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산 지 7년 차다. 《빅이슈》 편집장 김송희 씨는 이 사실을 안다. 그러니까 내게 “1인가구 여성으로서 혼자 사는 삶에 대한 에세이를 자유롭게 써주세요.”라고 의뢰했겠지.
하지만 자유롭게 쓰라니! 이게 더 어렵다. 게다가 혼자 산 지 오래되다 보니 ‘혼자 산다는 것’에 둔감해진 상황. 처음 독립했을 때는 설렘과 두려움을 느꼈고, 독립 후 2~3년간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무언가 배우고 빨아들이는 감각을 느꼈다. 더 나은 어른에 다가가는 성장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많은 것에 덤덤해졌다. 지금은 질서를 형성한 일상이 안정에 접어든 시기. ‘혼자의 삶’에 대해 관념적으로 골똘히 생각하기보다, 그저 하루하루 다가오는 구체적인 일들을 해치워갈 뿐이다. 이 주제로 글 쓰는 게 새삼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혼자의 삶을 유별나다 여기며 던지는 질문 속에 살아가지 않기에 갖게 된 감각일지도 모르겠다. 지방 소도시에 살며 일상에서 결혼과 출산에 대해 질문받는 일이 잦아 스트레스 받는다고 말하는 이들을 (아직도) 왕왕 목격한다. 내 경우, 요즘에는 그런 경험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낯선 이에게 적당히 무관심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쉬우며,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망을 만들기 용이한 서울이라는 도시가 젊은 1인가구에게 좀 더 폭넓은 자유로움을 제공하는 덕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서울의 30대 이하 1인가구 비율은 다른 지역보다 높은 편에 속한다.(통계청, ‘2020 통계로 보는 1인가구’)
그리고 나는 프리랜서로 일한다. 싫은 사람과 직장에서 매일같이 마주하며 짜증나는 ‘개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물론 일 때문에 주기적으로 만나야 하는 사람 중 결이 맞지 않는 이가 있지만 적어도 매일 보지는 않는다).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결혼과 출산에 대한 ‘압박’은 느끼지 못한다. 대부분이 1인가구이고(유유상종은 사이언스인가?), 본인이 결혼했더라도 그게 당연한 삶의 형태라고 전제하지 않는 친구들만 곁에 남았다.
일상에서 취미의 비중을 높게 두는 편인데, 취미로 알게 된 사람 대부분도 ‘결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 따위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요즘 내가 몰두하고 있는 탱고의 예를 들어보자. 탱고 커뮤니티 내에는 ‘돌아온 싱글’이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관련 질문이 조심스럽다. 괜한 질문을 던졌다가 상대가 배우자와 이혼했거나 사별했음을 알게 되면 굉장히 미안하고 분위기 싸해지지 않겠는가? 이런 조심스러움이 한국 사회 곳곳에 널리 퍼지길 바란다. “결혼 안 하셨어요? 왜요?” 같은 질문을 빙자한 ‘압박’이 사라지도록.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더라도 ‘도움 없는 간섭’이라는 폭력에 노출되지 않도록.
이런 압박 또는 폭력은 일상의 구조와 속해 있는 공동체에 따라 그 정도와 빈도가 다를 것이다. 개인으로서 지역사회의 지배적인 문화나 직장 내 관계는 당장 바꾸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장악하는 시간 동안 위로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 마음에 깔깔한 부스러기 하나 안 남기는 즐거운 친구들, 가치관을 공유하며 서로 고민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동지들 말이다.
내게도 그런 이들이 있다. 시답잖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깔깔대다가도, 고독사에 대해 얘기가 나오면 ‘두뇌 풀가동’하여 실용적 대안을 함께 고민하는 1인가구들. 이들과 ‘고독한 생존방’을 만들었다.(참고로 김송희 씨도 여기 속해 있다) 다른 말은 쓰지 않고 ‘ㅅㅈ(생존)’만 쓰는 채팅방으로, ‘공지’에 구성원의 주소가 등록돼 있어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시간 안에 생존 신고하지 않으면 조처하기로 서로 약속했다. 운 좋으면 돌연사 전에 발견할 것이고, 죽었다면 빠른 수습으로 시체의 부패를 방지할 것이다. 다만 그런 방을 만들기에 너무 이른 시기였던 것 같다. 다들 1년 넘게 별 탈 없이 생존하자 단체방이 서서히 비활성화됐다. 그래도 이런 대안이 가능하고 내가 그 관계망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 가슴 한 켠이 국밥처럼 뜨끈하고 든든하다.
