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
글 양수복 사진제공 쇼노트
퀴어를 이야기한 극들은 많았다. 영화로도 잘 알려진 뮤지컬 <헤드윅>이 있었고 <킹키부츠>, 연극 <프라이드> 등이 관객을 울리고 웃기며 저마다의 무지갯빛 매력을 뽐냈다. 그리고 올 시즌 초연 중인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이 대학로 무대에 올랐다.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은 퀴어를 다루는 동시에 퀴어가 주인공이 아닌 연극이다. 주인공 케이시는 나훈아의 모창가수 ‘너훈아’처럼, 클레오 바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를 모방하는 공연을 선보인다. 달랑 관객 일곱 명의 쇼는 계속될 수 없고 클레오의 사장은 드래그퀸들을 섭외하며 케이시를 해고한다. 밀린 집세와 부족한 생활비에 더해 임신한 아내를 부양해야 하는 케이시는 첫 공연을 앞두고 술에 절어 뻗어버린 렉시를 대신해 생애 가장 극적인 순간을 맞는다. ‘스트레이트 보이’가 드래그퀸이 되는 순간이다.
케이시가 첫 무대에 오를 때만 해도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지켜봤다. ‘이성애자-백인-남성, 정상성의 범주에 드는 남자가 돈 벌려고 드래그쇼를 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지?’ 하는 비뚤어진 시선으로 어설픈 첫 쇼까지만 보고 선입견을 굳히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곧 그는 진짜 드래그퀸으로 변모하니까. 케이시를 변화시키는 두 드래그 스승 트레이시와 렉시는 따뜻한 듯, 츤데레처럼 차가운 듯 치장부터 내면까지 그가 진짜 ‘퀸’이 되는 데 일조한다.
생계유지 때문에 시작했던 케이시의 쇼는 점점 그 이상의 의미를 띠게 된다. 무대를 잃은 모창 가수는 ‘조지아 맥브라이드’라는 닉네임으로 “너는 누구니? 너의 이야기는 뭐야?”라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드래그 모방으로 시작된 쇼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디바화한 콘셉트, 무대 체질인 케이시의 쇼맨십과 결합해 특색 있는 쇼가 되어간다. 관객은 발전해가는 쇼를 보며 마음속 의문을 지우고 절로 그에게 몰입하게 된다. 어설픈 에디트 피아프에서 소위 ‘개쩌는’ 드래그퀸 조지아가 되는 것이다.
진한 화장으로 신분을 숨기던 케이시는 갑작스레 아내와 맞닥뜨리며 패닉에 빠지지만 쇼를 버리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조지아는 그의 페르소나이자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버렸기 때문.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은 성소수자의 자아 찾기나 편견 타파를 주제로 삼는 타 공연들과는 다르다. 주인공은 소수자가 아니지만 드래그퀸들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서는 모양새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타인의 시선을 걱정하는 케이시에게 렉시가 건네는 한마디가 마지막까지 묵직하게 마음속에 남는다. “드랙은 많은 것들이 될 수 있지만, 결코 겁쟁이를 위한 건 아니란 거야.”
기간
2020년 2월 23일까지
장소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위 글은 빅이슈 2월호 22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