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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un 10. 2020

[칼럼] 재능 상속세를 내자


글. 성현석     


우리는 차별 속에서 살아간다. 예컨대 은행은 직업을 차별한다. 소득이 안정적인 이들은 더 낮은 금리고 더 많은 대출을 할 수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억울한 일이다. 소득이 불안정한 이들, 그래서 이자 감당하기기 힘든 이들에게 오히려 낮은 이자율을 적용해야 옳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돈을 빌리는 입장이라면, 이런 주장에 공감할 테다. 반면 돈을 빌려주는 입장에선, 돈을 갚을 가능성이 높은 이들을 우대하자는 주장에 더 솔깃해진다. (중략)


평등 요구도 양극화


이처럼 차별이 현실에서 작동하는 방식은, 들여다볼수록 까다롭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합의는 있다. 인종이나 성별, 외모 등에 따른 차별은 규제가 이뤄지는 추세다. 여러 한계는 있지만, 이처럼 타고난 조건에 따른 차별은 옳지 않다는 합의가 있다.

그런데 그 역시 따져보면 복잡하다. 타고난 조건의 범위는 대체 어디까지인가? 부모의 재산과 가정환경 역시 타고난 조건이다. 집에 책이 흔하고, 부모가 고급스러운 어휘를 쓴다면, 자식 역시 언어 능력이 좋을 가능성이 크다. 그 덕분에 각종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면, 타고난 조건의 혜택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부모의 교육 수준이 높은 학생의 언어 영역 시험 점수에 대해서는 약간의 차별을 두는 게 옳다는 주장도 할 수 있다.


물려받은 재능에 세금 매긴다면

하지만 그 논리를 기계적으로 인정하면, 이런 일이 생긴다. 누군가가 타고난 재능 덕분에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안정적인 직업을 얻었다. 그는 은행에서 싼 금리로 돈을 빌려 자산을 불렸다. 그의 자식은 넉넉한 환경에서 자란 덕분에 세련된 취향을 지닌 매력적인 어른이 됐다. 그래서 비슷한 취향을 지닌 배우자를 만났다. 배우자 역시 좋은 환경에서 취향을 다듬고 교양을 쌓았다. 그들의 자녀는 부모, 조부모보다도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다.


어떤 부모는 좋은 재능 덕분에 안정적인 직업을 얻었다. 그 재능이 꼭 자식에게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자식이 안정적인 직업을 얻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부모는 조바심을 낸다. 무리한 사교육을 시킨다. 재능 없는 자식이 위험해지는 것을 막으려면, 물려줄 자산을 쌓아야 한다. 좋은 재능을 타고난 부모 역시 삶이 고단해진다. 그런데 재능에서 비롯된 성취에 세금을 매긴다면, 그렇게 마련한 재정으로 사회 안전망을 두텁게 한다면, 상황이 바뀐다. 좋은 재능을 물려받지 못한 이들, 그래서 안정적인 직업을 얻지 못한 이들의 삶 역시 지금보다는 덜 위험하므로, 부모는 무리하게 자산을 쌓거나 사교육비로 너무 큰돈을 쓸 필요가 없다. 세금 더 내더라도, 길게 보면 그게 이익이다.           


성현석  

언론인. 17년 남짓 기사를 썼습니다. 앞으로는 다른 글을 써보려 합니다.     


위 글은 빅이슈 6월호 22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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