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빅이슈코리아 May 06. 2020

[온더로드] 웃어줘서 고마워


글 | 사진.  박 로드리고 세희      



오래전 파키스탄의 스와트 밸리를 여행할 때였다.  동아시아에서 오는 방문객이 워낙 드문 지역이어서 그런지 집주인의 지인들은 한국에서 온 여행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나를 구경하러 왔었다. 이방인에게 환대를 베풀기로 유명한 무슬림 사람들답게 그들은 차 한 잔 나누며 안면을 겨우 익힌 나에게 스스럼없이 자기네 집에서 식사를 같이 하자며 초대하곤 했었다. 


초대를 받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일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니까. 그런 기회가 아니라면 그저 관광객이나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상업적인 시설과 업소를 방문하는 것으로 여행이 끝나버리기도 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기꺼이 그를 따라나섰다. 내가 묵던 숙소와 같은 마을의 어느 집이겠거니 싶었으나, 내가 머물던 마을보다 훨씬 더 작고 외진 산골이었다. 그가 나를 이끌지 않았다면, 여행자로서는 방문할 엄두도 못 냈을 곳이었다.



선생의 집에는 어린 두 딸이 있었다. 낯선 인종의 외모를 한 나를 보며 수줍어하다가도 자기들끼리 귓속말로 키득거리며 웃을 땐 그 모습이 너무나도 순수해 보여, 조금은 숙연한 마음이 일었다.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인간의 원형이 저럴 테지. 자매와 한참을 놀아주고 나서 선생과 나는 뒷산으로 난 오솔길을 함께 걸었다. 


우리는 좁은 산길을 내려서고 있었고, 아래쪽에선 물동이를 인 여자아이 둘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 중에 하나가 나를 발견하곤 난데없이 울음을 터트리며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당혹스럽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길을 비켜주기 위해 빨리 내려가고 싶었지만, 그러면 아이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는 꼴이 되니 더욱 겁먹을 것이었다.


때마침 선생이 먼저 내려가서 소녀를 달래며 한참 무어라 설명을 했다. 내가 아이를 잡아먹는 괴물이 아니란 것쯤을 얘기했겠지. 한참을 설명 듣더니 그제야 울음을 그쳤다. 휴-. 아이는 얼마나 놀랐기에 그렇게 울었을까. 잘못한 건 없지만 그저 미안했다. 아이는  내 마음을 알 바 아니겠지만, 나를 돌아보며 난데없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쩜 저렇게 표정이 환할 수 있나.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박 로드리고 세희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넘나드는 촬영감독이다. 

틈틈이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고 사람이 만든 풍경에 대해서 글을 쓴다. 


위 글은 빅이슈 5월호 22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뮤직] 혼합물로의 발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