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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Apr 29. 2020

[서울 미감 유감] 어떤 곳에서 결혼하고 싶나요?

     

글 | 사진. 신지혜



서울의 건물은 대개 요란하지만, 이 중 으뜸은 예식장이 아닐까? 현대 한국의 예식장은 유럽 어딘가의 신전 같거나 성 같거나 교회 같다. 그리스 신전의 페디먼트와 오더, 로마 건축물의 아치와 아치의 정점을 이루는 이맛돌, 고딕 성당의 첨두아치가 예식장의 외벽 장식에 두루 쓰인다. 지붕에는 테두리에 코니스를 두르기도 하고 이 모든 일이 한 건물에서 벌어지기도 한다. 현대 한국의 예식장이 고전주의 양식의 요소를 사용해서 얻고자 하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마당을 넘어도심의 예식부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혼례는 신부 집 마당에서 치렀다. 일가친척과 마을 사람들이 모여 마당을 둘러싸고, 마당 가운데에서 결혼 당사자들이 혼례를 올렸다. 혼례를 진행하며 따르는 행위 하나하나가 의미를 가졌고, 의례를 축하하고 하객을 대접하는 잔치가 의례와 동시에 벌어졌다. 그러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전파된 이후 1890년 2월, 예배당에서 서구식(기독교식) 결혼식을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중략)


어떤 곳에서 결혼하고 싶나요?

문제는 집이 아닌 곳에서 올리는 결혼식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사회적으로 합의된 상이 없는 상태에서 건물이 먼저 만들어졌다는 데 있다. 신식 결혼의 출발점에 교회가 있었으니 예식장은 이견 없이 그 길을 따라갔을 것이다. 성스럽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전달하기에 화려하고 이국적인 서양의 건축물이 적합했을 것이다. 이렇게 한국적인 예식장이 탄생했다.


현대 한국의 예식장은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주인공 무니가 친구의 손을 붙잡고 달려가던 매직 캐슬 같다. 예식장 외관은 서울의 어떤 건물보다도 행인들의 눈길을 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신전 같기도 하고 성 같기도 하고 교회 같기도 한 예식장을 갖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결혼식이 무엇인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충분히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건 아닐까. 결혼식에 대해 충분히 고민한 후에야 그 생각에 걸맞은 결혼식장을 갖게 될 텐데. 


신지혜

아빠가 지은 집에서 태어나 열두 번째 집에서 살고 있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건축설계 사무소에서 일한다. <0,0,0>(2015)과 <건축의 모양들 지붕편>(2016)을 독립 출판으로 펴냈고, <최초의 집>(유어마인드, 2018)을 썼다. 건축을 좋아하고, 건축이 가진 사연은 더 좋아한다. 언젠가 서울의 기괴한 건물을 사진으로 모아 책을 만들고 싶다. 건축 외에는 춤과 책을 좋아한다.      


위 글은 빅이슈 4월호 22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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