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자.’ 4년 전쯤 내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다. 그때 한 친한 동생으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누나, 왜 훌륭한 사람이 되려 하지 않는 거야?”
하긴, 웃긴 일일 거다. 모두가 다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세상에서,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에 둘러싸여 열심히 사는 내가 그렇게 말하니. 이유는 내 나름에선 단순했다.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 해도 훌륭하지 못한 나 때문에 이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나름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20대 후반인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살았다. 남들이 생각하는 멋진 것, 훌륭한 것을 다 해보려 노력했다. 특목고 졸업 후, 과탑에 과외에 각종 동아리에, 해외 봉사활동 등. 방송 출연도 몇 번 하기도 했다. 나 자신을 괴롭혀 뭔가 자랑할 만한 성취를 이뤄내면 그제야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훌륭하지 않게 살면, 삶을 사는 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바쁘고 멋있게 사는 것에 온 목숨을 다 걸었다.
2016년을 예로 들어보자. 휴학 후 2~3월은 알바를, 4~6월은 인턴십을 7~8월은 해외 봉사를, 10월부턴 복학 후 카페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 내내 고등학생 영어 과외도 뛰었다. 벌써 숨 막힌다고? 아직 대외활동은 얘기도 안 했다. 원래부터 일하던 잡지 일을 계속했고, 3월부터는 1년짜리 토론 동아리를 했고, 6월부턴 글쓰기 모임 가입, 9월부터는 영상 콘텐츠 제작 모임에 가입했다. 또한 그 와중에 경영학과 복수전공도 시작하고, 프로그래밍도 배웠다. 5년이 지난 지금의 내가 봤을 땐 도무지 실현 가능한 스케줄이 아니지만, 그땐 그렇게 했다.
너무 힘들더라. 너무 힘들어서 더는 특별하게 살 노력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멋지고 특별한 나에 이미 중독될 대로 중독되어 버려서, 평범하고 재미없는 인생을 산다는 말을 들을까 무서워서 차라리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어졌다. 그렇게, 너무 힘들어서 도망갔다. 이대로라면 한국에서 멋진 나로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대기업이든 힙한 직장이든 뭐든 사회생활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내가 죽을 것 같아서 일단은 교환학생으로 갔던 스웨덴으로 그렇게 도망쳤다. 나를 멋지다고 혹은 멋지지 않다고 판단할 한국 사람들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그곳에서 조용히 살면 다른 사람들을 덜 신경 쓰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뿔싸. 거기에 간다고 뭐가 갑자기 확 바뀌는 게 아니었다. 스웨덴의 한국 사람들을 볼 때마다 멋져지고 싶어졌다. 계속 그 사람들 눈에 내가 멋질까, 특별할까 신경을 썼다. 또 인스타그램 하나를 올릴 때도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스웨덴이 멋진 곳으로 보이길, 또 내가 멋진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길 의식하며 올렸다. 현실에선 외국인 노동자로 매일 힘들게 겨우겨우 살아가는 데도 말이다. ‘그래, 그럼 한국 사람들 만나는 게, SNS를 하는 게 문제구나’, 싶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을 별로 만나지도 않았고 SNS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마음이 계속 힘들었다. 뭐가 문제지? 내가 문제였다. 스웨덴에 있고 한국에 있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딘가로 도망간다고 내가 한순간에 변할 거로 생각하는 건 정말 큰 착각이었다.
스웨덴에 가는 것은 누군가는 멋지다고 생각하겠지만, 스웨덴에서 아무 일도 못 구하면 멋진 게 아닐 것이다. 스웨덴에서 사무직을 구한 나는 멋있지만, 퇴사하고 귀국을 하게 되면 멋있는 게 아니겠지. 스웨덴에 온다고 뻥뻥 말을 했는데, 한국으로 갑자기 돌아간다면 그건 실패야. 그러니 여기서 적성 맞지 않고 힘든 일이지만 일단은 버텨보자며 1년을 눈물로 지새우며 버텼다. “나 스웨덴에서 사무직으로 일해. 졸업도 안 하고 워킹 홀리데이 와서 직장인까지 됐어.”라는 말을 계속 멋지게 하고 싶었으니까. 남의 시선이자 나의 시선에 나는 꽁꽁 옭아맸다.
