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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an 19. 2020

[스페셜] 여기 청년들이 있다

청년 주거 대안 3. 촌라이프를 꿈꾸는아름다운 청년들,팜프라에 모이다


Writer 유지황

Photo Providing 팜프라





농촌, 어촌, 산촌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는 청년들이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촌은 진입장벽이 높은 곳이다. 청년들이 자연과 가까이 지내며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이뤄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집 짓기, 농사, 축산을 기반으로 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실제로 ‘팜프라촌’을 만들어 그런 삶을 가능하게 하고, 작은 이동식 집 짓기 프로젝트인 ‘코부기’를 통해 청년들의 촌라이프를 돕고 있는 팜프라의 유지황 대표가 그이다.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할까?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10년 전, 대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첫 배낭여행지였던 이집트의 한 시장 앞에서 차 밑에 들어가서 자는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의 눈빛에서 깊은불안감과 장난기가 동시에 느껴졌다. 아이들을 만나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마음 깊은 곳에서 불평등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몽골, 중국, 동남아 국가들의 자신의 삶을 스스로가 선택할 수 없는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장애아동 보육원, 핍박받는 소수민족의 아이들, 빈민가 아이들을 만나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보았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나 고민하게 됐다. 나의 기질과 삶의 궤적을 놓고 어떤 삶을 살지 고민해보니 하나의 답이 나왔다. 누군가 자신이 원하는 삶이 있을 때 그 삶을 살아갈 수 있게끔 생태계를 만들어주자. 일곱 살 때 동네 친구들이 할 놀이가 없을 때 동네 올림픽을 만들자고 제안했던 모습부터 지금까지, 나는 누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환경을 내가 만들어줄 때 행복했던 사람이다.



네덜란드 양 농장
팜프라촌 커뮤니티 텃밭


기반 없는 청년은 농사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죠?


나는 현재 판타지 촌라이프를 꿈꾸는 청년들이 스스로가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촌라이프에 필요한 다양한 생산·생활 기술을 익혀 자립할 수 있도록 청년 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다. 농사를 배워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공유하겠다는 생각으로 7년 전 첫 농사를 시작했지만 첫 결실을 보기도 전에 땅 주인의 요청으로 비워주게 되었다. 이후 나는 농사를 짓기 위해 행정, 마을 이장님들을 찾아다니며 새롭게 시작할 방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답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다른 나라로 눈길을 돌렸다. 파밍보이즈란 이름으로 14개국 35개 농장·농업 행정기관과 교육기관을 찾아다녔다. 인구절벽이나 농촌의 고령화가 먼저 나타났던 국가들에서 답을 찾았다. 답은 사회 시스템에 있었다. 일본과 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농업에 종사하거나 농촌에 살고 싶은 청년이 있으면 농지뿐만 아니라 주거, 수익모델, 기술, 인적 네트워크, 유통망을 민간단체나 정부기관에서 해결해주고 있었다.

내가 삶의 다양성을 놓고 뭔가 시도할 수 없었던 것은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청년이라서 특혜를 바란다는 것은 아니다. 지원과 투자를 받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했을 때 “청년에게 투자하고 지원하지 않으면 그 나라의 미래는 없다.”라고 말해줬던 여행에서 만난 어른들의 말처럼 건강한 지원과 투자를 받아 경제 주체가 되는 40~50대에는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아래, 윗세대를 책임지고 싶은 것이다.


