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현경
서울 성북구의 어느 술집, 가장 구석 자리에 또래 여성 넷이 앉았다. 한 사람을 중심으로 처음 만나는 셋이지만 공감할 수 있는 공통의 이야기가 있어서인지 금세 편해졌다. 새벽까지 깔깔 웃으며 대화했다. 마신 맥주병은 한 병, 한 병, 이내 테이블 옆 창가를 가득 메울 정도로 모였다.
넷 모두 최근 정신과 폐쇄 병동에 다녀온 이들이다. 둘은 첫 입원이었고 둘은 양손으로 헤기 힘들 정도로 자주 드나들었다. 그들을 모은 하나는 나였고, 둘은 내가 쓴 책 <폐쇄 병동으로의 휴가>를 읽고 나를 찾아온 이들, 하나는 그 책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병동에서 만난 ‘언니’였다. 그 자리가 너무 즐거워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했다.
“누가 본다면 어떻게 이런 이야기로 이렇게 재미있게 얘기할까 싶겠지?”
신기하게도 내게 자신도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폐쇄 병동에 다녀왔다고 고백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얼굴은 사람들이 무릇 떠올릴 울상인 얼굴이 아니었다.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지었고, 어떤 이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기도 했다. 다만 그들의 눈, 눈만은 슬펐다.
천장에 붙은 행거를 쳐다보며 나쁜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울 때, 내게 다시 정신과 병원 방문을 추천해준, 처음으로 ‘폐쇄 병동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한 여성이 있다. 나의 즐거워 보이는 일상 사진 속에 남긴 작은 문구들을 많은 사람이 그냥 지나쳤지만, 그는 지나치지 않고 내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 아침에는 ‘안 되겠다’ 싶어 그가 추천한 병원에 갔고, 그 병원에서 그를 우연히 만났다. 곧 점심시간인데 밥이라도 함께 먹자는 그에게 “밥은 먹기 싫고 커피나 마셔요.”라고 답했다. 내가 얼마나 퉁명스럽든 그는 생글생글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우연히 알게 된 내 SNS 피드 속 나는 꽤 웃긴 사람인데, 실제로 본 내 모습은 ‘영화 <멜랑콜리아>의 주인공 같다.’라고 말했다. 그 영화를 최근에야 봤는데, 주인공 저스틴은 결혼식장 안에서는 웃고 있지만, 며칠간의 결혼식 내내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표정은 마치 그때의, 지금의 내 표정과 같았다. 그리고 내게 우울증을 고백하던 사람들의 눈과 같았다. 영화 속 주인공의 결혼식장 안과 뒤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그가 피드 속 내 모습과 실제의 내 모습에 느낀 이질감과 마찬가지로 나도 꽃처럼 웃는 발그레한 볼을 가진 그가 그 후로도 몇 번이나 가진 약을 몽땅 털어넣고 다시 입원했다는 사실에 이질감을 느낀다.
우리는 누군가의 표정으로,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사실로, 인스타그램 피드의 사진들로 그가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얼마나 나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옆자리에서 매일 잘 웃는 이가, 부러울 정도로 좋은 조건들을 가지고 있는 이가, 맛있는 음식 사진에 즐거워 보이기만 하는 사진을 가득 올리는 이가 매일 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술에 기대 잠드는 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표정으로 그 사람이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더 서로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이야기하면 좋겠다. 그것이 비록 ‘내가 요즘 너무 무기력하고 우울한데, 이게 병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아니면 내가 너무 게을러서인지 모르겠어요.’ 하는 말일지라도 말이다.
물론 내 주변에는 이상하리만치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주변에 당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끄덕이며 들어줄 좋은 사람들만 있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 ‘아닌’ 사람들로부터 큰 상처를 받을 것을 걱정하는 일도, 실제로 받는다는 사실도 안다. 상대방이 어떠한 도움을 주지 못할 거라는 사실도 안다.
폐쇄 병동에서 ‘여기까지 오다니, 나는 이제 끝이다.’라고 생각한 내가 병동에 다녀온 일을 굳이 책으로까지 만들어 이야기하고, 얼굴을 내놓고,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까닭은 단 하나다. 내가 어떤 치료를 받았다는 이력에 나를 차별하고, 미워하고, 멀리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들이, 그 사회가 잘못된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 당신의 고백에 당신을 멀리한다면, 더 힘들게 한다면, 나는 당신이 좋지 않은 이와의 관계를 그만둘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단지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당신의 고통이 눈에 띄게 줄어들거나, 이리도 저리도 가지 못할 것만 같은 상황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하지 않으면 모르니까, 당신의 미소가 아닌 눈에 맺힌 슬픔을 볼 수 있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당신이 너무나 힘든 밤에 함께 우울에 대해 공감하며 말할 사람들이 생길지 모르니까, 그러니 이야기하면 좋겠다.
이것이 내가 병원에서, 병동에서, 그리고 그에 관한 책을 만들며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여전히 끝났다는 생각이, 끝날 거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럼에도, 혹은 그래서 나는 ‘오늘은 왜 눈물을 뚝뚝 흘렸는지’에 대한 단어를 계속해서 찾고 있다.
김현경
책 같은 걸 만들고 있습니다. 우울증을 겪은 이웃들의 이야기
<아무것도 할 수 있는>을 엮고,
<폐쇄 병동으로의 휴가> 등을 썼습니다.
위 글은 빅이슈 2월호 22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