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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Feb 17. 2020

[트렌드] 인터넷 센세이션  

   

 문재연     



“다음엔 뭐하고 싶어요?” 유튜버가 늘 듣는 질문이다. 유튜브는 웬만해서는 사람들에게 최종 목표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유튜브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사실이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지면서 꽤 ‘효율적인’ 직업이라는 인식이 생겼지만, 수익 구조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튜브는 전통 미디어 진출의 발판, 전 단계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초기 유튜브에는 기다림에 지친 무명 배우나 가수가 몰렸고, 자신이 직접 쓰고 출연한 영상은 나중에 업계 사람들에게 보여줄 만한 포트폴리오였다. 이들의 꿈은 유튜브로 ‘빵’ 떠서 전통 미디어에서 잘나가는 것인데, 이 꿈을 이룬 유튜버는 지극히 적다. 설사 전통 미디어로 넘어가는 데 성공한다 해도, 업계에서 ‘인터넷 센세이션’이라는 말이 반 비아냥조로 한동안 따라다니기 일쑤다. 여하튼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에 성공한 극소수의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TV와 영화의 거대 스크린에 등장했다.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유튜브 시절부터 봐온 구독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기존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흔들어 놓은 두 아티스트를 소개한다.       


TROYE SIVAN MELLET

트로이 시반

트로이 시반은 일찍이 전통 미디어에서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호주 퍼스에서 자란 트로이 시반은 엑스맨 시리즈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년)의 휴 잭맨의 아역으로 등장했고, 남아공 영화 시리즈 <스퍼드>의 주연을 맡는 등 어릴 적부터 연기도 꾸준히 했다. 유튜브에서는 2007년부터 노래하는 영상을 자주 올렸지만 유튜버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12년 여름 <스퍼드 2>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뒤 브이로그를 찍으면서부터다. 당시 온라인에서는 매우(!) 드문 준수한 얼굴 덕분에 소녀 팬들이 빠르게 모였고, 영국이나 남아공처럼 미주 외 영어권 국가의 다른 유튜버들과 함께 급부상했다. 트로이 시반이 확 뜨게 된 계기는 작가이자 유튜버 존 그린의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The Fault in Our Stars)>를 읽고 영감을 받아 작사, 작곡한 노래를 부른 영상을 통해서다. 당시 존 그린의 책이 인터넷 각지에서 큰 인기를 누리던 베스트셀러였기 때문에 트로이 시반의 노래 또한 자연스럽게 주목을 받았다. 순식간에 새로운 팬층을 거느리게 된 트로이 시반은 약 3개월 뒤 차기 영상에서 커밍아웃을 했다. 유튜브는 2013년까지(그리고 지금까지도) 백인 이성애자 남성들이 지배적이어서 혐오 댓글을 찾는 것 또한 어렵지 않았는데, 트로이 시반을 비롯한 용감한 유튜버들을 시작으로 커밍아웃 영상이 잇달아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10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지만 이 영상은 수많은 청소년 구독자들에게 울림을 주어 커밍아웃 영상의 클래식으로 불리고 있다.


그 이후로는 모두가 아는 이야기다. 2015년 자신의 성장 이야기를 그러모은 첫 번째 스튜디오 앨범 <Blue Neighbourhood>를 발매하고, 2018년에는 찰리 XCX와 아리아나 그란데 같은 팝스타들과 무대에 같이 서게 됐다. 해를 거듭하며 더욱 자신감 있고 멋있어지는 트로이 시반을 보며 예전 구독자들은 그가 자랑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성장하는 독특한 경험을 하고 있다. 2016년 지산록페스티벌에 처음 내한했을 때, 요즘 서는 스테이지보다 훨씬 작은 스테이지에서 트로이 시반은 ‘HEAVEN’ 공연 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음 노래는 제 커밍아웃 경험에 관한 거죠? 그게 저한테 어떤 경험이었는지, 그리고 열다섯 살의 제가 스스로에게 물어야했던 질문에 대해서요. 내가 가족을 꾸릴 수 있을까, 파트너를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것을 원하긴 하지만, 무엇보다 행복하고, 나답고 싶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납득의 순간에 대한 노래입니다.”      



