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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ilee Jun 10. 2020

우울감.

35_ep 01. 여기는 추운 겨울, 뉴질랜드. 

뉴질랜드는 18일째 코로나 확진자 0명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고 있다.

이런 결과 끝에는 8주간의 봉쇄령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새삼 실감하게 되지만 동시에 왠지 모를 우울감이 찾아온다. 이제는 정신적으로 찾아온 왠지 모를 폐쇄적인 생각과 고군분투하고 있달까. 이런 상태를 겪고 있을 때 즈음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반 고흐라는 사람 그 자체와 600통이 넘는 그의 편지들을 한글로 옮긴 신성림이란 사람에 새삼 감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글 주제를 '우울감'으로 잡고 순차적으로 나의 상태를 기록하려 한다. 몇 개의 에피소드가 이 글감을 주제로 탄생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울을 관찰하고 파 보려 한다. 






뉴질랜드 겨울은 뼈가 시릴 만큼 춥다. 거의 나무집이기 때문에 아무리 신축 건물이라고 해도, heat pump (냉난방 장치가)가 없으면 집은 금방 냉동고처럼 추워진다. 새벽에 코가 시려 깰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하루 일과가 끝나고 집에 오면 차가운 냉기와 함께 왠지 모를 고독한 쓸쓸함만 집 전체를 깜 쌀뿐이다.

원래도 개인주의 사회에 산다고 덤덤하게 받아들이며 나만 외로운 게 아니라며 꾸역꾸역 살았지만 봉쇄령이 내려진 후의 뉴질랜드는 더더욱 나를 혼자만의 섬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적응기 끝엔 고독한 추위와 깊은 우울감이 서로 벗하며 간신히 살아남은 후였다. 친구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기쁨은 금방 귀찮음으로 바뀌어 버렸고, 집 안에 틀어 박혀 있는 것이 익숙해진 나는 나의 활동 영역을 넓히기보다는 그 에너지를 저축하기에 바빴다. 움직이고 싶지 않았고 그 누구에게도 다가가고 싶지 않았으며 이상한 인간관계에 꼬여 미움받고 싶지도 않았다. 시린 공기를 애써 밀어내는 것처럼 인간관계에 있어 바짝 움츠려 들어 기지개 필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을 맞닥 드리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 책 속으로 과감히 걸어 들어갔다. 눈에 초점이 풀려 이곳저곳을 방황하던 내게 고흐는 말했다. 


겨울이 지독하게 추우면 여름이 오든 말든 상관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을 압도하는 것이다.
1879/10/15


현재 나의 생각을 정확히 읽는 듯한 과거의 사람. 고흐는 결국 그 냉혹기는 곧 끝이 날 것이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며 새로운 계절이 도달할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결국 지나간 그 추운 겨울 끝에 찾아 올 희망에 대해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여전히 10월 15일과 같은 깊은 부정이 긍정을 삼켜버린 6월 10일 겨울이다. 사람이 항상 따뜻한 날씨만을 누릴 수 없는 것처럼 고흐는 그렇게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일상 생화 속에서 신선한 활기를 유지하는 것은 강물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여기보다 그곳에서 생활하기가 더 힘들겠지.
파리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절망에 빠지겠니.
1882/10/22
 


이렇게 정확하게 본인을 비춰 볼 수 있었던 반 고흐의 삶에 나는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선한 활기를 유지" 하기 위해 반 고흐는 그동안 얼마나 반복된 노력을 하며 살았는지- 그의 붓놀림만큼이나 궁금해지는 그의 삶의 패턴이었다. 스케치- 수채화- 유화로 넘어오기까지 그는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았을 만도 한데 계속 그렸고, 자신의 대한 노력을 스스로 볼 줄 알았고, 인정할 줄 알았으며 본인 스스로를 마주하기까지.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화가로 남게 되었다.


나는 우울감 속 허우적 대고 있는 나 자신을 박 차고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기보다, 그 기류에 녹아버리듯 나 자신을 내어주고 있다. 그리고 현재 무수히 쏟아지는 자기 계발 서적이나 심리에 관련된 수많은 유튜브 영상들은 이런 나만의 처방전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나와 반대되는 생각들에 백기를 들거나 의기소침해질 시간에 우울감을 더 자세히 관찰하며 다음 글을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 현재 시점에서는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고독한 겨울이던, 무더운 여름이던 여전히 그 붓을 손에서 놓지 않고 끊임없이 자연을, 주변 환경을, 본인을 고찰했던 반 고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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