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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고인 김종섭 Oct 02. 2022

다시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맞이하며

2008년 가을을 추억하며


요즘은 다시 2008년의 가을에 사는 느낌이다.

나는 그때 한참 미국 유학 중이었다.

막 미국 4년제 대학 학위를 포기하고 수료증 하나 주는 광고 스쿨로 들어간 때였다.

입학할 때만 해도 900원대의 환율이라 어찌어찌하면 버티지 않을까 희망 회로를 돌렸다.


지루한 광고 이론을 듣다 아트 스쿨로 가니 나는 물 만난 고기 같았다.

물론 처음에는 적응하지 못했다.

영어도 못하는 동양인이 아이디어도 형편없었으니 말이다.

그때 내가 가장 많이 듣던 말이 "지금이라도 당장 짐 싸서 북한으로 돌아가는 게 어때?"라는

말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남한에서 온 것을 알면서도 조롱하셨던 거다.

그러면서 항상 다음번에는 반드시 '빅아이디어'를 가지고 오라고 주문하셨다.

그때의 한 때문에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창업할 때 '빅아이디어'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


조롱은 받았지만 내가 원했던 공부라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그런 유학 생활에 도취되어 있을 때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다.


스마트폰이 없어 환율은 컴퓨터를 켜야 확인할 수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은 환율을 보며 어느 날은 컴퓨터 켜는 것이 너무 싫었다.

한인 형, 누나들은 해고를 당하기 시작했다.

외국인의 비자를 서포트해주면서까지 데리고 있을 경제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해고를 당하는 형, 누나들이 부러웠다.

해고를 당했다는 말은 미국에서 경제생활을 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에서 취업해 월급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쫓겨날 위기였다.


이대로 공부하다가는 대구에 있는 집이 풍비박산 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렇게 국제전화로 대구에 집에 전화를 드리고 나는 쫓겨나듯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 광고회사에 취업해 돌아올 줄 알았던 아들이 고졸의 학력으로 금의환향했다.


처음으로 소속감이 없어졌다.

8살 때부터 학교라는 소속감이 있었는데 그때부터는 눈을 떠도 갈 곳이 없었다.

그러니 우울증이 왔다.

사회에 전혀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몇 년을 백수로 살다 결국에는 창업하게 되었다.

서정진 회장은 취업이 안되니 창업한다고 했는데 내가 바로 그 꼴이었다.


그것이 빅아이디어연구소의 시작이었다.

회사는 생각보다는 잘 되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원동력은 바로 '응축력'이었다.

몇 년 동안 백수 생활을 하며 나는 비우고 비우고 또 비워졌다.

'진공묘유'라는 말처럼 말이다.


'나한테 광고만 맡겨봐. 다 죽여버릴 거야'

라는 생각이 응축되고 또 응축되었다.


그때 나는 마치 실미도 부대원들처럼 영혼의 날이 서있었던 사람 같았다.

몇 년동안의 응축력으로 회사를 운영하니 잘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속감이 없었던 사람이 소속이 생기니 야근이나 밤샘은 오히려 감사한 일이었다.


요즘 환율을 보고 있자면 나의 유학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 한국으로 쫓겨날 때 나는 세상이 끝난 것 같았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하나의 문이 열린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덕분에 나는

법인회사의 대표가 되었고

돈도 벌게 되었다.


지금 활동하는 강의나 멘토, 칼럼, 언론보도 등도

결국은 죽을 것처럼 나를 괴롭힌 서브프라임 사태 덕분인셈이다.


유학시절의 꿈처럼 미국에서 취업을 했다면

지금의 빅아이디어 광고는 없었을 것이다.


큰 행운은 큰 불행을 끌고 오고

큰 불행은 큰 행운과 함께 온다.


그러니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

좋은 것이 좋은 게 아니고

나쁜 것이 나쁜 게 아니니까.


지금도 미국에서 유학하는 한인들은 2008년의 나처럼 힘들 것이고

사업하는 사람 역시 말도 못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니 지 말자.

실패하는 사람은 없다.

도전을 멈추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얼마나 엄청난 행운이 오려고 이럴까?'

이런 대책 없는 긍정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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