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 보다 앞서는 사람
1억 1,000만 원의 용역이었다. 싸게 주고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명색이 대한민국 대통령실의 정체성을 담은 디자인인데 1억 천만 원은 너무 싸다. 기업이든 재단이든 우리는 ci(corporate identity)를 만들 때 돈을 아끼지 않는다. 얼마나 중요한 작업인지 알기 때문이다. ci가 세련되면 그 조직은 세련된 조직처럼 보인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애플의 ci가 장수돌침대와 같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지금과 같은 충성된 팬덤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조직이 ci 개발에 목숨 거는 건 당연한 일이다. ci는 눈에 보이지 않게 매출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찌 되었든 어떤 브랜드를 접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접하는 것이 ci이기도 하다.
최근, ci보다 더 중요한 역할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경비원이다. 우리가 어떤 기업을 방문하든 병원에 가든 가장 먼저 접하는 사람이 바로 그 건물의 경비원이다. 아무리 좋은 광고를 보고 가든 아무리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이 있어 가든 경비원은 그 첫 번째 사람이다. 경비원이 바로 그 브랜드의 첫 번째 얼굴이고 첫인상이다.
종종 이것을 망각한 경비원을 볼 때는 무척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주차공간 확보가 쉽지 않은 나라에서 짜증 난 표정으로 주차 안내를 하면 그 데미지가 더 커진다. 운전자 역시 주차할 때 예민해지기 때문이다. 왠지 그렇다. 어디 주차하려 치면 “여기 차 대시면 안 됩니다!”라는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 그 순간 멀리서 경비원이 짜증 난 표정으로 내게 다가오면 다툼이 일어날 확률은 극도로 높아진다.
경비원은 광고인이다. 그 브랜드를 만나는 첫 번째 역할이다. 브랜드가 조금 부족해도 경비원이 밝으면 긍정적인 마음으로 매장에 들어가게 된다. 수억 원의 ci, bi를 만들면 뭐하나. 경비원의 역할에 따라서 수억 원은 물거품이 되기도 한다.
경비원은 경비원이 아니다. 그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기획자요, 브랜드를 알리는 마케터요,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디자이너이다. 경비원은 그런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