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빅이슈코리아 Apr 30. 2020

[칼럼] <기생충> 연교의 성선설은 위험하다


 성현석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다.” 누가 처음 쓴 표현인지는 불분명한데, 다양한 목적으로 쓰인다. 보수 성향 경제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 사회복지 강화 등을 비판할 때도 자주 인용한다. 정부나 시민단체가 좋은 의도로 제시한 정책이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진보 성향 학자들도 가끔 쓴다. 개인이 착한 의도로 하는 자선이나 봉사가 때로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감추곤 한다는 뜻이다. 동양 사회에선 ‘성악설’이 비슷한 맥락으로 활용됐다. 


왕에게 성악설이 유리한 까닭은

진나라의 통일제국이 오래가지 않았던 점에서도 드러나듯, 사람의 본성을 나쁜 쪽으로 의심하는 사상은 지지받기 어렵다. 절절한 호소를 하는 사람을 앞에 놓고, ‘그 역시 본성은 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란, 몹시 피곤한 일이다. 그보다는 ‘사람은 누구나 착한 본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많은 이들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이런 입장이 ‘성선설’이다. 


설령 행색이 남루하고, 말이 험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는 원래 착한 사람인데, 환경 때문에 거칠어졌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왕처럼 강한 권력을 누리는 통치자도 아니면서, 하루 종일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닌 지식인, 선비 계층이라면 ‘성선설’을 지지해야 백성의 사랑을 받는다. 그들은 이를 기초로 강한 왕 앞에서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근대 민주사회에선 어떤 입장이 더 쓸모가 있을까. 왕처럼 절대 권력을 가진 존재도 없고, 귀족처럼 전통에 기대 신비화된 집단도 없다. 공식적으론 국민 전체가 주권자다. 누구나 왕과 백성의 속성을 두루 지닌다. 아울러 공교육이 확대되고, 미디어가 발달했으므로, 누구나 지식인의 성격을 띤다. 요컨대 상당수의 보통사람들은 때로는 왕이고, 때로는 선비이며, 때로는 노동자, 농민이다. 그러므로 성악설과 성선설을 두루 취하게 된다. (중략)


적어도 지금은, 성악설

영화 <기생충>에서 박 사장(이선균)의 부인 연교(조여정)가 그의 집에서 일하는 기택네 가족에게 보여준 태도가 딱 이런 경우다. 그는 매사를 ‘성선설’로 접근한다. 자기가 속한 계층을 벗어날 일이 전혀 없다면, 효율적인 선택이다. 같은 계층 안에서만 지낸다면, 지나친 의심은 효과보다 비용이 더 크다. 


하지만 민주 정치는 모든 계층의 참여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기생충> 속 연교처럼 아무런 의심이 없는 태도는 위험하다. 그런데 개정 선거법은 왜 ‘성선설’에 가까운 입장에서 만들어졌는가. 정치에 참여하고, 여론을 주도하는 이들이 죄다 비슷한 계층에서 배출된 탓이라고 본다. <기생충> 속 연교처럼 자기가 속한 계층을 세상 전부로 아는 태도가 너무 굳어진 나머지, 생활 세계의 습속을 그대로 정치 활동에 반영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이런 일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적어도 지금은, ‘성악설’이 휴머니즘이다.          


성현석  

언론인. 17년 남짓 기사를 썼습니다. 

앞으로는 다른 글을 써보려 합니다.      


위 글은 빅이슈 4월호 22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 미감 유감] 어떤 곳에서 결혼하고 싶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