청년 농부를 위한 6평 이동식 목조주택 코부기


코부기(COBUGI)는 협동(cooperation)의 CO와 집을 들고 다니는 거북이의 BUGI를 합한 말로 ‘함께 이동식 목조주택을 짓는다.’라는 의미를 가졌다. 처음엔 자취방 보증금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 집을 지어야겠단 생각으로 DIY 집 짓기로 시작했다. 현재는 DIO(DO-IT_OUR SELFS)로 확장해 집 짓기 매뉴얼을 만들고 매뉴얼을 기반으로 사람들이 함께 집을 짓는 워크숍을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총 일곱 채의 작은 집을 지었는데 건축을 한 번도 배워보지 않고도 직접 집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어른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괜찮은 청년 한 명이 자라는 데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라는 말을 느끼게 해준 프로젝트였다. 사회문제는 사회 구성원이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코부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2~3년의 기간 동안 매년 200~300여 명의 청년이 자신도 이런 집을 짓고 살면서 촌라이프를 하고 싶다며 찾아왔다. 그중에는 중학생, 고등학생 친구들도 있었다. 자신들은 좀 더 일찍 준비해 다양한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고민에 빠졌다. 사회구성원으로서 어른이 돼가고 있는 내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할 수 없는 사회에 대해 원망을 했던 것처럼 지금 아이들도 나를 원망하며 찾아올 미래를 생각해보니 두려웠다. 나와 같이 기반이 없어 촌라이프를 실행할 수 없는 다음 세대를 위한 인프라를 만드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의 팜프라와 팜프라촌을 만들었다.


청년들의 촌생활을 위한 인프라, 팜프라


팜프라는 farm(농장)과 Infra(기반)를 합한 말이다. 위에서 말했듯 기반이 없어 촌라이프를 실현할 수 없는 다음 세대를 위한 인프라를 만들겠다는 의미이다. 우린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보다 영리기업으로 만들기로 했다. 우리 세대의 운동은 생산 활동을 기반으로 해야만 더 파급력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팜프라는 판타지 촌라이프를 위한 인프라를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인프라에서 청년들이 자립해가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거기에 다음 세대가 살아갈 건강한 지구를 위해 자연을 지킬 수 있는 생태적인 방식으로 생산 활동을 하는 것이다.

팜프라 설계 작업을 하면서 청년들이 와서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게끔 청년 마을 팜프라촌 디자인 작업도 진행했다. 첫 대상지는 진주의 한 숲속이었다. 팜프라 멤버들과 함께 집을 짓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길게 가지 못했고 7개월 만에 땅 문제, 지하수 문제 등으로 지어놓은 집을 다 들고 나오게 됐다.

팜프라촌을 민간과 협력해서 풀기엔 쉽지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유지, 군유지와 같은 공유지를 이용해 풀어보기로 했다. 공유지와 같은 공유자산을 이용하기 위해선 청년 인구감소, 고령화로 인해 지역이 가지고 있는 여러 사회문제를 명확하게 인지해야 했다. 또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어 하는 청년들의 요구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도 중요했다.


청년들이 사는 농촌 마을, 팜프라촌


팜프라촌은 생태, 자립, 관계, 완충지라는 네 가지 핵심 코어를 두고 설계했다. 도시에서 촌으로 이주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좀 더 생태적인 방식으로 생활·생계 활동을 하고, 자립에 필요한 기술이나 지식, 지혜를 습득하길 바랐다.

입주한 청년들은 농사, 집 짓기, 집 고치기, 촌 생활에 필요한 도구사용 등 여러 육체노동을 함께 한다.이 과정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난 기질이 무엇인지, 어떤 과거와 삶의 궤적으로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 삶의 궤적을 통해 현재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발견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자신을 알고 나면 어떤 기준과 방향성으로 촌에서 살아갈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8월에 입주해 지금 두 달 정도 살아가는 중이라 확신하고 말하긴 힘들지만, 자유도가 높은 삶에 대한 약간의 혼란을 느끼던 초기와 다르게 각자의 힘을 갖고 삶을 꾸려가고 있다. 다들 개인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각자 필요한 부분들, 실험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실험해보는 중이다.


우리는 요즘 다음 세대를 위한 사회를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다. 파밍보이즈-코부기-팜프라-팜프라촌을 거치면서 찾아온 청소년, 청년들이 천여 명 정도는 된다. 우리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우리 세대보다는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일하고 삶을 꾸려갈 수 있게끔 하고 싶다. 또한, 어떻게 하면 우리의 활동이 생태적인 관점에서 지구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과거의 나는 윗세대를 바라보며 어떤 삶을 살아갈까 고민했다면 앞으로의 나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사회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살아갈 것이다.



코부기 4호 외벽


코부기 4호


위 글은 빅이슈 10월호 21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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