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정의 돈 크라이
글. 정문정
일러스트. 조예람
주 3일만 일하는 삶은 어떨까?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에서 주 3일만 문을 여는 식당인 ‘목금토식탁’을 운영하는 이선용 대표의 이력은 독특하다. 그녀는 요리사가 되기 전 금융권에서 일했다. 뉴욕에서 MBA 과정을 마치고 월스트리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안정적인 루트를 밟았지만 금융위기를 겪으며 오래하고 싶은 일을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회사에 다니면서 요리를 배우다 전업 요리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소셜 다이닝 레스토랑을 오픈했는데, 흥미로운 점은 그다음이다. 뉴욕의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력을 살려 한국에서도 레스토랑을 크게 시작할 수 있었을 텐데 1인 가게로, 그것도 주 3일만 여는 식당을 시작했다는 것. 이 대표는 헤이조이스와 인터뷰하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회사에 일이 줄기 시작했는데 그때까지 월급의 정도로 자신의 가치를 규정하던 동료들이 무너지는 걸 많이 보았다고. 이 일을 계기로 선용 씨는 돈으로 자신을 규정하지 않는 삶, 돈에 끌려다니지 않고 시간을 주도적으로 쓰는 삶을 바라게 되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어른이 되면 시간을 써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무언가를 소비하며 매일을 보낸다. 그 루틴에서 벗어나 원하는 일과 삶의 방식을 고민하게 되면서 떠올린 것이 주 3일만 일하는 식당이었다.
돈에 끌려다니지 않고 주도적으로 시간을 쓰는 삶이란 부자에게나 가능한 이야기라고 우리는 무심히 여긴다.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라고. 누군가는 이 사람의 삶을 벌 만큼 벌어둔 사람의 자아실현 놀이나 취미 생활 정도로 폄하할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조차 현실성 없다고 비판받는 현실에서 주 3일 근무는 그 살기 좋다는 북유럽에서조차 볼 수 없을 듯한 판타지다.
돈 벌기보다 어려운 돈 잘 쓰기
TV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 있다. 대여섯 살로 보이는 아이들에게 진행자가 질문을 던져 각각 선택하게 한 뒤 그 이유를 들어본다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이었다. 기억에 남는 질문이 하나 있었는데 내용이 대충 이러하다. “가난하지만 시간이 많아서 잘 놀아주는 부모님과 부자지만 시간이 없어서 놀아주지 못하는 부모님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구를 선택할 거예요?” 여기서 내가 이상하게 느낀 점은 아이들의 세속적인 답변이 아니라 질문의 전제였다. 가난하지만 화목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부모, 부자지만 바빠서 아이들에게 관심 없는 부모의 대조군을 우리는 그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대개는 돈이 없을수록 시간도 없다.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게 되므로 시간을 써서 돈을 아낄 방법을 찾아 헤맨다. 최저가를 찾아 며칠을 고민하고, 자신이 산 가격보다 몇 천 원이라도 더 싸게 파는 곳을 발견하면 속이 상한다. 나 한 몸 편하자고 돈을 더 쓰는 것엔 과한 죄책감을 느낀다. 돈 없는 사람에게 유일한 자본은 몸뿐인데 말이다. 나 또한 돈만큼이나 나의 시간과 체력도 중요하고 아껴야 한다는 걸 20대가 끝나갈 때쯤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돈을 아껴야 한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돈을 잘 쓰는 법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다. 물론 당장 쓸 돈조차 없을 때는 아끼는 데 온 신경이 가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러한 습관이 몸에 배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뒤에도 목적 없이 돈을 아끼는 데만 집착하게 된다.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재투자적 소비조차 하지 않게 되어 발전 없이 그 자리에 맴돌게 된다. 당장의 돈만 지키느라 멀리 내다볼 수 없는 것이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번 돈을 어떻게 써야 롱런할 수 있을까? 어떻게 쓰는 게 잘 쓰는 것인가?
고위직 여성이 되려면 ‘아내’가 필요하다
회사 안팎에서 맞벌이 부부를 볼 때 이상한 지점이 하나 있었다. 결혼한 남성은 이전보다 외모가 멀끔해지는데, 결혼한 여성은 머리카락이 젖은 채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곤 했다. 일 처리에서도 남편은 여유로워 보이는데 와이프는 어쩐지 산만해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남성은 일터에서 퇴근하고 쉴 수 있는 집으로 귀가하는데, 여성은 일터에서 일터 같은 집으로 이동한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남성과 여성의 가사 노동 시간은 다섯 배나 차이가 난다고 한다. 여성이 집안일로 하루에 평균 3시간 14분을 쓸 때 남성은 40분을 쓴다는 것이다. 이처럼 제대로 쉬지 못하면 회사에서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데, 많은 여성이 이를 자신이 능력이 부족한 탓으로 착각해 고민하다 커리어를 내려놓는다. 책 <아내 가뭄(The Wife Drought)>의 저자 애너벨 크랩은 이 현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고위직에 오른 여성이 부족하다기보다는 고위직 진출을 도와줄 사람, 즉 ‘아내’가 집 안에 부족한 거죠.”
