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위한 예민함
글 | 일러스트. 박정은
불안과 예민함 사이
그림 그리는 프리랜서로 지내다 보면 혼자 부유하고 다니는 둥둥 떠 있는 섬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의뢰인과 전화나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으면 한 번도 만나지 않고도 충분히 일이 가능하다. 그렇게 혼자 둥둥 떠다니다 보니 자연스러운 거리두기를 했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금방 지쳐버렸다.
거리두기는 나를 보호할 수 있었다. 내가 만날지도 모르는 어떤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막아주었다. 집 밖으로 나가면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타워 크레인 같은 위험물이나 아스팔트 바닥의 원형 맨홀이 수도 없이 많았다. 언제 저 타워크레인이 쓰러질지, 내가 밟은 맨홀이 무너져 빠질지 모르기에 몸과 마음은 부산했다. 그렇게 천장이 무너질까 봐 앉지 못하는 사람으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넌 왜 그렇게 예민해?”,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라는 말을 들어왔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리와 냄새와 사람들의 움직임은 가끔씩 내 신경을 건드렸고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어느새 나는 누군가 내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침범이라 느끼는 아주 예민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모든 행동엔 이유가 있었고 불안장애라는 병명이 되어 그동안의 내 행동과 상태를 설득시킬 수 있었다. (중략)
당신을 위해 내가 예민한 거라고요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 덕분에, 드디어 내가 기다리고 원하던 세상이 왔다. 그동안 손 씻기, 기침예절과 함께 앞뒤 사람과 떨어져서 줄서기 등 개인적인 거리 유지에 홀로 힘써왔던 나에게, 내가 생각한 세상이 틀린 게 아니라고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날이 드디어 온 것이다. 사회적 불안은 화장실을 나오면서 손을 씻는 걸 보여준 적이 없던 사람들의 손을 씻게 만들었고, 마스크를 쓰게 했다. 기침을 타인의 얼굴에 대고 하던 사람이 그렇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의 눈치까지 보게 했다. 이제 타인을 위해서 조금 예민해지기를 바란다.
박정은
일러스트레이터. <식물저승사자>, <1982 야구소년> 등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위 글은 빅이슈 4월호 22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