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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an 17. 2020

[에세이] 네시이십분 라디오


Writer·Photo Providing 장혜령





네시이십분. 내가 7년째 운영하고 있는 팟캐스트 라디오의 이름이자 그것을 둘러싼 느슨한 공동체의이름이다. 네시이십분에서는 세상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의미 있는, 주목할 가치가 있는 문학·예술 분야의 책을 읽는다. 라디오 구독자는 약 4천명. 딱히 홍보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아는 사람만 아는 채널. 아이튠스나 팟빵, 웹에 검색하면 주소가 잡히긴 하지만 내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방송국 동료들은 그 존재를 모르는 비밀스러운 채널이다.





이 이름을 처음 들은 사람들은 이렇게 묻곤 한다.

“네시이십분이라고 했는데, 사무실은 어디 있나요?”


나는 이렇게 답한다.


“네시이십분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에요. 공간은

따로 없어요.”


어떤 사람은 “아, 그렇군요.” 하며 내 답변을 그냥 스치는 말로 받아들이고‘사무실도 없나 보네.’, 어떤 사람은 신기해하며 관심을 표한다‘어떻게 검색해야나와요?’ ‘그런데 네시이십분이 새벽이에요. 낮이에요?’.


네시이십분. 시작은 이러했다.

2012년, 나는 우울하게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예술대학을 졸업했지만 정작 예술로는 돈을 벌 수 없어 회사에 다니던 직장인. 내 집은커녕 내 방 하나 갖기 어려운 현실에서,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일치시킨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달아야 했던 청년. 몇 년 차가 되도록 사람들과 농담 하나 나누는 게 편치 않았던 사회생활 부적응자. 그 즈음의 내모습이다.


그래서 뭘 했나. 회사 사람들과 간식 먹을 때가 되면 어떻게든 자리를 피해보려고 간식 준비나 뒷정리를 도맡아 했고 쉬는 시간엔 화초에 물을 주거나 물고기들 밥을 주러 갔다. 금붕어들이 황금빛 지느러미를 펼치고 물속을 헤엄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말 없는 존재들에게 도리어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내가 금붕어 밥 주러 회사 다니는 사람인가. 여기서 나 하나 없어져도 기억하는 건 저 금붕어뿐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이유 없이 더 쓸쓸해졌다.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못 찾는 상황이었다.


그때는 아직 아이튠스로 팟캐스트 라디오를 올리거나 듣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당시 한 친구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평소처럼 책 이야기하는 걸 라디오로 녹음해 올리면 아마 사람들도 재밌게 들을 것 같아. 라디오 하는 건 돈도 거의 안 들어.”


그게 혹시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타파할 기회 아닐까. 나는 친구에게만은 쓸모 있는 사람이고 싶었고, 그 일로 내 쓸모를 증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모임을 만들었으며 라디오를 추진했다.(라디오를 제안했던 친구는 내가 좀 하다 말 거라고 여겼고, 그렇게 열심히 할 줄은 몰랐다고 한다.) 그렇게 회사에서 야근하던 어느 날, 나는 친구들을 사무실로 몰래 불러 라디오 첫 회를 녹음했다. 시위나 농성 없이 조용히 벌인 한밤의 ‘사무실 점거’. 그 일이 지금의 네시이십분 라디오의 시작이다.


누가 이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까, 싶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회를 거듭하며 조회수 100, 200… 어디선가 듣는 사람이 조금씩 생겨났다. 리뷰나 반응은 많지 않았는데 다운로드 수는 계속 늘어갔고 그건 분명 저편에서 듣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었다. 나와 내 친구들이 어떤 걸 좋아할 때, 혼자 열렬히 그러나 조용히 좋아하듯 이 라디오의 청취자들도 그랬던 것 같다. 세상에 베스트셀러를 읽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서가 한구석 잘 보이지 않는 책을 찾아 읽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희소함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사람도 분명 있으니까. 이런 이들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책을 태그해 적극적으로 사진을 찍어 올리고 홍보를 하고… 그럴 것 같진 않다.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해서, 없는 건 아니다.





