를 안고 간 학교였는데 과제가 너무 황당했다.

A라는 물건과 B라는 물건을 합쳐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오라는 것이었다.

비싼 등록금 내고 간 학교가 고작 이런 유치한 과제라니.

정말 학교다닐 맛이 나지 않았다.

심지어 매번 유치한 광고에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들도 생겨났다.


지금은 안다. 

이런 유치한 상상들이 나의 작업의 원천이 되었다는 것을.


선생님은 알았던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사실을.

그러니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섞어보라고 주문한 것일거다.


가끔 광고 작업이 막힐때 그때의 나를 후회한다.

왜 더 열심히 과제를 하지 않았을까?

왜 더 적극적으로 섞어보지 않았을까?

그때의 나를 자책해본다.


카피도 그렇다.

좋은 카피는 이미 누군가가 써두었다.

그들의 카피를 보고 있으면 과연 사람이 쓴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자괴감이 들고 연필을 부러뜨리고 싶다.


무한 긍정파인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린다.

저들도 발견을 한 것일 뿐이라고.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일 뿐이라고.


광고 카피를 쓰고 싶다면

몸에 있는 모든 털을 세워라.


그리고 1 더하기 1이 2라는 말을 듣더라도 전율을 느껴야한다.

온 몸의 털을 곤두세워보라.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말고

자연스러운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마라.


감탄,

탄복,

환희.


그것에서 연필의 끝은 움직이다. 


광고가 시작하는 점은 하찮아보이는 연필의 끝이다.

그 연필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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