누군가와 결혼해 함께 산다면 이보다 더 좋을까? 회의적이다. 아직도 상당수 현대인들이 ‘결혼을 통한 노후 대비’의 환상을 가진 듯 보이는데, 나는 혼인으로 노후의 삶의 질을 보장받거나 고독사를 온전히 방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새로 결혼하는 커플 수의 반만큼 이혼 건수가 발생하는 현실은(통계청이 조사한 ‘2020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2020년 혼인 건수는 21만 4천 건이었고, 2020년 이혼건수는 10만 7천 건이었다) 결혼해 가정을 이룬다고 꼭 노후까지 함께 하는 법은 없음을 드러낸다.
여성의 경우 병들었을 때 배우자로부터 간병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통계 결과도 환상을 부순다.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국립암센터국제암대학원대학교 등의 공동 연구팀이 암환자 439명을 분석한 결과, 남성 환자 86.1%는 신체활동 지원을 배우자에게 맡긴다고 응답한 반면, 여성 환자는 이 비율이 36.1%에 그쳤다. 또한 남성 환자 84%가 심리적 위안을 배우자에게서 얻는다고 응답했지만, 여성 환자는 이 비율이 32.9%에 불과했다.
결혼으로 당장의 삶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 나는 1인분만 책임지면 되는 가사 노동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데, 결혼하여 둘 이상 살게 되면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의 총량이 늘어날 것이다. 그중 많은 부분은 여성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 통계청의 ‘2019 혼인상태별 및 맞벌이상태별 가사노동시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의 하루 평균 가사 노동 시간은 남성 54분, 여성 187분이다. 더 화가 나는 건 심지어 여자 혼자 돈을 버는 가정에서도 여성의 가사 노동 시간이 더 많다는 결과다(남성 119분, 여성 156분).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지배적 분위기 속에서 예외적 존재가 되는 것도, 그런 존재와 연을 맺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니 여성이, 굳이, 결혼할 이유가 있을까? 홀로 생계를 꾸려가며 사는 게 고단하고 때론 불안에 잠식돼도, 차라리 그 편을 택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나라 걱정’ 하는 사람 중 일부는 1인가구 비혼 여성이 이기적이라고 비난한다. 저출생 국가에서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내가 아는 1인가구 친구들은 오히려 국가, 사회, 공동체에 대한 참여도가 높다. 시사에 관심을 가지고, 무엇이 정의인지 고민하며, 뜻을 같이하는 정당이나 시민단체에 힘을 보태거나 집회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도리어 서울의 아파트를 매입하고, 아이 낳아 그에게 자신의 계급을 세습하고 싶어 ‘열심히’ 사는 이들이 가족 이기주의에 빠지는 경우를 더 자주 본다.
이미 태어난 아이들 하나하나 소중히 대하지도 않으면서 새로 아이를 낳으라는 태도 또한 문제다.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계층에 따른 보육과 교육 격차를 줄이고, 지역 불균형을 개선하는 방향으로의 변화가 시급하다. 특히 지방 소도시는 경제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문화 정책도 필요해 보인다. 매력적인 사람들을 만나기 수월한, 아름다움이 있는 공간은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일 수밖에 없다. 개인을 존중하며 성평등을 지향하는, 젊고 재능 있는 이들이 지방 소도시에 뿌리내리고 지역 문화를 바꿔가도록 좀 더 파격적인 정책을 시행하는 게 어떨까? 원한다면 평생도 있을 수 있는 무상 임대주택을 제공하고, ‘입지 좋은’ 상가 건물을 공공이 매입한 뒤 젊은 문화·예술인들과 저액으로 임대차 계약을 맺는 일, 지금도 없는 일은 아니지만 좀 더 대대적으로 펼쳐지길 바란다. 주택 문제가 해결되고 경쟁 압력이 줄어든 공간에서 피어난 사랑으로, 그만 출생률이 늘어버릴 수도…?
글/ 최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