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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Dec 23. 2019

[컬처] 드라마 - '어쩌다 발견한 ‘자아’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


 황소연  사진출처 <어쩌다 발견한 하루> 홈페이지





대체로 돈이 많고, 대체로 인기가 많은 학창 시절 선망의 대상인 인물들. 우리에게 주인공이지만 드라마에선 엑스트라 역할인 은단오(김혜윤)는 <꽃보다 남자>를 떠올리게 하는 A3에 둘러싸인 것도 모자라 그들 중 한 명과 약혼을 했고, 선천적으로 심장질환을 앓고 있다. 공부도 잘하고 유복한 집안까지, 몸이 약하다는 것 빼고는 모든 조건이 완벽한 소녀다. 단오는 너무나 당연하게 자신이 만화 속 주인공이라고 믿지만, 사실은 주인공 오남주(김영대)와 여주다(이나은)의 로맨스를 위해 움직이는 엑스트라다. 우리가 숱한 로맨스 코미디에서 마주쳤던 여주인공을 돕는 친구, 여주인공을 짝사랑하는 서브 남자 주인공 같은 역할 말이다. 엑스트라들은 어느 날, 자신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 궁금해하면서 ‘자아’를 갖게 된다. 언제 어디서 눈을 뜰지 모르는 엑스트라의 운명을 체감하게 되는 것이다.

엑스트라들은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위한 ‘스테이지’에서 작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말하지만, 단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생각’이다. 단오는 순정만화 공식을 그대로 갖다 쓴 작가의 이야기를 비판(이지만 사실은 욕에 가까운)할 수도 있고, 큰 줄거리를 위해 움직이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할 수도 있다. 작은 행동 하나마저 작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엑스트라의 운명이지만, 오히려 그 엑스트라들의 움직임은 드라마를 보는 우리들에게는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들의 이름은 ‘오남주’와 ‘여주다’로, 누가 봐도 ‘대충 지은’ 이름이지만, 엑스트라인 ‘단오’와 ‘하루’의 이름엔 무언가 숨겨진 의미가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방영된 회차를 보더라도,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주인공과 엑스트라 할 것 없이 공통된 점은, 모두 첫사랑에 설레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 하이틴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풋풋함을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도 마주할 수 있다. 우리가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청춘영화, 인터넷 소설, 순정만화의 공식이 곳곳에서 튀어나오는데, 이상하게 식상하지가 않다. 페이지를 넘기는 효과음과 함께 장면이 시시각각 바뀌는 순간을 맞이하는 것은 흥미진진하기도 하고, 종종 정신없기도 하다. 시공간이 뒤바뀌는 혼란을 겪을수록 엑스트라들은 서로를 기억하고, 걱정하고, 회상한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는다. 성장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하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장학생으로 스리고에 입학한 ‘여주다’를 괴롭히는 이들도 자아를 갖는 ‘각성’을 하면 좋겠다는 것.  지금도 어디선가 나처럼 해피엔딩에 집착하는 시청자가 있다면 단오의 쾌차와 주다의 행복한 학교생활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드라마 속 만화책 <비밀> 작가님, 듣고 계시죠?




MBC, 매주 수, 목 저녁 8시 55분

극본 송하영, 인지혜   

연출 김상협

출연 김혜윤, 로운, 이재욱, 이나은, 정건주

원작 무류, <어쩌다 발견한 7월>     


위 글은 빅이슈 11월호 21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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