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밥벌이 중에 뭐가 더 힘드냐고 물으신다면
글ㅣ사진. 박코끼리
요즘 육아의 최전방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아이의 기상 시간과 상관없이 내가 눈 뜨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기도 하고, 일단 입에 욱여넣는 식의 배 채우기가 아닌 무릇 교양 있는 지성인의 식사를 하며, 업무를 위한 미팅이나 인터뷰도 상대의 일정에 따라 여유롭게 잡는다. 이제 막 돌을 넘긴 아이를 둔 엄마에게 어떻게 이런 일상이 가능하냐면,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집안일과 육아로 전업했기 때문이다.
계획은 계획대로 될 리 없고
남편은 카타르에서 3년 넘게 근무했다. 때문에 나도 말 못 하는 아이와 말 안 통하는 나라에서 수개월을 지지고 볶으며 지냈다. 기다리던 국내 복귀가 자꾸 희망고문 식으로 연장되자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올해 초 사표를 던지고 한국에 돌아왔다. (중략)
하지만 한국에 돌아왔다는 안도감도 잠시, 남편이 기대하며 기다렸던 채용 공고들이 코로나로 인해 보류 또는 취소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솔직히 한동안은 실망과 불안에 허우적거리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뭐, 돈이야 내가 벌면 되는 거 아닌가. (중략)
라떼파파는 라떼를 마실 여유가 없네
언젠가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를 일컫는 ‘라떼파파’에 대한 기사를 읽고는 자신도 멋진 라떼파파가 되고 싶다던 남편. 육아로 인해 늘어가는 나의 짜증과 우울과 자괴와 자포자기를 이해하지 못해 난감해하던 남편이 요즘 틈만 나면 한숨을 쉬며 툴툴거리거나 분을 삭이고 있다. 남편은 이제 육아에 찌들어 있던 나를 이해하는 걸 넘어 그때의 내가 됐고, 나는 그때의 남편처럼 왜 그렇게 골이 나 있냐고 묻는다. (중략)
부부는 거꾸로 해도 부부니까
우리 아이의 이름은 ‘해이’다. 남편과 내가 인생을 살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 중 하나가 ‘이해’였고, 우리 아이가 늘 넓은 아량으로 입장을 바꿔 이해하며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앞뒤 글자를 바꿔 ‘해이’라고 지었다.
자식 이름은 그렇게 모난 데 없이 동그랗게 새겨놓고 정작 우리는 서로에게 그러지 못했다. 부모가 된 후 별것 아닌 일로 자주 어긋나면서 매일 얼었다 녹았다만 반복했고, 우리의 대화는 어느 순간 흐르지 못한 채 고여 있었다. 부부는 아무리 앞뒤를 바꿔도 똑같은 부부인데, 왜 나는 항상 내가 더 힘들다고 생각했을까. 뜻하지 않은 이유로 각자의 역할을 바꾸게 됐지만, (중략) 기울어져 있는 듯한 세상도 나아가는 거라 믿는다.
박코끼리 하나라도 얻어 걸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쓴다. 요즘은 일생일대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주로 참을 忍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