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빅이슈코리아 Jun 10. 2021

모니카 인 파리_본토식 프랑스어를 한다는 것

1.


지난번에 내려진 봉쇄령이 더 엄격해졌다. 이번 변화의 핵심은 휴교령이었다. 프랑스에서 새로운 코로나19 관련 정부 지침이 생기면 총리 장 카스텍스나 보건부 장관 올리비에 베랑이 공지를 하는데, 가끔 중대한 변화가 있을 때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공지를 맡는다. 지난번에는 카스텍스가 공지를 한 반면, 이번에는 마크롱이 발표한다고 해 며칠 전부터 모두가 잔뜩 긴장했다. 하지만 이번 휴교령은 대학을 제외한 유치원,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한다고 하니 교환학생으로서 나의 개인적 삶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마크롱이 연설 초반에 강조했듯, 프랑스는 (많은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공교육을 중시하기 때문에 지난해 내내, 아무리 상황이 나빠졌어도 학교만큼은 폐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부하는 듯하다. 그러다가 이번에 변종 바이러스로 인해 상황이 너무 안 좋아지자 휴교령을 내리게 되었으니 대통령이 나서서 공지를 한 것으로 보인다. 


휴교령이 대학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교육기관을 중점 대상으로 한 발표이다 보니 대학 또한 교육기관의 일부로서 긴장하는 듯하다. 이번 주 내내 학생들과 교수들 사이에서 학교가 아예 닫히는 것에 대비하여 앞으로 한 달여간 어떻게 수업과 실습을 진행해야 할지, 재료와 공구를 어떻게 구비해야 할지 말이 많았다. 대학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재학 중인 예술 대학의 경우 실습 수업이라고 부르기 무색할 정도로 학생 각자 본인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고자 하는 방식에 따라 학교 안에 있는 철재/목재/플라스틱/스크린 프린팅 스튜디오 등을 방문하면서 테크니션과 상의하고 교수에게 컨펌을 받으면서 수업을 진행한다. 


"파리를 떠나고 싶습니까?"라고 써진 광고판


즉, 학교가 문을 닫으면 학업이 마비가 돼버리는 것이다. 다행히 지난가을 2차 봉쇄령 때는 우리 학교가 ‘기술교육 학교(école technique)’로 인정되어 약 일주일 정도 닫혔다가 다시 열렸다고 한다. 물론 이전처럼 사전 예약 없이 아무 때나 스튜디오를 방문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는 사라졌다는 것이 친구들의 증언이다. 

여하간 이번에도 학교가 열려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작업은 집에서도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만, 친구들과 매일 같이 점심 먹고 작업 중 밖에 잠시 나가 수다 떠는 낙이 없으면 너무 슬플 것이다. 


2.


다행히 학교는 봉쇄령 도중에도 그대로 열어둔다고 한다. 특히 내가 속한 과는 디지털로 할 수 있는 작업이 많지 않아 매일 통금 30분 이후인 7시 30분까지 작업실이 열려 있다. 

학기 말이 다가올수록 개인 작업을 하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한국에서도 그러하듯 실습실에 오랜 시간 앉아 있으면 학생들 간 오가는 온갖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불어가 많이 늘었느냐? 천만에. 마스크를 끼고 대화를 하느라 입 모양도 안 보이고 잘 안 들려서 더 힘들다. 학원이나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요즘 애들 사이에서 쓰는 은어 몇 개만 더 알게 된 수준이다. 줄임말을 많이 쓰는 한국의 유행어와는 달리 프랑스 은어는 발음을 뒤바꿔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여자’를 뜻하는 ‘팜므(femme)’를 ‘머프(meuf)’로 뒤바꿔서 말한다든지, ‘붙잡다’를 뜻하는 ‘쇼페(chopper)’를 뒤바꿔 발음한 ‘페쇼(pécho’)는 ‘꼬시다’ 혹은 ‘작업에 성공하다’ 등을 뜻한다. 


비 온 뒤 뜬 무지개


비영어권 국가 모두가 그러하겠지만, 프랑스는 특히나 프랑스어를 못하면 생활이 너무 어렵다. 한편 라틴어에서 비롯된 많은 언어가 그러하듯 불어는 영어를 알면 나름 배우기 쉬운 언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종종 프랑스인들이 나에게 ‘불어 참 어렵지?’라며 나를 딱하게 여기며 말할 때면 짜증이 치민다. 영어와 같은 언어 체계를 쓰면서도, 알파벳부터 새로 배워가면서 영어를 배운 사람보다 영어를 한참 못하는 인간한테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게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이해한다. 불어는 (이 또한 영어와 마찬가지로) 문장이 긴 편이고 꼬아서 쓰는 표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여 언문 계열이 아닌 대학생들도 매 학기마다 불어 시험을 치러야 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시험 내용은 어려운 단어 철자, 조건법 같은 이상한 문법 등등… 그래도 이런 시험을 보는 게 한자를 모른다는 이유로 교수님들에게 4년 내내 바보 취급당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언어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 하자면, 나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 늘 나의 북미식 영어 발음이 ‘정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북미식 영어 발음 특유의 매끄러운 발음을 구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반면 내가 파리에서 만난 거의 모든 이들이 영국식 영어를 쓴다.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에서 북미 대중문화 ‘빠순이’, 소위 ‘양덕’으로 성장한 사람으로서,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미국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다. 이탈리아식 발음, 독일식 발음, 인도식 발음, 남미식 발음... 초반에는 온갖 다양한 발음에 익숙해지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이렇게 다양한 발음으로 소통하는 도시에서도 미국식 발음만큼은 튀곤 한다. 프랑스인들이 미국이라는 나라에 반감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특히 불어를 할 때 미국식 발음을 쓰면 많이들 싫어하거나 무시한다. 

파리 근교 알베르 칸(Alber Kahn) 박물관


또 본토 프랑스인들이 싫어하는 발음은 캐나다식, 즉 퀘벡식 불어 발음이다. 당연히 대놓고 싫어하지는 않지만 ‘못 알아듣겠다’ 혹은 ‘웃기다’는 식의 평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나도 본토 프랑스식 표준어 발음으로 불어를 배운 사람으로서 퀘벡식 불어 발음은 알아듣기 매우 힘들다. 어릴 적 캐나다에서 잠시 지낼 때 제2국어 수업 시간에 불어를 처음 배웠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아이러니하다. 그때 배운 것을 전부 다 까먹은 것인지, 아니면 내가 지내던 지역이 퀘벡이 아니어서 본토 발음으로 배웠던 것인지 제대로 기억은 안 난다. 여하간 이 사실을 말하면 프랑스인들은 늘 칭찬이랍시고 ‘캐나다식 발음이 없어서 다행이다’류의 반응을 하는데 기분이 나빠야 될지 좋아야 될지 모르겠다.   


3.


곧 봉쇄령이 풀린다고 한다. 아직도 확진자가 1~2만 명 대를 웃도는 수준이라서 조금 걱정이 되긴 하지만 5월 중순부터 예약을 하고 박물관 방문이 가능하고, 영화관도 갈 수 있고 테라스가 있는 레스토랑, 바, 카페 등을 갈 수 있다고 하니 솔직히 될 대로 되라 싶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적어도 두 달 정도는 파리를 즐기다 갈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두 달을 위하여 앞으로 한 달간은 돈을 좀 아끼면서 살아야 될 것 같다. 여기서 백신을 맞고 돌아갈 수 있을까? 프랑스는 외국인 대상으로도 PCR 테스트가 무료이기 때문에, 임시 사회보장번호(한국의 외국인/주민번호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밖에 없는 교환학생 신분으로도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글, 사진/ 문재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