결혼한 사람뿐 아니다. 출퇴근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지도 업무 역량에 영향을 준다.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는 두 명의 입사 동기가 있다. 한 명은 회사에서 차로 한 시간 내외 거리에 있는 부모님 집에 살고, 다른 한 명은 월세를 아끼려고 서울 바깥에 집을 구했다. 이 둘의 가용 시간이 같을까? 아침 7시에 집에서 나와 지옥철과 만원버스를 갈아타면서 춥거나 덥거나 비가 오는 날씨를 견디며 회사에 당도하는 사람이 있고, 아침 8시에 주차장으로 내려와 갑작스레 내린 소나기에도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운전해서 도착하는 사람이 있다. 이 둘의 오전 컨디션이 같을까? 이런 일상이 누적될수록 경쟁에서 불리해지는 사람은 누구일까?
답은 분명하다. 나는 지금 가난할수록 업무 퍼포먼스가 달린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24시간이 똑같이 주어진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자는 거다. 누구는 출퇴근에만 하루 세 시간을 쓰고, 누군가는 집안일을 하느라 하루 세 시간을 쓰느라 체력도 함께 소진하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는 사람과 자꾸 비교하며 노력이 부족했다고 비난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
시간이 곧 돈이고 가능성이다. 이 사실을 부자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시간과 체력은 깊이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돈을 아끼는 데 시간과 체력을 몽땅 쓰면 방전되기 쉬우므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최소한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내게 중요한 것을 아끼는 걸 돕는 시스템을 일상에서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평균 이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 애써 힘내지 않아도 된다. 다짐만 하다가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 돈이 중요하지만 시간도 그만큼 중요하다.
잘 쓴 돈 늘려 가기
결혼한 맞벌이 여성은 가사 노동의 분담을 명확히 요구해야 한다. 살림은 기본적으로 아내의 일이고 남편은 도와줄 뿐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여전히 허다하다. 아내들은 남편에게 시켜봤자 서툴기 때문에, 하나하나 지적하기 싫어서 자신이 해버리고 말다가 어느 순간 알게 된다. 자기가 집안일을 대부분 다 하게 돼버렸다는 걸. 아내라고 처음부터 집안일에 대한 역치가 낮았던 건 아니다. 아내는 하다 보니 알게 되고 잘하게 됐을 뿐인데, 남편은 몰라서 안 하다가 영원히 못 하게 되어버렸다.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희생하지 않도록 배분하는 동시에, 가능하면 둘 다 집안일을 최소한으로 하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좋다. 남편과 나는 합의했다. 집안일을 공평하게 하되, 가능하면 둘 다 여기에 시간을 쓰지 말자고. 결혼을 준비하며 시간을 절약하는 가전제품을 최대한 들였다.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건조기, 스타일러 등등. 밥을 지어 먹고 치우는 데는 최소 두 시간 이상 걸리므로 평일에는 집밥을 먹지 않았다. 밥을 해 먹을 일이 있으면 식기세척기를 돌려 설거지하는 시간을 벌었다. 매일 아침 로봇청소기를 돌려두고 나가면 돌아왔을 때 멀끔한 집을 마주할 수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퇴근 후엔 그냥 내 몸만 씻고 쉬었다. 건조기는 빨래 너는 시간을 아껴주었고 스타일러는 세탁소에 가는 시간을 줄여주었다. 이처럼 자신의 우선순위와 지속 가능성에 맞춰 돈을 쓰되, 그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소비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필요하다. 한 번에 구비하는 건 어렵더라도 이렇게 시간을 아껴주는 제품을 조금씩 갖춰가는 걸 추천한다. 가사도우미나 기사를 들일 수 없는 우리는 가능한 한 문명의 이기를 잘 활용해야 한다.
취업 후 돈을 벌기 시작하면 당장의 돈을 지키는 데만 몰두하지 말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자기계발을 하고 시간을 버는 환경을 만드는 식으로 초기 자본을 투자해서 수입을 늘리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이렇게 해서 일정 수준 이상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되면 어디서 멈출지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시간을 써서 돈을 번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돈 자체가 목적이 되어 그것만 좇으면 돈이 많아져도 또다시 시간이 없어진다. 은퇴 후 시간이 많아지면 가족과 시간을 보내리라 다짐하지만 일시불로 해결되는 관계는 없다. 애초에 돈 버는 목적도, 사람이 태어난 목적도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아닌가. 어디까지 시간을 아낄지, 어디까지 시간을 쓸지, 어디까지 돈을 벌지, 이렇게 번 돈으로 무엇을 할지, 이렇게 아낀 시간으로 무엇을 할지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한정된 조건에서도 당장 가능한 일들을 찾아갈 수 있다.
정문정
쓰는 사람. 책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냈다. 인스타그램 @okdommoon
조예람
주변의 사소한 모습을 담는 ‘Around Ginger’의 일러스트레이터. 인스타그램 @around_gin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