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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Mar 27. 2020

[칼럼] 의로운 소수파가 자랑스러운 나라


 성현석



이만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총회장은 자신을 “이긴 자”라고 불렀다. “이기다”라는 표현에 집착하는 것은 꼭 신천지만이 아니다. 열렬한 신도들을 지닌 종교는 대개 비슷하다. 해방 이후에 탄생한 종교인 통일교에선 반공 대신 승공이라는 표현을 쓴다.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차원이 아니라 공산주의를 이긴다는 뜻이다. ‘마귀와 싸워 이기다’라는 표현은 역사가 오래된 종교의 행사에서도 자주 듣는다. 종교계뿐인가. 그렇지 않다. 교회나 성당, 사찰 바깥도 마찬가지다. ‘병을 치료 한다’라고 하면 되는데, 굳이 ‘병마와 싸워 이겼다’라고 하는 경우가 흔하다. 시련을 극복했다고 하지 않고, 시련을 이겨냈다고 한다. 


이기지 못했다는 열패감

이기지 못했다는 열패감 망국과 식민통치, 전쟁을 겪은 나라에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제국주의 침략 시기에 우리는 나라의 힘을 키우는 경쟁에서 이기지 못해 식민지가 됐다. 모진 차별을 겪었다.  “앉으면 죽산竹山, 서면 백산白山”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거대한 무리를 이뤘던 동학농민군은 우금티 마루에서 정부군과 일본군에게 처참하게 패했다. 이기지 못했으므로, 한국 역사는 국가 내부에서 근대로 향하는 씨앗을 발아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우리는 싸움에 진 탓에 근대화 시기를 놓쳤고, 그래서 일본에게 수모를 당했으며, 망국 이후 봉기한 의병 역시 이기지 못한 탓에 오랜 식민 통치를 겪었다. 패배는 죽음이었다. 


이후 진행된 경제 성장 역시 전쟁 흉내에 가까웠다.  더불어 스포츠 경기 역시 전쟁을 닮았다. 대학 입시 전쟁은 사회 구성원 다수에게 승리에 대한 열망을 심는 과정이었다.  ‘이기자’는 구호가 종교의 핵심 교리로 받아들여진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세상에서 이긴 자는 늘 소수다. 다수는 이기지 못한다. 잦은 패배는 승리에 대한 동경을 낳았고, 이는 다시 승자 위주의 질서를 강화해서 “이긴 자”에 대한 동경과 열등감을 심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강자 숭배’

대표적인 친일 지식인 윤치호가 이런 과정을 겪었다. 독립협회 활동을 하며 만민공동회에 적극 참가했던 그는 미국 유학 등을 거치면서 근대 문물에 눈을 떴다. 그는 영어로 일기를 썼는데, 먼저 근대에 도달한 사회에 대한 동경이 강렬했다. 아울러 근대화에 뒤처진 조국에 대한 혐오감 역시 깊었다. “물지 못하면 짖지도 말라”라던, 그의 말은 이런 생각을 잘 드러낸다. 자연계에서 동물끼리 벌이는 생존경쟁과 적자생존 현상에 빗대, 이런 주장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친일파들만 이렇게 생각했나. 그렇지 않다. 해방 이후에 태어난 우리 역시 내면 풍경은 종종 친일파와 닮았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당시엔 “데모를 하려거든 일단 대학부터 가라.”고 했다.


다수파는 늘 비슷하다

정말 궁금해졌다. 우리 세대 다수는 일제강점기 친일파와 거의 닮은 가치관을 갖고 있다. 친일파들이 일본 제국을 지지했던 것처럼 강자를 숭배하고, 패자와 약자를 경멸한다. 보편적인 원칙을 불신하며, 능력 차이 혹은 경쟁 승패에 따른 차별을 강력히 지지한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에 항일운동을 했던 분들은 어떤 마음이었던 걸까. 혹은 지금 친일파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지내는 우리 세대 다수를 타임머신에 태워 일제강점기로 보내면, 그들은 친일을 할까? 안 할까?


법학자 김두식이 쓴 <법률가들>을 보면, 유서 깊은 독립운동가 가문의 자제가 친일 검사가 된 이야기가 나온다. 의병으로 일어나 독립운동을 했던 할아버지는 손자가 그저 잘 살기만을 바란다. 제국대학에 진학하고, 고등문관시험에 붙으니까 축하했다. 손자는 일본 제국의 검사가 됐다. 독립운동을 했던 집안 어른들이 보기엔, 어쩌면 잘됐다 싶었을 수 있다. 조선이 독립하지 못할 바엔, 일본 사람들 밑에서 일하기보다 일본 제국의 하급 관리들을 부리는 입장이 되는 게 낫지 않은가. 하지만 머지않아 일본 제국은 망했고, 똑똑하던 손자의 이름은 친일인명사전에 기록됐다. 손자 입장에선 억울하다. 그는 주변 어른들의 권유대로 공부를 열심히 했을 뿐이다. 그래서 유능해졌고, 시험에서 “이긴 자”가 됐을 뿐이다. (중략)


나라가 다시 망하면, 누가 독립운동을 할까

그런데 친일파를 빼다 박은 이들이 그저 다수파가 되고 싶어서 친일파를 비난하는 시대라면, 독립운동가들을 기릴 필요가 없는 걸까. 일제강점기나 지금이나, 우리는 늘 다수파에 속하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다수파라는 편안한 자리에서 소수파를 조롱하며, 강자를 숭배하고 약자를 차별한다. 그러니까 같은 세대 다수파에게 외면당했던 독립운동가들을 우리가 기념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인 걸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독립운동가들을 기념하는 일은, 다른 이유로도 중요하다. 일종의 인센티브 설계 차원이다.


나라가 망했는데, 다수는 새로운 지배자 편에 섰다. 소수는 다수의 냉소와 체념을 뚫고 새로운 지배자와 차별 질서에 맞서 싸웠다. 독립 이후에 이런 소수를 기념하지 않으면, 아울러 새로운 지배자에게 적극 부역했던 이들을 단죄하지 않으면, 나라가 다시 망했을 때, 아무도 독립운동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인센티브 설계 차원에서라도,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에 대해선 강력한 보상을 해야 한다. 아울러 적극적인 친일 부역자들에 대해선 엄격히 대응해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한 인센티브 설계는 언제 어디서나 필수적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고통스러워한다. 어떤 이들은 그저 불편해할 뿐이지만, 어떤 이들은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방역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번 사태가 마무리된 뒤에도 그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에 빗댈 수는 없겠으나, 그들 역시 소수파이되 의인들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가 마무리된 뒤에도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아울러 역사가들이 조선 망국 과정을 복기하듯, 사태가 악화되고 해결된 과정 전체를 꼼꼼히 기록하고 짚어봐야 한다.


성현석 

언론인. 17년 남짓 기사를 썼습니다. 앞으로는 다른 글을 써보려 합니다. 


 글은 빅이슈 3월호 22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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