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진혁
최승자 시인은 ‘올여름의 인생 공부’에서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라고 썼습니다. 아프리카에 비견되는 더운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제가 여름을 좋아하게 된 데는 이 문장이 한몫했습니다. (중략)
아무리 그래도 재작년의 더위는 너무했죠. 아침부터 밤까지 숨이 막혔고, 해가 져도 바깥은 찜통 같았으니까요. 올해 ‘역대급’ 폭염이 온다는 기상청의 발표를 듣고는 겁부터 났습니다. 코로나19는 종식될 기미가 없어 마스크까지 계속 쓰고 다녀야 할 판이었으니까요. 걱정과 달리 아직까지 굉장한 더위는 없었습니다. 여름이 3분의 2나 지났으니 이만하면 다행인데, 이 날씨가 불만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역대급이라더니 에어컨 한 번도 안 틀었다 XX들아.” 같은 폭언을 연달아 읽고 있자면 그해의 ‘가마솥더위’를 한번 겪게 해주고 싶은 마음까지 생깁니다.
1994년의 더위와 그 선수의 짧은 삶
기록적인 더위 하면 많은 사람이 1994년을 꼽습니다. 그러나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저는 더위보다는 월드컵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건 제가 기억하는 최초의 월드컵이기도 합니다. 조별 예선에서 맞붙은 볼리비아를 통해 남미라는 곳도 처음 알게 되었죠. 같은 남미에 속한 콜롬비아의 예선 마지막 경기 상대는 한 수 아래인 미국이었습니다. 이 경기에서 안드레스 에스코바르는 자책골을 넣었고, 우승 후보였던 콜롬비아는 허무하게 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아빠가 “쟤 죽는 거 아냐?”라고 말했을 때는 당연히 농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자책골은 조금 우스꽝스러워서 저는 웃기 바빴거든요. 에스코바르는 그 일에 책임을 지기 위해 다른 동료들보다 먼저 귀국했고, 며칠 뒤에 총을 열두 발이나 맞고 죽었습니다.
2016년 코파 아메리카 개막전은 콜롬비아와 미국의 경기였습니다. 이 경기는 에스코바르를 기리는 행사로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그때까지 전면에서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습니다. 누군가를 추모하는 기간이 그 죽음의 비극성과 비례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씁쓸했고, 스물일곱에 세상을 떠난 그 또래들의 죽음이 여럿 떠올랐습니다. 동시에 1994년에 댓글과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이 있었다면 그 선수는 총에 맞지 않고 죽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습니다. 그랬다면 에스코바르는 지금까지 추모의 대상이 되지 못했겠다는 생각과 그를 죽인 범인(들)은 처벌받지도 않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그의 죽음 이후에 우리는 ‘자살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내리지 않은 비, 그리고 썩지 않으려면
오늘은 큰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비는 내리지 않고 있고요. 하늘은 고요한데 댓글창은 또다시 소란하네요. “차라리 나한테 예보를 맡겨라 XX.” 물론 기상청은 행정기관이고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그들은 욕할 권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가끔 그들이 주장하는 권리와 정의가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중략)
“올해 가혹한 더위가 있을 거라고 했는데, 그 예측이 빗나갔습니다.” 이 발표에 다행이다, 한시름 덜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심히 우울했는데 그나마 웃음이 난다, 이런 반응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허황된 꿈일까요. 하지만 썩지 않으려면, 우리는 이제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올여름의 인생 공부>는 이렇게 끝납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아이처럼 웃을 것/ 한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다른 한 아이처럼 웃을 것.’ 모두에게 가혹한 올여름, 40여 년 전 쓰인 소소한 인생 공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진혁
출판편집자. 밴드 ‘선운사주지승’에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