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와서 친구와 ‘덕토크’를 나눴다. 20대 때 함께 좋아했던 작가인지라 신작을 읽자마자 오랜만에 그 친구에게 연락을 했고, 우리 둘의 반응은 “그 작가 이젠 별로인 것 같아.”였다. 신작이 기대보다 실망스러웠다며 우리는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예전엔 진짜 좋았는데, 왜 뒤로 갈수록 작품이 별로지?” “맞아, 작가가 변한 것 같아.”
최근엔 이런 일들이 잦다. 과거엔 정말 좋아했던 것들인데 다시 보니 별로이거나, 작가나 감독의 신작이 과거만 못하다 평가하는 일.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왜 갈수록 좋아하는 건 줄어들고 싫어하는 것만 많아질까. 변한 건 작가가 아니라 내가 아닐까. 무엇을 접하든 장점,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찾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기대보다 못하고 실망스러운 지점, 단점을 먼저 찾게 된다. 나를 두근거리게 하고 충만하게 하는 것을 찾기보다 ‘저런 건 나도 만들겠다.’라며 단점을 나열하고 싫어하는 것만 늘어나는 삶. 나이가 들면서 평가 기준이 높아져서일까. 예전엔 수첩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리스트가 빼곡했다면 이제는 싫어하는 것들만 천지인 사람이 된 것 같다.
물론 이것은 나쁜 징조다. 좋아하는 것을 기다리고, 사랑하고, 즐길 때의 기쁨을 잃고, 그 자리에는 불평만 채워진다. 영화든 책이든 음악이든 잘난 나의 기준을 채우지 못하는 함량 미달의 작품들만 많아, 그건 이래서 싫고 저건 이래서 문제라고 남의 결과물을 폄훼하느라 바쁜 사람의 미간은 항상 찌푸려져 있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과거의 드라마, 영화 등 과거에 좋아했던 것만 다시 보는 것도 나에게 ‘새로운 것’을 즐기고 사랑할 마음의 자리가 없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세상에는 내가 보지도 접하지도 못했을 무궁무진한 영화, 책, 음악과 사람, 장소와 기술들이 넘쳐나는데 계속 과거만 그리워하는 것은 나의 세계를 좁게 만드는 것일 테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 집에 있는 잡동사니(책과 CD와 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장난감들)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아, 신상 업데이트를 어지간히 안 했구나.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할 때 신이 나서 자랑하는 사람, 과거의 나는 분명 그런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잡지를 만드는 것도 결국은 좋아하는 것들의 리스트를 잘 모아서 독자와 나누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호에도 독자들에게 ‘이것 좀 잡숴봐.’라고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것들을 모으고 싶었다. 우리가 일주일 전에 만든 ‘좋아하는 것들’의 리스트를 독자들은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읽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잡지의 재미다. 앞으로도 독자들과 좋아하는 것들을 지면 위에서 계속 나눌 수 있길 바란다.
편집장 김송희
위 글은 빅이슈 5월호 22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