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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Sep 28. 2020

[스페셜] 방구석 영화제에 놀러 오세요


글 | 사진. 양수복



여름마다 참석하던 뮤직 페스티벌과 각종 영화제 등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즐기던 축제들이 올해에는 전부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는 점이 집콕의 답답함을 더욱 불러온다. 집에서 혼자 넷플릭스를 보고 명작 영화를 챙겨 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영화제와 락페(락페스티벌) 덕후들은 알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다 같이 모여서 먹고 떠들면서 즐기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그렇다면 내가 기획해서 소규모 영화제를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


여럿이 모이는 것은 최대한 자제해야 하지만, 안전한 환경을 조성한 후 모두 방역 지침을 지킨 상태에서 ‘방구석 영화제’를 열어봤다. 제1회 방구석 영화제. 소란한 파티의 시작이었다.


고심 끝에 손님들의 방구석 영화제는 중국 영화 상영회로 결정했다. 이유는 초대할 손님 중 중국에서 유학하다가 이번 팬데믹으로 귀국해, 중국으로 돌아갈 날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이가 있기 때문. 그가 중국 영화와 음식으로 향수를 달래고, 다른 손님들에겐 중국 문화를 접하는 기회가 되길 바랐다.



드레스 코드는 레드, 금요일 밤의 파티

영화제 참석 인원은 총 다섯 명이었다. 시국을 고려해 참석자의 체온을 측정하고 손 씻기, 세정제 사용을 요청했다. 아침부터 방을 청소하고 간단한 소독 용품으로 자체 방역도 해두었으며, 에어컨을 틀고 거실 창문을 열어놓아 환기가 되도록 했다. 파티의 묘미는 ‘콘셉트질’이기에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영화 속캐릭터의 이름으로 닉네임을 정했다. 황금 같은 금요일밤 저녁, 서울 동대문구의 소박한 셰어 하우스에 모인 다섯 명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지화(<마지막 편지>), 양미숙(<미쓰 홍당무>), 아휘(<해피 투게더>), 유이(<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안생(<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오후 7시 30분이 되자 참가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직장인에게 드레스 코드 따윈 사치였는지 미숙만이 붉은색의 가방을 메고 왔다. 레드카펫 대신 빨간 담요로 탁자를 덮곤 배달 온 마라샹궈와 꿔바오러우, 칭다오 맥주와 중국의 증류주인 공연주를 세팅했다. 퇴근 후 아무것도 먹지 못한 미숙이 배고프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음식’ 포토 타임은 급하게 마무리됐고, 영화제가 시작됐다. 



상영작은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와 <홍등>이었다. 모두 배가 고파서 젓가락질에 열중하느라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상영 초반엔 어떤 코멘트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정도 배가 불렀는지 “남자 주인공이 고등학생이라기엔 나이 들어 보이는데!” 같은 인신공격성 발언부터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잠시 소개하자면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칠월과 안생>이라는 소설을 각색한 영화다. 영화가 시작되면 이런 문구가 등장한다. “세월이 지난 후칠월은 가명에게 말했다. 자신과 안생의 우정은 숙명이었다고.” 딱 이 문구 그대로 칠월과 안생은 처음 친구가 된 열세 살 때부터 스물일곱 살 때까지 서로를 떠나고 다시 찾아오고 자신보다 아끼고 미워하고 사랑한다. 캐릭터가 워낙 입체적인 데다 두여자 주인공 사이에 ‘가명’이라는 칠월의 남자친구가 등장하면서부터 드라마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증이 모아졌다. (중략) 



사랑과 우정은 어떻게 다를까

영화가 끝나자 저마다 한 줄 평을 내놓았다. “칠월과 안생은 사랑과 우정의 경계에 있는 것같아. 가명까지도 어느 하나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관계에 있는데, 현실에도 언어로 뚝딱 정의할 수없는 다양한 관계 양상이 나타나잖아. 칠월과 안생은 소울메이트라고밖엔 정의할 수 없는 관계인데, 둘이 뒤바뀐 운명 속에서 서로의 관찰자로서 살아주는 모습이 좋더라.” 유이가 말했다. 그러자 가장 조용하게 영화에 몰입하던 안생이 “셋 다 이상해!”라고 말해 폭소를 안기더니, “우정과 사랑이 양적, 질적으로 얼마나 다르다고 생각해?” 하고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끝장 토론의 서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아휘와 미숙, 그리고 유이는 사랑과 우정의 경계에 대해 열띤 토론을 시작했다. 우정과 사랑은 구분할 수있을까. 사랑과 우정은 정말 질적으로 다른 것일까. (중략)


시계를 보니 벌써 자정이 넘어 있었다. 오랜 토론으로 피곤해진 다섯 참가자는 졸린 눈을 하고 <홍등>을봐야 하는지를 놓고 토론하기 시작했다. 누구도 밤새 영화를 볼 체력이 없는 나이였고, 한 명씩 은근슬쩍 수건을 들고 욕실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계획은 창대했으나 마무리는 어쩐지 미약한 ‘용두사미형’ 영화제는 그렇게 끝이 났다.


영화제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방침이 시행되기 전에 진행됐습니다.


위 글은 빅이슈 9월호 23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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