BO BURNHAM

보 번햄

보 번햄은 타고난 엔터테이너다. 이 사람이 가진 천부적 재능과 그것을 꽃피우는 노력을 생각하면 가끔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그는 열여덟 살에 코미디 센트럴의 최연소 엔터테이너로 데뷔했고, 스물세 살에 쓴 시나리오 <Gay Kid And Fat Chick>는 할리우드 블랙리스트(프로듀서 사이에서 다수 거론될 만큼 인기는 많지만 제작 계획이 정해지지 않은 시나리오의 리스트)에 올랐다. 한편 그의 시작은 여느 유튜버와 다르지 않았다. 보 번햄은 당시 유행하던 류의 저속한 농담을 위트 있는 가사로 꿴 뮤지컬 코미디로 유튜브에서 유명세를 떨쳤다. 귀와 눈이 달린 사람이라면 피아노와 기타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기발한 가사를 뱉어내는 보 번햄이 천재라는 사실을 단박에 눈치 챌 수 있겠지만, 돌아봤을 때 더 놀라운 것은 당시 고등학생 보 번햄이 보인 창작욕이다. 약 1년 사이에 노래로만 스탠드업 코미디 세트를 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곡을 뽑아냈고, 얼마 있지 않아 코미디 센트럴 채널을 통해 데뷔했다. 그 후 2010년 보 번햄은 자신이 만들고 직접 출연한 TV 시리즈 <Zach Stone Is Gonna Be Famous>를 MTV에서 방영했다. 팬들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시즌 1에서 취소됐지만, 이 시리즈를 기점으로 보 번햄은 시선을 외부 세계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전 스테이지에서는 실존적 문제나 존경하던 코미디언들의 진정성에 대한 다소 ‘중2병스러운’ 고민을 센스 있게 다뤘다면, 여기에서 보 번햄이 연기한 백수 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명해지려고 하는 인물이다. 다소 캐리커처스럽긴 하지만, 카다시안 패밀리가 대표하는 ‘무조건적’ 유명세를 우상시하는 이 청년은 분명 우리 세대의 초상이다.  



모두가 공연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보 번햄에게 중요한 주제가 된다. 2016년 넷플릭스 코미디 스페셜 <Make Happy>에서 보 번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셜 미디어는 공연하기를 요구한 세대에게 자본주의사회가 쥐어준 답변입니다. 자, 공연하세요. 모든 것을, 서로에게, 항상, 아무 이유도 없이. (…) 제가 유일하게 아는 사실이 있다면 관객 없이 살 수 있다면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공연을 멈춰야 하는가? 이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보 번햄은 연출 데뷔작 영화 <에이스 그레이드>(2017년)에서 자신이 아닌 중학생 여자아이의 시선을 빌린다. 주인공 케일라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케일라는 조회 수가 거의 없는 영상에서 학교에서 친구 사귀는 법, 공부 팁 등의 조언을 제공한다. 허공에 대고 말하는 듯한 케일라는 사실 자신의 브이로그에서 스스로에게 조언을 하고 있다. 보 번햄은 휴대전화에 코를 박고 이어폰을 늘 끼고 다니는 케일라와 또래 아이들을 자신 스스로만큼 가혹하게 판단하지 않는다. 그는 어떤 당위의 시선도 없이 현재 청소년이 처한 상황의 슬프고 역겨우리만큼 부정적인 면과 나름의 행복을 찾아내는 긍정적인 면을 모두 담는다. 보 번햄은 한동안 유튜브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녀 코미디계와 영화계에서 꽤 고생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탁월함은 자신의 출신을 증오하면서도 그것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는 데서 오는 양가 감정에 기인한다.              


위 글은 빅이슈 2월호 22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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