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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고인 김종섭 Jan 15. 2023

BUSAN IS NOT GOOD


제목이 이래서 미안하다. 사실 나는 부산을 매우 좋아한다. 산으로 둘러싸인 대구에 있다가 부산에 가면 바람부터가 다르다. 부산역에 도착하자마자 그 바람을 정통으로 맞을 수 있다는 것도 좋다. 답답한 일이 생길 때면 부산에 가고 싶다. 왠지 해운대를 보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 나를 괴롭히는 작은 고민이 바다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질 것 같기도 하다.


BUSAN IS GOOD


부산의 새로운 슬로건이다. 카피를 쓰는 입장에서 타인의 아이디어를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안다. 그래서 늘 아이디어 앞에서 겸손하려 한다. '분명히 reasonable한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말이다. 사실, 새로운 슬로건이나 CI 발표는 노이즈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문제는 이것을 잘 모르는 리더들이 많다는 것이다.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광고의 민주주의'가 탄생한다. 시민 투표가 바로 그것이다. 리더들은 다수결에 목을 맨다. 다수결의 원칙을 적용하면 일하기가 매우 쉬워지기 때문이다.


언제가 이런 경험을 했다. 우리에게 광고를 맡기는 어떤 클라이언트에게 더 이상 일을 맡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다. 실무자가 지나치게 상사의 눈치를 보는 문화가 있는 곳이었다. 광고를 맡게 되면 클라이언트의 클라이언트를 만족시켜야 한다. 광고는 그들의 고객을 위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조직 문화를 가진 곳에는 결국 클라이언트의 내부 상사에 눈치를 보게 된다. 부장님, 이사님의 취향을 맞추다 보면 그 광고는 통과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통과될 광고가 잘 될 리 없어 우리가 먼저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몇 달 뒤 그 브랜드의 광고 캠페인을 보고 무척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그들은 광고 공모전을 열어 수상한 1,2,3등의 광고을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무자 입장에서 일하기가 매우 편해진 것이다. 


"이번에 나온 광고 누가 결정했어?"

"네, 공모전에서 1등 한 광고입니다"


"아 그래? 오케이"


다수결에서 가장 큰 표를 받았으니 매우 합당한 이유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브랜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짓이다.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사람들은 뭐가 좋은지 모른다.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가수 윤종신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타이틀 곡 선정을 할 때, 다수결로 결정하면 항상 그 곡은 히트하지 못했다고. 왜냐하면 사람들은 가장 무난한 것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극렬히 반대하고 작곡가의 감으로 밀어붙인 노래가 히트했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슬로건, CI 선정은 과연 어떻게 해야 되는지 궁금할 것이다. 


선수들만 모여야 한다. 전 직원들의 의견을 모은다든지 모두의 피드백을 구해 창작물에 적용하는 것은 메시지를 망가뜨리는 지름길이다. 이맛도 저 맛도 아닌 잡탕이 탄생한다. 모두가 자신만의 취향을 얘기하면 광고 메시지는 산으로 간다. 아쉽게도 실제로 나는 이런 리더들을 많이 봐왔다. 모두의 의견을 청취했으니 참 잘했다고 뿌듯해하는 분들을 말이다. 병원에 가면 의사의 말을 잘 듣는 게 내게도 좋은 길이다. 다수결 원칙은 필요 없다. 그 사람이 그냥 그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닥치고 그를 따르는 것이다.


결국 리더에게 달려있다. 욕먹을 각오, 옳다고 생각되면 추진할 수 있는 실행력, 브랜드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나는 부산 사람이 아니지만 내가 봐도 이번 슬로건은 부산의 정체성과는 아무 연관이 없어 보인다. 쉽게 말해  BUSAN IS GOOD에 부산을 빼고 청송, 진천, 강릉, 텍사스, 두바이를 붙여도 되는 문장이다. 모두가 자신의 도시가 좋다고 하지 안 좋다고 하겠는가. 


이제 더 이상 다수결 뒤에 숨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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