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펀홈>
글. 양수복
사진제공. 엠피앤컴퍼니
앨리슨 벡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뮤지컬 <펀홈>은 올해 한국 초연 소식을 공개할 때부터 큰 화제를 일으켰다. 벡델은 오픈리 레즈비언으로 25년 동안 레즈비언을 주제로 카툰을 연재했고 부모와의 관계를 회고한 그래픽노블 <펀홈>, <당신 엄마 맞아?>로 호평받았다. 그중 레즈비언인 딸이 클로짓 게이*였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상하는 <펀 홈>은 각색돼 2015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며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부녀 서사 중 하나로 알려졌다.
<펀홈>에는 세 명의 벡델이 등장한다. 이해할 수 없었던 죽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고민하는 43세 그래픽노블 작가 앨리슨, 막 대학에 진학해 동성 선배 조앤을 사랑하며 성지향성을 깨닫게 된 19세 앨리슨, 메리제인 구두를 거부하고 운동화를 고집하는 활력 넘치는 9세 앨리슨이 그들이다. 43세 앨리슨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작은 마을에서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은 아버지 브루스 벡델을 회상하며 옛날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퀴어 서사를 발견해낸다.
극 중 나이 든 앨리슨이 회상하는 아버지 브루스는 결코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장의사이자 영문학 교사였던 브루스는 밖에서는 학식 높고 고상한 취향의 소유자였지만 집 안에서는 찌푸린 얼굴로 아이들에게 취향과 사상을 강요하는 성질 나쁜 아버지였다. 게다가 미성년자에게 술을 권해 법정에 서고 비밀리에 다른 남성들과 관계를 맺기도 했다. 이중 자아로 살았던 아버지를 해석하려는 앨리슨의 시도는 과거를 회상하며 그림을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캡션을 다는 행위로 반복된다.
앨리슨의 시도는 자주 좌초된다. ‘아버지는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에 답해줄 사람은 이미 세상에 없다. 돌이켜봐도 두 사람은 성소수자라는 면에서 어쩌면 비슷했지만, 접점 없이 평행선을 그리다 끝나버렸다. 그럼에도 앨리슨은 함부로 넘겨짚지 않고 아버지의 진실과 마주했고, 그를 넘어 비상한다. 비행기를 자주 태워주던, 그래서 기억 속에서 그리스 신화의 다이달로스로 형상화된 아버지 앞에서 앨리슨은 추락하는 이카로스가 아니다.
원작을 읽었다면 장면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지만 안 읽어도 이해하는 데 무리 없다. 하이라이트 넘버는 9세 앨리슨이 짧은 머리, 멜빵바지, 워커부츠 차림에 허리춤에 열쇠고리를 매단 여자 배달원을 보고 ‘워너비’ 스타일을 알게 되는 ‘Ring of Keys’, 막 성지향성을 깨달은 19세 앨리슨이 사랑하는 조앤으로 전공을 바꾸겠다고 소리치는 ‘Changing My Major’이다. 희비극의 한가운데서 진짜 자신을 발견하는 앨리슨의 심장박동이 들리는 듯하다.
* 성지향성을 숨기고 이성애자로 살아가는 게이 남성.
기간 10월 11일까지
장소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 예술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