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제공. 배민영
언젠가부터 우리는 고령의 원로 화가들에게 존칭의 의미로 ‘화백’이라고 할 때 말고는 ‘화가’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사실 10년도 안 된 현상이다. 더 이상 시각예술 분야가 단순히 ‘그림’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컨템퍼러리 아트’라고 하는 우리 시대의 예술이 설치, 미디어, 음악, 무용 등 다양한 장르와 함께 다원 예술화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가들이 대외 활동을 늘려나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창작은 물론 홍보까지 스스로 하고 유튜버가 되기도 하는 등 연예인화 또는 멀티플레이어화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2009년 이후 경제 위기로 인한 미술 시장의 침체, 이혜영·솔비·하정우 등아트테이너의 등장, 미술관과 갤러리 및 도슨트의 대중화, 디자이너와 브랜드 전시의 활성화, 유튜브와 브이로그의 흥행이 모두 합쳐지면서 코로나 시대에 맞는 비대면 관람 시대가 열린 것이라고 요약해볼 수 있다. 물론 모든 공간이 이렇게 직접 가지 못하고 가상현실화하는 것이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항상 위기는 기회를 만들어냈고 문화 매개체와 산업은 그에 맞게 재편되어왔다. 그러므로 문화의 창조자이자 전령이기도한 작가들의 변신은 민망한 일이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최근 주목할 멀티플레이어로는 ‘아티스톡’이라는 채널을 운영하는 윤기원 작가, ‘방구석 예술가’라는 채널의 운영자인 한성진 (Anikoon) 작가, 그리고 실시간 온라인 옥션의 선두 주자인 켈리온레드바이드 (@kelly_on_redvibe) 가 이끄는 ‘러브 컨템포러리 아트 (LUV Contemporary Art) ’의 대표 작가 잭슨 심이 있다. 이 세계로 돌아온 팝 아티스트 낸시 랭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의 비주얼 이미지가 강하다고 해서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없다. 어차피 비주얼 아트 시대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연이어 전시가 밀리거나 취소되는 열악한 상황에서 많은 작가가 자신의 SNS와 여러 매체에 노출하며 작품과 작업 세계를 알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물론 사람 나고 문화 났다. 그렇지만 우리는 종종 문화가 있는 곳에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기도 한다. 을지로에 새로운 공간 ‘C.Enter’를 연 고대웅 작가나 셔터 아트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원경 작가처럼 로컬을 기반으로 예술 생활을 하는 작가들을 보면, 여전히 공간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서로 센터가 되고 스튜디오가 되어 연대하는 시대라고 할까, 오프닝은 없어져도 ‘온프닝’ (무심코 지어본 말이다) 은 늘어날수 있는 여지에 사람이 있고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할 이윤정 작가는 얼마 전 위례신도시에 아트 공간을 열었다. 상가 건물에 들어선 ‘Yoonion Art Space’는 갤러리와 작업 공간을 겸한다. 오픈과 동시에 내년 봄까지 전시 일정이 잡혀 있고, 가오픈 기간에 때마침 성수동에서 열린 개인전을 끝내고 자신의 작품으로 갤러리 공간을 디스플레이한 모습을 기록해두었다. 오른쪽 벽에 보이는두 작품만 간단히 설명해보려고 한다. 첫 작품은 <Identical Twin>으로 자신이 여행 중겪은 돈 없는 이방인 생활이 한국에 있을 때의 삶과 많이 다른 것을 깨닫고, 우리가 자신과 타인을 상반된 것으로 인식하지만 사실 처음엔 일란성쌍둥이처럼 정체성이 같았다는 것을 표현한 추상적 자화상이다. 그 옆으로 보이는 두 번째 작품 <Voyage>는 여행을 항해와 행운이라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통찰한 작품으로서, 필자 눈에는 배와 얼굴로 보였지만 작가는 빨간 체리가 있는 컵케이크를 그린 거라며 감상 포인트를 짚어주기도 했다.
앞으로 갤러리스트를 겸하게 된 이윤정 작가 역시 두 역할을 모두 잘해내는 우리 시대의 작가가 되기를 바란다. 신혼부부가 많이 살고 바로 앞에 ‘책발전소 위례’도 있는 그곳에서 로컬 문화를 꽃피우는 멀티플레이어가 될 작가의 변신을 응원한다.
배민영/ 예술평론가 겸 기획자. 갤러리서울과 취향관의 편집장, 전시 디렉터 등을 거쳐 아트 에이전시 ‘누벨바그’ 대표와 아트 매거진 <HOPPER> 편집장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