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빅이슈코리아 Nov 11. 2020

좋은 상상

글/ 김송희



‘회사 면접에서 절대 해선 안 되는 답변’ 중에 이런 게 있었어요. “이 회사에서 5년 후의 모습을 상상해보면?”이라는 질문을 받을 때 “목에는 사원증을 걸고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길을 걷는 모습” 같은 걸 말해서는 안 된다는 거였어요. 그렇잖아요. 직장인 5년 차의 모습을 상상할 때 미국 드라마에나 나올 것 같은 이런 답변은 허세만 강해 보이고 직무의 전문성과는 상관없어 보이니까 취업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거죠. 그런데 직장을 다녀보지 않은 취업 준비생에게 직장이란, 미디어를 통해 접한 이미지로만 그려지는데 그게 ‘사원증’이나 점심 식사 후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걷는 모습 정도로만 상상이 가능하지 않나요? 면접 전문가의 조언은 ‘겪어보지 않은 허상의 이미지보다는 자신이 앞으로 키워가고 싶은 전문성, 성장하고 싶은 미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답변해야 기업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거였죠.


그런데 몇 년 전 저는 이 똑같은 답변을 고등학생에게서 들은 적이 있어요. 가족의 울타리 안에 머물 수 없어서 탈가정한 10대 여성 청소년들이 모여 사는 그룹홈을 인터뷰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룹홈에는 다양한 여성 청소년들이 살고 있는데, 그중에서 취업 준비를 아주 열심히 하고, 성적도 좋은 고등학생이 있었어요. 그 친구는 겨우 열여덟 살인데도 은행권 취업을 목표로 매일 열심히 공부하면서 관련 자격증을 열 개 넘게 보유하고 있었어요. 학업도 열심히 할 뿐 아니라 다양한 취업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동영상 편집 능력도 뛰어나서 공모전 수상 경력도 가지고 있었죠. 그룹홈 동생들의 자랑이기도 했던 그 친구가 받아 온 상장이 너무 많아서 책자 한 권을 넘길 정도였어요. 


피치 못한 사정으로 집을 떠나 혼자 열심히 미래를 준비하는 10대에게 저는 아주 뻔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10년 후에 꿈에 그리는 자기 모습이 뭐예요?” 신중하게 고민을 하는 것 같더니 그 친구는 바로 이렇게 답했어요. “저는 은행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은행을 다니면서 대학도 졸업하고, 나중에는 외국에서도 일하고 싶어요. 뉴욕 같은 데에서 커피를 들고 아침에 출근하는 걸 상상하곤 해요.” 


출처: Unsplash

뉴욕에서 일하면서, 커피를 들고 바삐 출근을 하는 커리어우먼이 미래의 모습이라고 답하는 10대 청소년의 답을 듣고, 저는 그 대답이 철이 없거나 허무맹랑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그가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지, 그 증명서들을 미리 보기도 했고 또 어느 순간 그런 꿈을 ‘허세, 판타지,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거야말로 아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점심 식사 후 잠시 커피 전문점에 들러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고, 사원증을 목에 걸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왜 상상하면 안 되겠어요. 그거야말로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모습인걸요. 


어떤 허상이든지 그것을 좇기 위해 우리가 애쓰기 시작할 때부터 그것은 더 이상 의미 없는 허상이 아닙니다. 날카로운 눈매를 한 면접관은 비록 ‘허허, 자네 우리 회사에 와서 그렇게 커피나 마시고 놀 생각을 하나.’라고 비꼴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그렇게 보는 사람의 속이 배배 꼬여서 그런 겁니다. 겪어보지 않은, 대단치 않은 모습일지라도 내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을 많이많이 꿈꿨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저는 내년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산책로를 걸으며 가을을 만끽하는 모습을 상상할래요. 가까운 미래에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을 하며, 즐거운 가을을 보내시길. 좋은 상상은 좋은 미래를 불러온다고 하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빨래를 말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