그러나 그 평화도 오래가지 못했다. 코로나19와 개인 사정으로 결국엔 회사를 떠나게 됐기 때문이다. 최대한 어떻게든 스웨덴에 있으려 발버둥을 쳤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고, 무엇보다 나는 지쳐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더 끝의 끝의 끝까지 멋진 모습을 사수하기 위해 매달렸겠지만, 이젠 그럴 힘도 없었다. 그렇게 최악의 시기를 보내며 몇 주간 집에 틀어박혀 엉엉 울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새로운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가는 게 실패라고 생각해서, 멋진 게 아니라고 생각해서 죽어도 가기 싫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단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데도 멋진 게 아니라니, 이상하지 않나 싶었다. 용기를 내서 나라까지 바꿔 거주지를 옮겼고, 거기에서 살아남았다. 아쉽게 퇴사하게 되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보단 후련함이 앞섰고, 또 그다음 미래를 계획하는 설렘도 갖고 있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남들이 몰라줘도 내가 보기엔 나 스스로가 어느 정도 자랑스럽고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슬퍼하며 좌절만 하기보단 새로운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나 자신을 톺아보고, 명상하고, 운동하며 나 자신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국에 가는 걸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실패라고 규정해왔다는 게 보였다. 그 누구도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이유만으로 멋지지 않다고 내게 손가락질하지 않을 거란 걸 서서히 깨달았다. 이게 멋지지 않다고 나한테 대놓고 얘기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면, 그건 ‘나’일 거란 것도.
동시에 내 스웨덴 회사 퇴사가 실패인지 아닌지는 지금 알 수 없단 생각도 들었다. 그게 실패인지 아니면 정말 좋은 전환점이었는지는 내가 만들어가는 거 아닐까? 내가 지금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거다. 1년 후, 3년 후, 10년 후 그때 뒤돌아보면 알리라. 사실, 내가 여기서 버틴다고 동화 속 해피엔딩처럼 아무 걱정 안 하며 룰루랄라 살게 되지 않을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어찌 됐든 아시안 여성 외국인 노동자로서, 아니 그냥 평범한 직장인, 아니 그냥 몇 십억 지구인 중 하나로서 나는 조금 슬픈 일과 조금 기쁜 일이 반복되는 틈바구니에서 계속 살 테니까.
그렇게 나는 일단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오늘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살아내보고 있다. 멋지게 훌륭하게 사는 것에 집중하기보단, 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챙기는 걸 우선으로 생각하며 말이다. 뻔한 말이지만, 인생을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으로 보고 조금씩, 정말 아주 조금씩 즐기며 살아보려 하고 있다. 너무 무리하려고 하면 스스로를 제지하기도 하고, 운동도 명상도 꾸준히 하면서.
훌륭한 삶을 정말 포기했냐고? 이젠 정말 남 시선 신경 하나도 안 쓰고 잘 사냐고? 솔직히 그건 잘 모르겠다. 하루가 다르게 오락가락한다.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며 잘 살다가도, 어느 날은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이 다 형편없는 것 같고, 특별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남들이 못내 부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어느 날은 잘 살고 있는 자신에게 뿌듯해 SNS에 전시하고 싶은 맘을 못 이겨 자랑샷을 찍어 올리기도 한다.
어쩌겠나, 그게 삶인 것을. 장담컨대 내 생각은 자꾸 전 부치듯 ‘왔다리갔다리’ 할 거고 나는 또 못내 남의 시선을 신경 쓰고 특별하게 살려고 애를 쓸 거다. 그래도 매일매일 ‘오늘’만큼은 좀 특별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게 살자고 다짐해보려 한다. 멋진 나보단 나답게 사는 나에 뿌듯함을 느끼려 한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겠지. 곧 편하게 살려고 애쓰지 않아도 편하게 살길,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고 몸부림치지 않아도 나를 사랑할 수 있길 바라며, 나는 그저 오늘도 조금씩 노력해보련다.
글/ 한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