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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Aug 06. 2020

[양수복의 일상수복] 주변인 결혼이 비혼에 미치는 영향


글. 양수복


올해는 여느 해와 다르다. 아니, 나는 다를 게 없는데 주변 사람들이 다르게 느껴진다. 갑자기 결혼한다고 연락한 지인이 넷. 한 친구는 중학교 동창인데, 수능 끝나고 같은 동네 요가원에서 쭈뼛하게 인사하곤 연락한 적 없는 사이다. 모바일 청첩장을 받고 한참 ‘왜 나한테?’라는 의문에 갸우뚱하다가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되어 애석하게도 갈 수 없다는 답신을 보냈다.



어린 나이에 비혼을 말한 이유

7월의 어느 주말, 나는 여의도의 웨딩홀로 향했다. 사촌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결혼식 전날, 그리고 전전날 친구들에게 누누이 이야기했다. “나, 가기 싫어.” 고향에는 서울 등 타지에서 결혼을 하게 되면 버스나 탈것을 대절해 친인척이 축하를 위해 민족 대이동을 벌이는 풍습이 있고, 이에 따라 수많은 친척이 서울로 올 터였다. 커다란 축하의 마음과 그만큼 많은 잔소리와 이야기를 싣고서…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길을 나섰다. 어른들과 20대 무리인 나, 사촌동생들은 다른 테이블에 앉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잽이 날아왔다. 직업부터 수입과 집 위치, 친구와 애인 유무, 미래 계획에 대해 꼬치꼬치 질문이 날아왔고 나는 피하지 않고 잽을 맞았다. 어른들의 기준에 내가 미치지 못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당장 내일의 일조차 알지 못하겠노라고.(중략)


어릴 때와 비교해 장래희망도, 체질도, 성격도 바뀌었지만 딱 한 가지 여전한 게 있다면 ‘비혼’에의 다짐이었다. 어떤 가치관의 실천을 위해 ‘비혼’을 작정한 것은 아니었다. 정말 나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고, 일이든 취미든 빨리 빠졌다가 잘 지겨워하는 성격이라 결혼했다가는 이혼할 게 뻔해서 굳이 한 사람에 속박돼 한평생 살겠다는 서약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비(非) 결혼’을 말했다. 나의 성향을 판단한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였다.



경험이라면, 딱 한 번쯤?

언젠가 엄마와 통화하던 중에 주변에 결혼하는 자식들이 많아진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경험이 되는 거야. 인간으로서 결혼도 한 번 해봐야지.” 그 말뜻을 안다. 엄마도 결혼 후, 인생이 360도 바뀌었을 거고, 배운 게 많다고 판단했을 거다. 그래서 경험의 확장을 위해 권한 것일 텐데, 나는 이렇게 답했다. “한 번 갔다 오면 돼요? 딱 한 번?” 휴대전화 너머로 한숨이 터져 나왔고 승리감 반, 죄책감 반 쪼개진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번 친척 결혼식 전후로는 도저히 가벼운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엄마의 우김 반, 강요 반의 언어가 인상 깊었다. 엄마는 늘그막엔 외로워질 거라고 나를 설득하려고 했는데, 그 말이 내 근거가 되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당연히 나는 혼자 살지 않을 거다. 서울살이 9년 차, 실제 혼자 거주한 경험은 채 1년이 되지 않는다. 늘 하우스메이트, 룸메이트와 함께였고 이 삶에 만족한다. 고로 혼인 관계로 매이지 않는 복잡한 사이끼리 함께 사는 미래를 그린다. 물론 이러다 진득하고 질척이는 결합을 바라는 상대가 나타날지도 모르겠으나, 현 결혼 제도에 속하기보단 생활동반자법의 발의로 다양한 구성원의 가족이 법의 수호를 받고 포용되기를 기다리고 싶다. (중략)


미국 드라마 <엘 워드> 시즌3에서 등장인물 ‘킷’은 연인에게 청혼을 받고 바로 거절한다. 그는 “내 친구들은 게이고 내 동생은 레즈비언이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결혼할 수 있는 것처럼 결혼하게 되는 날까지 그들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제도를 따르고 싶지 않아.”라고 말한다. 지금 미국에선 동성결혼이 합법이지만 한국의 나는 자그마치 10년도 더 된 옛 드라마에 공감한다. 세상은 변했고 가족의 모습도 변했음에도 남녀가 결혼해 가족을 이루는 것만이 여전히 제도로써 유효하다. 진심으로 ‘다양성’이 2020년 한국의 시대정신이라 믿는 나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포용할 수 있는 토대가 곧 생길 거라 믿고 또 확신한다. 고로 나는 주변인의 결혼의 포화 속에서도 비혼이기를 선택한다.


위 글은 빅이슈 8월호 23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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