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ng <염증나무>
글. 블럭
30대 초중반, 혹은 그보다 나이가 많은 힙합 음악 애호가라면 한 번쯤은 ‘0CD’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다이나믹 듀오와 협업한 것으로 가장 많이 알려졌지만, 당시 개성 강한 스타일과 깊이 있는 가사로 이름을 알린 0CD는, 그러다 자취를 감췄다. 직접 프로듀싱도 하고 보컬도 랩도 다 하는, 싱어송라이터는 그렇게 사라지나 싶었다.
이후 2019년 7월, gong(공)이라는 음악가가 등장한다. ‘안개(Haze)’라는 싱글을 발표한 그는 이후 웹진 힙합플레이야 콘텐츠의 주제가인 ‘내일의 숙취(부제: 실망하지마)’를 공개했고, 11월에는 데뷔 후 첫 EP인 <Seoul Boutique>를 발표한다. 0CD와 gong이 같은 인물이라는 것은 여러 정황을 통해 얼추 알 수 있었다. 8년 정도의 공백을 깬 등장은 다소 의외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생소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는 ‘재시작 아닌 재시작’을 하게 된다. 어쩌면 이 음악가의 진짜 첫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든 이 음악가는 애써 현재 자신의 모습을 가꾸거나 감추려 들지 않는다. 그의 음악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준다. 이번 앨범 <염증나무>를 살펴보면 그의 곪아 있는 여러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라이브클립으로 공개된 ‘기도(Prayer)’나 약간은 우악스러운 ‘낡은 뱅뱅(OB)’보다 나머지 두 곡인 ‘염증(Infection)’과 ‘쿨쿨(ZZZ)’이 훨씬 좋다. (중략)
공백기만큼 잘 연마된 음악들
모든 곡을 작사 작곡하며, 쓰이는 악기도 직접 연주하는 gong의 앨범은 특정 시기의 유행을 의식하지 않는다. 과거 0CD가 힘 있는 곡을 통해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 매우 애쓰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gong은 다른 방법으로 본인 이야기를 풀 줄 안다. <Seoul Boutique>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긴 시간을, 그러니까 2006년부터 음악을 시작해 이듬해 정규 앨범을 내고 2008년 아메바컬쳐에 합류하여 보냈던 잠깐 이후의 공백까지 포함하면, 긴 시간을 그는 혼자 보냈다. 그래서 이만큼 외로움에 사무치는, 절절한 곡이 나오는 것 아닐까. 최근의 랩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낡은 뱅뱅(OB)’ 같은 곡이 더 흥미로울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장르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염증(Infection)’이나 ‘쿨쿨(ZZZ)’ 같은 곡을 추천하고 싶다. 다시 시작했지만, 더 늦게 빛을 보면 어떠한가. 좋은 음악은 세상에 나온 이상, 언젠가는 알려지고 기억될 것이다.
블럭 (박준우) by 포크라노스
포크라노스는 현재의 가장 새롭고 신선한 음악들을 소개하며, 멋진 음악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큐레이터이자 크리에이터입니다.
위 글은 빅이슈 6월호 22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