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ㅣ사진. 임지은
여름이면 부쩍 아빠가 생각난다. 아빠와 나는 거의 명절에나 얼굴을 본다. 추석은 대개 여름이라기보단 가을이고, 설은 겨울 혹은 봄이니까. 엄마와 아빠의 이혼 후, 그니까 스무 살 이후의 내 여름에 아빠는 없다. 먹고살기 바쁘다곤 하지만 그냥 영 무뚝뚝한 부녀 관계의 소산이다. 여름에 아빠가 있던 때는 우리가 한 지붕 아래 있던 때고 그 기억은 매해 자꾸만 흐려져서. 그래서 여름을 통과할 때마다, 나는 이미 결핍된 이 계절의 무어라도 더 까먹지 않을 심산으로 더 자주 아빠를 떠올리는 건지 모른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기보다는 아빠에 대한 생각만 하는 딸이라는 게 늘 마음에 걸리지만, 아무튼.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닌 그 무엇
(중략)따로 살게 되니 별게 다 궁금해지기도 한다. 가령, 이제 아빠는 맘껏 담배를 피울까. 물음이라기보다 장면에 가까운 질문을 늘리며 나는 아빠를 이해하는 시늉을 한다. 마치 내가 ‘겉담’으로 흡연자 시늉을 하던 때처럼. 한번은, 내 돈 주고 담배 한 갑을 샀다. 나는 술 마실 때 혼자 남기 싫다는 이유로 흡연자를 따라가는 간헐적 흡연자에 불과했지만.
일보다는 사람이 힘들었고 사람이 힘드니 일에서도 도망치고 싶어지던 몇 년 전 여름, 담배는 둘 다에서 도망칠 좋은 구실이었다. 호기롭게 담배를 피러 나갔으나 라이터가 없었고 나는 모르는 이에게 처음으로 머뭇머뭇 불을 빌렸다. 흡연자들은 불을 빌려주는 데 누구도 인색하지 않았다. 땡볕에 불을 빌려주는 타인의 너그러움은 묘하게 나를 달래주는 데가 있어서. 나는 그 시기 라이터 없이 담배 한 갑을 가방에 넣고 다녔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불을 빌렸다. 그런 식으로 마음을 채웠다. 겉담배로 연기를 뱉으면서 아빠를 알 것만 같았다. 그의 흡연도 타인의 너그러움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몇 없는 수단이었을까. (중략)
바야흐로 버티는 계절
어제는 아빠 또래 손님을 웃으며 맞았다. 여름날 카페는 북적이고 아르바이트하는 프랜차이즈 카페의 위치나 시간대 특성상 중년층에서 노년층까지의 손님이 많다. 그들은 다짜고짜 아이스 두 개, 라는 식으로 호통치듯 말하거나, 메뉴판을 보고 한참 웅얼웅얼 망설이거나, 때론 필요 이상으로 공손하게 주문한다. 나는 내 부모 또래와 그 윗세대가 카페에 갓 익숙해졌거나 아직 익숙하지 않다는 걸 일하며 알아간다. 이제 무언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얼굴이 조금은 익숙해져서. 아보카도를 달라 하면 아포가토를, 아메리카를 달라 하면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내밀며 살짝 웃는다. 다음 날 그들은 같은 시간 다시 찾아와 그전보다 자신 있게 메뉴를 시키고는, 구석으로 가 쾌적한 공간에서 더위를 달래는지 자신을 달래는지 모를 표정으로 앉아 음료를 마신다. 무더위는 버거우니까, 누구라도 버틸 수 있는 무엇이 필요한 거지. 그렇게 나는 아빠에게 하지 못하는 일을 타인에게 연습한다. 아빠에겐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하면서 아빠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일이다.
장마라더니 비가 영 시원찮게 토독토독 내린다. 여름비를 좋아한다. 비는 그리움을 부추기고 그리우면 잠이 안 온다. 불 꺼진 방 안에 누워 있으면 모두가 이렇게 흩어지기 전 화목했던 거실 광경이 이상하게 자꾸 생각이 난다. 자꾸 흐려져 잃을 것만 같은 몇 없는 광경에 나는 부러 오래 뒤척인다. 우리는 어차피 언젠가 조각날 거 너무 일찍 조각난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든다. 10년이 넘었는데도 어떤 밤엔 그냥 그리움이 찾아와 그저 비가 더 내리길 바란다. 한 번씩은 퍼부어줘야 시원해지고 시원하면 조갈이 안 나고 조갈이 안 나면 좀 더 버틸만 해지니까. 그럼 누군가는 벌떡 일어나 냉장고를 뒤지거나 화장실 바닥에 드러눕지 않고도 푹 잘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이불을 덮어줄 수 없다는 사실이, 가까이에서 사라진 잠버릇이 사무친다. 우리의 지금은 서로서로 먼 거리를 가졌으나 오늘은 같은 꿈을 꾸고 싶다. 그럼 일어나 맞이하는 내일, 나와 닮은 이에게 전화를 걸어 조금은 다정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버티는 계절이라고.
임지은
1990년 백말띠 여성. 서울에서 태어났고 그 후로도 서울 어딘가를 전전하며 살았다. 여러 일을 잡다하게 해가며 쓰기를 영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