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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un 06. 2020

[TV] 영웅의 자리

SBS 스페셜 <그녀의 이름은>


 황소연 

사진 <SBS 스페셜> 캡처     


SBS 홈페이지에서 무료 다시보기 가능


전두환은 눈을 감고 있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에서, 그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부인 이순자 씨가 흔들어 깨워야 할 정도였다. 그가 외면한 것은 재판정뿐 아니라, 아직은 무릎 꿇은 전두환 동상에 ‘뿅망치 응징’을 할 수밖에 없는 광주의 시민들이었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억하는 SBS 스페셜, <그녀의 이름은> 특집 방송이 한 시간가량 주목하는 것은 당시 광주의 여성들이다. 밥을 짓고, 헌혈을 하고, 성명서를 쓰고, “광주에선 폭력은 없어야 한다.”고 외쳤지만 그들의 운동은 정확히 기록되지 않았다. 책임자들의 숙연한 사죄도 없었다. 트라우마로 인해 극단적인 시도를 하거나,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곡절은 역사에서 밀려났다. 이 다큐멘터리는 당시 여성들의 ‘이름’을 찾아 역사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이다.


1980년 5월 27일, 도청 최후진압 시 마지막 새벽 방송을 했던 박영순 씨는 광주를 떠나 ‘박수현’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이 방송엔 박 씨 외에도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사실을 숨기고 살아온 여성들이 많이 등장한다. 아이들에게 가야금을 연주해주고 싶었던 꿈, 일터의 사장님, 또 학생이던 일상은 사라졌지만, 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망설일 수 없었다고. 더 많은 사람에게 광주의 상황을 알려야 했다고. 다시 80년 5월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행동했을 거라고 말이다. 



박영순 씨는 ‘계엄법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을 때 수천 번 이 문장을 말했다고 밝혔다. (중략)


여성들의 이름을 기록하는 것은 곧 5월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여자가 왈패처럼 돌아다닌 탓”이라고 비난하던 목소리…. 차별 앞에서 망설이지 않았던 이들의 이름을 제자리에 두는 것이야말로 ‘5월 정신’을 확장하는 일이다. 죄인의 침묵과 5·18을 조롱하는 목소리가 감히 가릴 수 없는 여성들의 이야기. 역사의 영웅은 영웅의 자리로, 죄인은 죄인의 자리로 가야만 한다.     


위 글은 빅이슈 6월호 22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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