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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Aug 12. 2021

사소하게 연연하는_
설렘과 미련 사이의 연애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

리얼리티 데이트 쇼는 TV 예능 프로 중에서도 고전적으로 인기 있는 콘셉트다. 미국의 <배철러>나 <템테이션 아일랜드> 같은 쇼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2002년 초부터 방영한 KBS <산장 미팅: 장미의 전쟁>, 2010년대 초반에 인기를 끈 SBS <짝> 같은 프로그램을 아직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짝>이 종영한 이후에도 20~30대 남녀가 같은 집에 묵으며 연애 상대를 탐색하는 유의 프로그램은 지속적으로 등장했지만, 큰 화제를 모은 것은 넷플릭스의 <테라스 하우스>나 그와 포맷이 비슷한 채널A <하트시그널>이 인기를 끈 이후일 것이다. 근사한 집에 다양한 직업을 가진 젊은이들이 함께 살면서 데이트를 하고, 그 모습을 관찰하는 패널이 코멘트를 하는 형태의 쇼인 <하트시그널>은 MZ 세대의 라이프스타일, 영화처럼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 등을 내세워 젊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 이후에 등장한 Mnet의 <러브캐처>와 <썸바디>는 추리 요소와 춤이라는 요소를 더했을 뿐, 촬영 기법이나 진행 방식은 대동소이했다.

올해 6월 25일부터 OTT 플랫폼 티빙에서 오리지널 제작 프로그램으로 매주 금요일 1회 제공하는 <환승연애>도 <하트시그널>의 후계자다. 이용진, 사이먼D, 김예원, 유라, 객원 게스트 한 명으로 구성되는 패널이 있고, 여덟 명의 남녀가 한집에 살며 데이트를 하는 VCR이 있다. 여기까지는 여타 다른 연애 리얼리티와 유사하다. 하지만 이 쇼에는 제목에서 수 있듯 ‘환승’이라는 강력한 설정이 들어 있다. 여기에는 이전 연인이 같이 출연한다는 것. 즉, 여덟 명의 출연자는 이전에는 네 커플이었지만, 헤어진 이후 새로운 출발을 위해 이 쇼에 출연했고 다른 출연자들은 누가 누구의 전 여자 친구, 전 남자 친구인지 알지 못한다. 헤어진 커플들은 남들 앞에서는 낯선 사람인 양 행동한다. 시청자에게도 한 주에 한 커플만 공개된다. 현실에서 일어났다면 논란이 되기 딱 좋은 상황이지만, 이 쇼에서는 이 설정 탓에 온갖 감정의 회오리가 휘몰아친다.

기존 연애 리얼리티 쇼가 새롭게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썸’을 타며 설레고 선택을 고민하는 와중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파고에서 재미를 찾았다면, 여기에는 미련이라는 요소가 더해진다. 4개월 남짓 만나고 헤어진 커플도 있지만, 3년 반을 캠퍼스 커플로 지내다가 올해 초 헤어진 커플도 있다. 지난 연애의 감정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옛 연인이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것. 그야말로 복잡한 감정의 얽힘을 예고하는 환경이다. 풋풋한 설렘과 애타는 망설임에 진득한 미련이라는 요소를 더했다. 여기에 제작진은 감정을 자극하는 온갖 설정을 밀어 넣는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옛 연인이 써준 소개서를 읽는다거나, 데이트는 옛 연애의 추억이 있는 장소에서 해야 하며, 첫 데이트 전날에 익명 채팅으로 과거 연인에게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묻는다. 쇼 중간에 옛 커플의 아름다운 데이트 사진과 영상을 삽입한다. 새 출발을 하고 싶어도, 전 연인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는 셈이다. 당연하다, 그 사람은 바로 옆에 있으니까.


남의 연애는 재밌다, 내 일이 아니기에

TV 방송이 아니기에 볼 수 있는 시청자 층은 한정되었지만, <환승연애>는 허구와 현실의 경계에 진짜 커플이라는 기름을 끼얹어 활활 타오르게 하며 젊은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실제 연인을 등장시키는 건 이 프로그램만이 아니고, 카카오TV의 <체인지 데이즈>처럼 현재 권태기에 있는 연인들이 다른 커플들과 함께 제주를 여행하며 파트너를 바꿔 데이트한다는 콘셉트의 쇼도 있다. 이런 쇼들은 지나치게 내밀한 타인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관음적 재미에 더해 출연자가 괴로워할수록 보는 사람들은 더 재미있어지는 본연의 길티 플레저가 있다. <환승연애>도 마찬가지다. 과거 연인이 새 사람과 즐겁게 대화하거나 데이트를 하고, 그 뒤에서 우는 사람이 등장할 때 쇼의 흥미는 치솟는다. 

‘남의 연애는 정말 재미있다.’는 인터넷 밈처럼 리얼리티 쇼는 늘 태생적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착취한다. <환승연애>처럼 이별의 상처를 후벼 파는 쇼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의 약한 마음을 최대한 이용해서 시청자들의 흥분을 자아낸다는 점에서 또 한 번 리얼리티 쇼의 역설을 느낀다. 현실이니까 재미있지만, 현실이기에 마냥 재미있어 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현실이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처럼 날것으로 드러나면 거부감을 느끼고 영화처럼 펼쳐질 때만 받아들이기도 한다. <환승연애>는 이 역설을 가장 영리하게 이용해 현세대를 위한 리얼리티 쇼를 만들어냈다. 연애 상태를 카톡 프로필에 전시하고, SNS에 데이트 영상을 올리는 데 거부감이 없으며, 모두가 자신이 쓴 세련된 영화의 주인공인 세대의 리얼리티. 거기서 진짜 감정을 찾을 수 있을까? 적어도 시청자들은 그렇게 믿도록 만드는 것이 이 쇼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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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현주 
작가, 드라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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