작은 사건들은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내가 라디오에서 다뤘던 어떤 책의 작가에게, 청취자가 나보다 먼저 말을 건넨 것이다. 그들은 수업에서 특강 강사와 학생으로 만났다고 했다. 당신의 책을 네시이십분이란 라디오에서 다룬 걸 들었어요. 작가는 그날 라디오 이름을 적어 갔고 그걸 찾아 들었다고 했다. 지금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고 또 사랑받는 소설가 조해진과의 만남은 이렇게 이뤄졌다. 나는 그녀의 첫 책을 다뤘고 이후 첫 번째 공개방송에도 초대했는데, 아직 신인이었던 그녀에게 독자들이 만들어준 그 작은 자리는 어떤 시상식보다도 각별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힘 있는 사람이라 여겨본 적 없었기에 그런 작가가 나로 인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런 일들이 차츰 생겨나면서 자신도 알지 못했던 힘에 대해 거꾸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2013년,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고 그해 라디오를 만드는 워크숍을 처음 열었다. 라디오 만드는 기술을 익히는 워크숍이 아니라, 라디오를 매개로 이야기 나누고 소통하는 자리에 가까웠다. 그때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이 네시이십분 라디오의 청취자들이었다. ‘개와 고양이의 라디오 워크숍’이란 알쏭달쏭한 이름이며, 그 내용과 형식 또한 기존에 들어본 적 없는 특이한 것이었을 텐데도 시간을 내어 뛰어든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처음 본 사이지만 자기 생활상과 내면의 깊은 이야기를 기꺼이 꺼낸 용기 있는 사람들.


그중엔 실연에 아파하는 사람도 있었고, 가족관계로 갈등하는 사람도 있었고, 결혼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 삶의 기로에서 선택을 주저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모두는 그때 그걸 사연으로 삼아 글을 쓰고 함께 라디오를 만들었고 또 그걸 그 자리에서 바로 듣는 시간을 가졌다. 그걸로 각자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쉽게 해결될 문제라면 그 자리에 앉아 있을 필요도 없었겠지. 


하지만 말을 꺼냈다는 사실만으로 변화가 생겼다. 혼자 웅크리고 있을 때는 그저 슬프고 답답한 고민일 뿐이었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또 열심히 듣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것만으로도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힘을 냈다. 나는 그때 혼자만 끙끙 앓는 것이 아니라, 힘주어 바깥으로 말을 꺼낼 때 그 자신에게 생기는 힘에 대해, 그런 힘을 내고 있는 누군가를 볼 때 다른 누군가가 얻게 되는 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이 이후로도 지금까지 가끔 워크숍을 열고, 그 워크숍에서 만난 이들과 느슨한 공동체를 이루게 된 까닭이다.


라디오를 시작하기 전 나는 자신이 혼자라 여겼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지금의 자리에서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학교나 회사, 가족,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 해도 좀처럼 동화되지 못하는 이들. 부모를 떠나지 못해, 혹은 부모를 떠났다 해도 자신이 겨우 얻은 작은 방 한 칸에서 운신할 수밖에 없는, 그러나 먹고 자고 살아가는 것만으론 그 삶을 증명할 수 없는 이들. 그런 이들에게 어떤 책은, 어떤 목소리는 찰나의 빛이 되어준다. 물론 그 빛이 영원하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그랬다. 그렇게 잠깐 켜진 빛으로 오늘을 잠시 지날 수 있었다. 그 빛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 긴 하루를 혼자 견딜 수 있었을까. 


잠들기 전 창밖을 내다볼 때가 있다. 응답처럼 먼 창문의 불빛이 켜지고, 그 빛에 대한 응답처럼 또 다른 창문의 불빛이 켜질 때가 있다. 이 빛을 켠 사람들은 서로를 알지 못하겠지. 하지만 알 것 같다. 빛으로 된 가는 실로 세계는 오늘도 이어지며 또 생겨나고 있고, 우리 각자가 바로 그런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장혜령

네시이십분 팟캐스트 라디오 제작자. 2017년 문학동네 시 부문

신인상을 받았으며, 2018년 10년간 기억, 사랑, 이미지를 테마로

홀로 써온 글들을 묶어 산문집 <사랑의 잔상들>을 펴냈다.


위 글은 빅이슈 10월호 21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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