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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Aug 24. 2020

[아침요리] 미식의 시간

치즈 토스트


글ㅣ사진. 문은정


홍대에서 신내림을 받은 지 고작 2주 되었다는 점쟁이에게 사주를 본 적이 있다. 길에서 플라스틱 좌판 의자를 깔고 앉아 단돈 2천 원에 관상을 보던 그는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대뜸 말했다. “거, 먹을 복은 참 많겠어?” 소름이었다. 나는 실제로 먹을 복이 많다. 잡지사 푸드 에디터라는 직업을 선택함과 동시에 나의 인생에는 수많은 먹거리들이 굴러 들어왔다. (중략)


그런데 그렇게 먹을 복이 많은 삶은 살짝 거만해지는 것 같다. 에디터 경력의 햇수가 거듭되며 음식에 대한 경험을 축적할수록, 스스로에게 묘한 ‘근자감’을 갖게 되었다. ‘그래도 내가 이쯤 먹었는데, 음식 맛은 좀 알지?’ 하면서 주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날들이 늘어났다. 특히 기사 때문에 음식을 억지로 먹어보며 마음속으로 별점을 매길 때도 많았다. 개중에는 훌륭한 곳, 혹은 그렇지 않은 곳들도 있었는데,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별로라고 느낀 곳은 다시 가지 않았다.



내가 건강해야 맛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친구들끼리 모여 저녁밥을 먹을 일이 있었다. 어떤 것을 먹을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는데, 한 친구가 연남동에 있는 모 중국집에 가자고 했다. ‘아, 거기 그냥 그랬는데.’ 일 때문에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딱히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속으로 살짝 구시렁댔지만 결국 입을 꾹 다물고 친구들을 따라나섰다. 육아에 지친 친구의 나들이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참 푸지게 먹었던 것 같다. 짜장면에 짬뽕에 가지튀김에 라조기에 빼갈까지 곁들여 깔깔대며 신나게 먹고 마셨다. 다시 먹어보니 그 집은 무척 맛있는 집이더라. 물론 그간 그 중국집에 변화가 있었을 수도 있다. 요리사가 바뀌었다든지, 혹은 짧은 기간에 실력이 일취월장했든지. 하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변화가 있었다고 본다. 생각해보면, 그 집에서 처음 음식을 먹었던 날은 모든 것이 별로였다. 매일 반복되는 야근에 피곤한 상태였고, 일 때문에 먹는 음식이다 보니 딱히 즐겁지도 않았다. 하지만 친구들과 먹었던 날은 달랐다. 마감 후에 상쾌한 컨디션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유쾌하게 먹은 음식은 내가 속단했던 맛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아침이라는 미식의 시간

그 뒤로 음식을 평가하는 기준을 다시 잡게 되었다. 일단, 나부터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건강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잘’ 먹으려면 건강해야 한다. 좋은 컨디션이야말로 음식을 맛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기본자세다. 그리고 그렇게 최상의 컨디션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아침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른 시간부터 무슨 입맛이 있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습관만 되면 아침이야말로 음식을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이라고 본다. 미국에서는 오전에 브런치 샴페인을 마시기도 하는데 그 시간이 혀 돌기의 컨디션이 가장 좋을 때라, 샴페인의 버블이 품고 있는 다채로운 향미들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아침에 먹는 음식들은 다 정말 맛있는데, 단순히 건강적인 이점으로만 치부되는 것은 조금 아쉽다. 그래서 종종 아침이라는 경계를 두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잔뜩 요리하곤 한다. 오믈렛, 시리얼 같은 것들만 아침에 먹으란 법은 없다. 먹을 준비만 되어 있다면 햄버거나 삼겹살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아침을 드십시오, 여러분. 건강을 떠나 일단 맛있으니까요. 굳이 꼽는다면, 아침이야말로 진정한 미식의 시간 아닐까요.


구운 양파와 버섯을 곁들인

그릴드 치즈 토스트


재료(1~2인분): 양파(소) 1개, 양송이버섯 6개, 식빵 2장, 체다 치즈 1장, 모짜렐라 치즈 1봉지(1/2컵), 식초/버터 1큰술씩, 설탕 1작은술, 트러플 오일/식용유 적당량씩, 소금/후추 조금씩


1 기름 두른 팬에 슬라이스한 양파, 버섯을 넣고 양파가 노릇하게 캐러멜라이징 될 때까지 5분간 볶는다.

2 1에 설탕, 식초, 소금, 후추로 간한 뒤 마무리로 트러플 오일을 뿌린다.

3 식빵 위에 체다 치즈, 1의 양파와 버섯, 모짜렐라 치즈를 올리고 다시 식빵으로 덮는다.

4 버터를 두른 팬에 3을 올린 뒤 접시로 눌러가며 약불에 양면을 구워 완성한다.


문은정

잡지사 <메종>의 푸드 & 리빙 에디터이자 아마추어 아침요리 연구가이다. 유튜브 채널 ‘곰식당’을 운영하며 다양한 요리 영상을 선보이고 있다.


위 글은 빅이슈 8월호 23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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