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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an 19. 2020

[무비] 해치지않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김송희




해치지않아

감독 손재곤 출연 안재홍, 강소라, 박영규, 김성오, 전여빈 등급 12세 미만 개봉일 1월 15일


대형로펌의 수습 변호사 태수는 우연히 로펌 대표의 눈에 들어 정식 변호사가 될 기회를 잡는다. 대표는 태수에게 '망한 동물원의 동물원장으로 부임해 3개월만 잘 유지해보라'는 명령을 내린다. 폐업 직전인 동물원 동산파크에 첫 출근한 태수가 마주한 것은 어딘가로 실려가는 기린을 비롯한 동물들. 빚 떄문에 값 나가는 동물들은 팔려가고 방사장은 텅텅 비어있어 재개장은 꿈도 못 꿀 상태. 몇 명 안 남은 직원들에게 태수는 “동물 탈을 쓰고 우리가 동물 흉내를 내자”고 제안한다. 황당하지만 “사람들은 동물원에 가짜 동물이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한다”며 유튜브 몰래 카메라를 보여주며 “우리 동물원을 살리자!”고 주먹을 불끈 쥔 태수의 열의에 설득된 동물원 직원들은 결국 동물 탈을 뒤집어쓰고 방사장 안에 들어가게 된다. 태수는 북극곰, 사육사 건욱은 고릴라, 수의사 소원은 사자, 사육사 해경은 나무늘보 탈을 쓰고, 동산파크는 대망의 재개장을 한다. ‘동물원에 동물 대신 사람이 탈을 쓰고 동물 흉내를 낸다’는 지극히 만화적인 설정의 <해치지않아>는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그러나 주인공을 비롯한 내용의 상당 부분이 설득 가능하게, 또한 더 경쾌한 방향으로 각색되었다. ‘좋아하는 여자의 집 김치냉장고에 시체가 있다’의 설정으로 로맨스를 만들고(<달콤 살벌한 연인>), ‘윗집에 세든 남자가 우리 집 보물을 노린다’는 설정으로 범죄 코미디를 만들었던(<이층의 악당>) 손재곤 감독이 이번에는  ‘동물원에 동물 대신 사람이 있다’는 시놉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코미디를 완성했다.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휴대폰만 바라보는 나무늘보, 가슴을 펑펑 쳐대며 한 여자만 바라보는 순정 고릴라, 펩시 말고 코카콜라만 고집하는 북극곰, 갈기만 그럴싸해 관람객에게 머리만 보여줘야 하는 게으른 사자를 사랑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긴 털옷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봐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가 동물 탈을 썼다고 해서 마냥 귀엽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방사장에서 동물이 관람객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동물원’이라는 공간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동물원을 서류상으로 소유한 페이퍼 컴퍼니의 복잡한 이름을 자주 반복하며 강조점을 찍는 식으로 자본주의를 풍자하는 유머는 웃음 너머 여운을 남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감독 셀린 시아마 출연 아델 하에넬, 노에미 메를랑, 루아나 바야미, 발레리아 골리노 등급 15세 미만 개봉일 1월 16일     


초상화 작가 마리안느는 어느 귀족 아가씨의 결혼 초상화 의뢰를 받고 길을 나선다. 배를 타고 귀족의 성으로 향하던 길에 파도에 스케치북이 휩쓸려가고, 마리안느는 주저하지 않고 바다로 몸을 던져 짐을 건져낸다. 풍성한 드레스를 입은 마리안느가 바다로 몸을 던지는 초반의 장면은 앞으로 이 여인이 거부하지 못하고 투신하게 될 열애를 상징하는 듯 하다. 귀족 집에 도착한 마리안느는 결혼 초상화를 거부하는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의 산책 친구가 되어, 몰래 그녀를 관찰하며 초상화를 그려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매일 엘로이즈와 산책 길에 나서 그녀의 귀와 눈, 코와 입술, 손 등을 관찰하며 마리안느는 점차 사랑에 빠져든다. 

결혼을 거부하며 갇혀살던 엘로이즈에게 마리안느는 난생 처음 마주친 천둥 같은 음악이자 책이자 낭만이고 예술로 다가온다. 마리안느는 눈으로 엘로이즈의 얼굴을 좇다가 방에 돌아와 눈에 담아둔 그녀를 종이 위에 더듬더듬 선으로 펼쳐낸다. 엘로이즈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귀의 연골과 뺨의 빛으로 시선을 옮겨가던 마리안느의 눈빛, 처음부터 홀린 듯 마리안느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였던 엘로이즈의 감정은 이내 키스하고 싶고 서로를 만지고 싶은 감정으로 휘몰아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어느 장면에 일시정지를 눌러도 한편의 낭만적인 그림같은 장면으로 남는다. 영화 속에서 마리안느는 엘로이즈를 두 번 그린다. 한 번은 몰래, 또 다른 한번은 엘로이즈의 허락을 받고 함께 완성해 나간다. 첫 그림의 엘로이즈가 뺨에 복숭아 빛을 떠올린 아름다운 여성이라면 두 번째 그림의 엘로이즈는 입을 굳게 다물고 당당하게 상대를 응시하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18세기. 예술로부터 통제되고 자기 삶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수 없었으며, 자신이 그린 그림을 여성의 이름으로 출품조차 할 수 없었던 시대에 두 여성은 사랑하고, 서로를 빛으로 물들이며 그림을 완성한다. 연인이 사랑에 녹아드는 과정, 상대를 만지고 싶고 키스로 입술을 덮고 싶던 첫 순간, 한 마디의 말로 상대에게 칼을 휘두를 수 있고 눈을 감아도 상대가 떠오르는 열렬한 열애의 모든 순간을 담은 완벽한 사랑 영화다. 


위 글은 빅이슈 1월호 21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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