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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Apr 02. 2020

[에디토리얼] 결정

 

편집장. 김송희



저는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합니다. 오늘 아침만 해도 간식을 주문하면서 흑임자 맛도 먹고 싶고, 달콤촉촉초코 맛도 먹고 싶고, 볶음콩, 인진쑥 맛도 먹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에잇! 다 사버려!’라며 일곱 개 맛을 전부 결제해버렸습니다. ‘짬뽕, 짜장? 뭘 먹지? 싶을 때 다 먹으면 되지!’ 하며 탕수육까지 추가하는 사람이 바로 저라는 인간입니다. 우유부단한 편인데 귀까지 얇아서 기자들과 편집회의를 할 때에도 금세 설득되고 맙니다. 편집팀이 회의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 엿듣는다면 주로 이런 소리가 들릴 겁니다. “아, 그래요? 오! 좋다. 그럼 하자.” 이런 편집장이 있는 《빅이슈》의 미래,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두둥)


편집장은 저도 처음이라 몰랐는데, 최종 결정할 게 참 많은 자리더군요. 예를 들어 이 문장을 고칠지 말지, 이 사진 말고 다른 사진을 쓰면 어떨지, 표지 사진은 A안으로 갈지 B안으로 갈지, 디자인은 어떻게 갈지, 논의는 함께 하지만 최종 결정은 편집장의 몫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내가 내린 결정이 정말 최선이었는지 결과가 나온 후에도 자신이 없습니다. 누가 제 대신 결정을 내려줬으면 싶을 때도 있어요. 이 결정이 빅이슈 판매원들의 수익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부담이 됩니다. 무엇보다 이 방향으로 기사를 진행하고 잡지의 정체성을 가져가는 게 맞을지에 대해서는 늘 고민입니다. 


얼마 전 한 독자분께 메일을 받았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며 학원 근처 지하철역에서 잡지를 구매하신다는 독자분은 《빅이슈》 덕분에 위로를 많이 받는다며 긴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우울증을 주제로 한 특집기사가 특히 위로가 되었고, 공부가 고될 때마다 《빅이슈》에서 소개한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으며 힘을 얻는다고도 하셨습니다. 고맙다고 보내주신 글이었는데, 도리어 제가 힘을 얻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사람에게 ‘잘 읽었다’는 독자의 글만큼 달콤하고 뭉클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독자일 때의 저를 떠올려보면 불만을 표하거나 불호의 반응은 쉽게 내보이면서 호감을 표하는 데에는 인색합니다. 잘 읽고 있다, 이 글이 재미있었다, 이 기사는 도움이 되었다… 하는 리뷰를 받으니 저 역시 ‘우리의 신호를 누군가는 제대로 받고 있었구나.’ 싶어서 더 잘하고 싶어졌습니다.


물론 칭찬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잔뜩 화가 난 독자의 전화도 받았습니다. 《빅이슈》의 연재 코너 중 하나를 비난하면서 ‘계속 이 연재를 하면 잡지를 사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으셨죠. 그런 독자의 반응에 일일이 휘둘리지 않고 방향성을 가져가야 하는데, 전 또 귀가 얇아서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정말 다신 안 사시면 어쩌지.’ 싶었습니다. 만약 악평 전화 전에 ‘잘 읽고 있다.’고 응원해준 독자가 없었다면 더욱 흔들렸을 거예요. 칭찬의 말도, 비판의 말도, 모두 귀 기울여 듣되 선택은 신중하게 스스로 해나가야 하겠죠. 여러 고민과 선택들이 이번 호에도 담겼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그 선택들을 어떻게 읽어주실지 모르겠습니다. 단 소리, 쓴소리 언제든 메일로 보내주세요.       


추신, 이번 호는 잡지 디자인과 크기에 변화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한 글인데 왜 이게 추신이 되었는지… 이런 사람이 편집장의 글을 쓰고 있는 《빅이슈》의 미래 괜찮은가. 


 글은 빅이슈 4월호 22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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