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자판기 커피를 드셔보세요
글·사진. 황소연
“자판기 커피를 무슨 맛으로 먹느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아메리카노’와 자판기 커피는 동맹관계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원두커피가 널리 보급되기 전에는 카페인의 주요 공급원(?)이었을 것이다. 다른 것이지, 어느 하나가 틀린 것이 아니다. 그건 두 종류의 커피 모두를 좋아하는 나라는 존재가 증명한다. 자판기 커피, 가루커피, 믹스커피, 원두커피 등을 골고루 먹어온 나는 자판기가 보이면 기계의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아마도 이제는 새로 만들어질 일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인 듯하다.
여기저기 존재감 과시하는 자판기 커피
아직도 많은 드라마에서 자판기 커피가 대화를 위한 매개로 등장한다는 점은, 나처럼 자판기 커피의 존속을 응원하는 사람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얼마 전 SBS <하이에나>에서 금자가 희재를 위로하기 위해 준비했던 음료도 아메리카노가 아닌 자판기 커피였다.
나에게 자판기 커피의 사용법을 알려준 드라마라면 역시 MBC의 <뉴하트>를 빼놓을 수 없다. 대학병원 흉부외과 레지던트 1년 차인 혜석(김민정)과 은성(지성)의 친밀감을 높여준 것도 자판기 커피였다. 현실에선 손을 녹이거나 급하게 당분이 필요할 때 마시는 용도인데,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캐릭터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하는 도구라는 점이 재밌다.
‘구시대의 유물’이 되기엔 아직 일러
가끔 “위생적인지 확인도 안 되고, 감미료도 잔뜩 들어가는데 안 먹는 게 낫지 않냐.”는 지적이 떠오른다.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는 물건 앞에 서 있으니 자꾸 혼나는 기분이다. 맛도 균일하지 않다. 사실은 자판기마다 ‘밀크커피’와 ‘설탕커피’의 정의가 다른 것 같다. 100원에서 200원 정도 차이 나는 ‘일반커피’와 ‘고급커피’의 맛 차이도 아리송하다.
사실 자판기 커피를 좋아해서, 언젠가 내 집에 자판기를 놓고 싶다는 꿈을 품었었다. 커피 자판기를 얼마에 파는지 궁금해져서 검색해보니 작은 것이 30만 원에서 50만 원 정도다. 문제는 자판기를 놓을 내 집이 없다는 건데, 당분간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카페 대신 주변의 자판기를 찾아가봐야겠다.
자판기 커피를 생각하다 보면, ‘노키즈존’도 없다. 잘 살펴보면 가끔은 복숭아 아이스티 같은 신기한 메뉴도 볼 수 있다.(심지어 여름용 얼음 자판기도 있다!) 커피를 못 마시는 사람을 위해 마련했겠지만, 나는 어쩐지 부모의 손을 잡고 가다가 자판기 커피 버튼을 눌러보고 싶어 할 어떤 어린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위 글은 빅이슈 4월호 22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