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빅이슈코리아 Aug 23. 2020

[스페셜] 시장은 처음이라

전통시장에 간 마트 마니아


글ㅣ사진. 황소연



대형 마트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배송 시간대를 지정할 수 있는 냉동식품 천국. 원하는 시간에 바로 떡볶이를 먹고, 기름을 쓰지 않고 새우튀김을 먹을 수 있는, 심지어 이 모두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식품 고르는 법을 모르는 내가 시장에서 제대로 물건을 살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시장에서 물건을 산 게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넉넉한 현금만 믿고 집 근처 시장으로 나섰다. (중략)


튀김과 족발, 통닭, 떡…, 지름길로만 생각하고 종종 오가던 시장엔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나 <한국인의 밥상>에서 볼 법한 풍경이 펼쳐졌다. 마트처럼 한곳에 과일, 채소, 생선 등의 품목이 펼쳐지지 않는데도, 다들 척척 물건을 사고 있었다. 나를 뺀 모든 사람에게 자신만의 규칙이 있는 듯 보였다. 베테랑이 아닌 나는 같은 공간을 몇 번이나 오갔다. 조선가지, 가시오이, 호랑이콩 등 처음 들어보는 농산물도 눈길을 끌어 몇 번이나 걸음을 멈췄다. 호기심이 생겼지만 초심자가 욕심을 내면 일을 그르치는 법. 오늘의 목표는 복숭아나 풋사과 같은 여름철 과일, 오징어젓갈, 삼겹살구이나 찌개에 곁들일 익은 김치, 술안주, 참기름 등이다. 평소 대형 마트나 반찬 배송 업체에서 사던 물건을 대신할 재료를 사기로 했다. 특히 기름집에서 직접 짜는 참기름이 궁금했다.



쇼핑에 음료가 빠질 수 없다. 호떡과 옥수수 등 간식을 파는 가게에서 냉커피를 주문했다.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용량이 적은 커피인데, 늘 먹던 쓴 커피가 아니라 시럽이 들어 있는 단맛이다. 어르신들이 많이 오가는 시장이어서 그런지 시럽 넣은 커피가 기본인 모양이었다.


시장 방문에 앞서 가장 걱정한 건 소량으로 살 수 있는지 여부였다. 한 국자는 안 떠줄 것 같고, 어쩐지 1만 원어치 이하는 팔지 않을 것 같았는데 시장은 의외로 편했다. 상인에게 여러 차례 질문하기가 좀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얼마예요?”보다 “한 포기에 얼마예요?” 혹은 “제일 작은 게 얼마예요?” 하고 물어보는 것이 좋다. 반찬 가게도 1만 원을 기본단위로 통에 담아 팔고, 그보다 작은 통은 5000원 하는 식이다. 더 적은 양이 필요하면 원하는 크기의 반찬 통을 가져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중략)


크고 작은 천 주머니 여러 개와 에코 백을 챙겨 갔는데, 30분이 지나자 어깨가 아파왔다. 병에 담긴 참기름과 충동구매 한 떡갈비 때문이다. 그제야 ‘고수’들이 끌고 다니는 접이식 쇼핑 카트가 눈에 들어왔다. 유명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의 <시장 하울> 영상에서 본 그 물건이다. 과연, 생활 방수가 가능해 보이는 빳빳한 소재로 된 가방은 틀이 쉽게 잡혀서 장 본 물건을 차곡차곡 담을 수 있는 듯했다. 간이 의자 일체형 쇼핑 카트도 시장의 핫 아이템인 모양이었다. 아예 카트를 파는 가게가 따로 있다.



시장을 왜 전통시장이라 부를까

시장 깊숙한 골목도 돌아보고 싶어졌다. 탐험을 시작하는 기분으로 커다란 터널형 골목으로 들어섰다. 쇼핑 중 배를 채울 수 있는 국밥집, 소금집과 털실집이 모여 있다. 삼삼오오 모여 가게 안 마루에 앉은 상인들은 호객도 하지 않고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눴고, 어르신들은 막걸리를 마셨다. 이것이 ‘시장 바이브’인가. 살짝 귀를 기울여보니 나들이를 위해 매니큐어를 칠한 일이며 오늘 방송된 <아침마당> 이야기가 들렸다. 이때 그냥 시장이 아니라 ‘전통시장’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이유를 깨달았다. 지역 커뮤니티에 익숙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의 의미가 커 보였다.



안쪽으로 들어오길 잘했다고 생각한 건 전집 덕분이었다. 동태전 하나를 손님에게 건네는 사장님이 눈에 들어왔다. 때마침 오늘이 가개점 날이라는 전집 안쪽은 후덥지근했다. “에어컨이 저녁에야 온다고 그러네. 첫날이니까 좀 크게 부쳐줄게.” 녹두전 한 장을 주문하고 앉아 있으니, 한쪽에서 상인 대여섯 명이 모여 시장 구석에 있는 고양이 한 마리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 “애가 아픈가, 왜 이렇게 안 움직일까?” 참 다이내믹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 때쯤, 이번엔 지나가던 손님이 전집 주인에게 참견한다. 


“오늘 문 연 거야? 이런 건 찬 바람 불 때나 하지, 더운데 어떻게 해.” 그러면서도 아주머니는 녹두전 한 장을 주문했다. 실내와 실외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옆 점포와 내 점포의 경계가 희미한 시장에서 오늘 새로 문을 연 전집의 건투를 빌었다. “우리 집 전은 다른 집 거랑 달라. 고기도 많이 들어 있고 고사리, 숙주, 김치도 듬뿍 들었어.” 복잡한 시장에서 저마다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찾은 다른 손님들처럼, 단골이 될 만한 집 하나를 찾았으니 이 정도면 첫 시장 쇼핑은 성공이다. 지금도 곳곳의 시장에선 그동안 멀어진 마음의 거리를 좁히기 좋은 재밌고 귀여운 참견쟁이들이 기다릴지도 모른다.


위 글은 빅이슈 8월호 23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페셜] 집밥이라는 환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