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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un 09. 2020

[욕아일기] 둘째는 둘째다

너무 잘 알아서 돌아갈 수 없는 길


글 l  사진.  박코끼리


7년 연애 끝에 결혼을 했건만 둘이서 지지고 볶으며 사는 게 재미있어서 ‘거사’를 매년 미루었다. 결혼한 지 수년이 됐는데도 애가 없는 부부에겐 필히 말 못 할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는 지인과 친척들은 우리를 난임 혹은 불임이라 짐작, 아니 확신하고 있었다.


여든을 훌쩍 넘긴 시외할머니께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나를 택시에 태우시더니 ‘아이 잘 들어서는’ 한의원에 데려가기도 하셨고, 처음 보는 사촌의 사돈 어르신께서는 대전 어딘가 쌍둥이를 ‘한 방’에 갖게 해준다는 병원을 추천해주기도 하셨다.


그렇게 결혼한 지 6년쯤 되었을 때 가족구성원을 늘릴 결심을 했고 감사하게도 그해 바로 아이가 생겼다. 이로써 우리 부부의 건재함이 증명되자 진심 어린 축하와 함께 업보처럼 쌓여 있던 질문 세례를 받고 있다.      


그래도 둘은 있어야지, 하나는 외롭다     


아이를 낳은 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아마도 ‘둘째는?’일 것이다. 잘 모르겠다거나 생각이 없다는 식으로 대답하면 가끔 정색을 하면서 왜냐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나를 왜 설득하려 하는지 내가 왜 그를 이해시켜야 하는지 모르겠다.


출산 후유증으로 무릎이 시려 네 발로 기어 다니던 시절, 몇 년 만에 만난 고모들은 내가 노산이라 회복이 더디다며 더 힘들기 전에 얼른 하나 더 낳으라고 입을 모았다. 기분 좋게 웃어넘기고 싶었으나, 고모 셋이 번갈아가며 한 마디씩 할 때마다 부지런히 받아쳤다. 내 자식 낳다가 잘못돼서 아빠 딸자식 죽을 뻔했다, 둘째 낳으면 고모들이 키워줄 거냐, 애 하나 키우는 것도 벅찬데 요즘 서울 집값이 얼만지 아냐. (중략)


차원 이동은 여기까지

엄마가 된 후 내가 깨달은 ‘사랑’은 하나의 관념이라기보다 오랫동안 이야기로만 전해 듣던 어느 신대륙에 가까웠다.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으나 상상도 못 했던 것들이 나를 걸핏하면 넘어뜨리고 또 한사코 일으켜 세우는 무지막지한 세계랄까.


이 사랑은 마치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본 것처럼 너무나 선명하고 또렷해서 이전까지 나를 거쳐 간 다른 사랑들이 모두 엉성한 습작처럼 느껴질 정도다. 나는 이제 이곳이 아닌 다른 땅을 딛고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낯설고 수상한 세상에서 둘 이상을 보살필 여유와 용기도 없다고 결론 내렸다. ‘둘째는 사랑’이라 또 새로운 차원이 열린다는데, 궁금해도 잘 참으며 그냥 한 단계 덜 매운 세상에서 적당히 매콤하게 살고 싶다.      


첫째는 내 인생


어떤 길은 몰라서 갈 수 없지만 어떤 길은 너무 잘 알아서 걸음을 주저하기도 한다. 엄마가 된 설렘과 애틋함을 일기장에 꾹꾹 눌러 쓰고, 언젠가 아이가 쓸 그릇들을 직접 빚어 굽고, 거의 매일 아이의 일상을 기록하고, 뭘 대단하게 한 것도 없는데 이걸 한 번 더, 1인분 더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 나는 용케도, 내가 더 소중하다.


먼저 태어난 아이가 외로울까 봐, 늙어서 내가 적적할까 봐, 남편이 딸을 원해서 혹은 부모님이 손자를 기다려서, 같은 이유로 나를 한 번 더 쥐어짜고 싶지 않다. 또 시간이 지나 기억이 흐려져 마음이 변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내 아이처럼 나의 일상을 한 발 두 발 되찾고 있는 나를 응원해주고 싶다.           


박코끼리

하나라도 얻어 걸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쓴다. 요즘은 일생일대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주로 참을 忍을 쓰고 있다.        


위 글은 빅이슈 6월호 22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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