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모던코리아> - 시대유감, 삼풍
글 황소연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 것 같네…’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 속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기원한다. 과거를 뒤로하고 내가 살고 있는 오늘, 세상이 확 뒤집혀버릴 것만 같은 묘한 기대가 꿈틀거린다. 삼풍이 무너진 시기도 그랬다. 모든 것이 급히 팽창하던 1995년. 삼풍백화점 참사는 고급스러운 건물의 붕괴일 뿐 아니라 응집된 욕망의 해체이기도 하다.
<모던코리아>가 모두가 알고 있는 역사를 재구성해 조성하는 긴장감은 내레이션 없이도 다큐멘터리의 참맛을 느끼게 한다. 그간 KBS에 쌓인 각종 아카이브 영상이 그 바탕이다. 한국의 거대한 현대사 곳곳을 신문, 브라운관 TV 속 ‘유머 일번지’ 스타일의 개그와 드라마 대사, 간판의 글꼴, 시민들의 말로 드러내는 편집이 일품이다. 단지 ‘향수’라는 감상으로 요약할 수 없는 서울, 한국의 모습이다.
4편 ‘시대유감, 삼풍’에서는 참사로 인해 삶의 모든 것이 변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 출동했던 구급대원, 서초동 빈민촌을 소재로 글을 쓴 작가,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담당한 검사, 삼풍백화점 사장까지. ‘한국의 지도가 변한다.’고 모두가 입을 모을 정도로 거셌던 각종 발전은 ‘빨리빨리’, ‘서로 좋게’ 같은 말이 기본 매너인 시대를 만들었고, 평범한 시민들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성수대교 붕괴 사건을 담당한 이경재 당시 서울지검 형사1부장의 기억은 처참한 당시를 상징한다. 그는 성수대교 붕괴 사건 규명에 대한 백서 출판의 마지막 검토를 끝낸 6월 29일, 다시 수많은 희생자를 낸 붕괴 사건을 담당해야 했다.
무너진 삼풍백화점 인근에 세워진 간이 병동을 떠올리는 간호사는 당시를 ‘생지옥’으로 기억한다. 쉴 틈 없이 부상자가 밀려오고, 끝없이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실종자를 제외한 사망자는 502명에 이른다. 길 위에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하지만 끝내 만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유가족들. 시청자는 어쩔 도리 없이 2016년 4월 16일을 떠올린다.
한국의 치부를 감추기 급급한 사람들은 영상 속 ‘귀빈 부동산’에 모여 참사 현장으로 인해 땅값이 떨어진다는 원성으로 입을 모았을 것이다. 백화점 쪽으로 차마 발을 디딜 수가 없어, ‘무너진 후에야 가봤다’는 이옥수 작가의 말처럼, 평생 강남 쪽으로 걸음도 못 옮길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지만 해결되기 너무 늦은 상처를 남긴 한국. 지금도 쌓이고 있을 아카이브 영상은 다시 30년 뒤, 어떤 모습을 만들어낼까? 기획의도 대로, 한국의 기묘한 순간들은 늘상 다가오고 있다.
KBS1 목요일 밤 10시 방송
위 글은 빅이슈 2월호 22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