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너희들에게
한국 대학은 보통 학사 일정이 종료되는 2월과 8월에 학위수여식을 갖는다. 졸업생 전원이 2월에 졸업하는 고등학교까지의 교육과정과 달리 대학생들에게는 8월의 졸업식이 한 번 더 주어지는 셈인 것이다. 남들이 휴가를 떠나거나 휴가에서 돌아오는 8월 말, 아직은 앳된 얼굴의 학생들이 힘껏 하늘을 향해 학사모를 던진다. 이날만큼은 배움과 시험의 끝에 서 있기라도 한 듯, 힘껏.
“교수님 감사합니다. 저도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부산 금정산 자락에 위치한 대학에 자리를 잡은 지도 어언 3년. 이미 고학번이었던 학생들을 서너 차례 졸업시키고, 이제는 썩 신입생들에게도 능숙하게 학사제도를 설명할 만한 내공이 쌓인 3년 차 교수에게 여전히 어려운 것은 다름 아닌 졸업생들과의 마지막 인사다. 졸업 후 거처가 정해진 학생들에게는 단단한 응원을, 기약 없는 취직 준비에 돌입해야 할 학생들에게는 따듯한 격려를 건네는 것이 마땅한 소임인 것 같지만, 막상 인사를 하러 온 학생들 앞에만 서면 웬일인지 입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 건 냉혹한 사회를 마주할 제자들에 대한 어떤 미안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하고, 석사학위만 있어도 대학에 선생으로 서던 시절은 갔다. 이제는 불안정한 취직 준비, ‘취준’이 마치 대학 이후의 정규 과정마냥 자리 잡았으며, 졸업 이후에서야 비로소 뼈아픈 배움과 잔인한 시험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곤 한다. 대학을 나와도 곧바로 돈벌이를 하기 어려운 시대에, 특히 취직이 상대적으로 더 어렵다고 평가받는 문과대학 학생들에게, 대학은 어떤 의미이며, 어떠한 의미가 되어줄 수 있을까?
학령인구의 감소로 휘청이던 대학 사회는 2020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직격탄으로 그 어느 때보다 위기의 시간을 걷고 있다. 특히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와 사상, 문화 등을 다루는 인문학 관련 학과들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으며, 끊임없이 쓸모를 물어오는 사회 앞에 융복합 인문학, AI 기반 인문 연구, 디지털 문화 콘텐츠 교육 등 인문학 분야의 학과들도 몸부림치듯 쓸모를 드러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나무의 뿌리에 급히 열매를 붙이려 한들 줄기가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그것이 순조로울 리는 만무하다.
한국어교육학은 이런 인문학의 위기 속에서 뿌리에 줄기를, 줄기에 잎사귀를 상대적으로 차근히 맺어오고 있다. 국어학 또는 국어교육학의 한 갈래인 것처럼 미비하게 시작된 한국어교육학은 학문에 앞서 현장의 수요로 인해 시작되었다는 특징이 있으며, 따라서 ‘이론은 수행 앞에, 수행은 이론 앞에 있어야 한다.’라는 로드 엘리스(Rod Ellis)의 말처럼 태생적으로 이론과 수행, 쓸모없음과 쓸모가 긴밀하게 얽혀 있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현재 부산외국어대학교 한국어교육학과에서도 졸업 이후 해외 또는 국내에서 한국어 교사로 ‘수행’할 수 있는 교원 양성을 위한 ‘이론’들을 가르치고 있다.
졸업 후 반짝이는 사람이 되겠다는 학생들에게 반드시 꼭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너그럽게 말해주고 싶지만 그건 왠지 제자들이 곧 경험하게 될 사회의 민낯에 대해 침묵하는 일인 것만 같아서 마냥 그런 말들을 해줄 수만은 없었다. 다만,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반짝임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반짝임에는 저마다의 결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무수한 반짝임의 결들을 가꾸고 만들어나가는 것은 사회에 발을 내딛는 저마다의 몫일 것이다.
한국어교육학이 제시하는 반짝임은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가 아니라 차근하게 준비해온 캐럴 합창단의 노래 가사 같은 반짝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의 쓸모를 묻는 사회의 집요한 질문에 한국어교육학은 그렇게 반짝임의 결을 달리함으로써 답장을 써 내려가고 있다. 이 차근한 답장을 함께 써 내려갈 반짝이는 아이들이 이제 곧 사회로 나간다. 8월에는 그 귀한 아이들의 발걸음을 축하하고 감사하는 졸업식이 있다. 그리하여 8월은 나에게, 어쩌면 또 다른 반짝임의 결을 찾는 사람들에게,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 8월의 크리스마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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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강희
부산외국어대학교 한국어문화학부 교수. 공부하는 사람.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국어학과 한국어교육학을 전공했습니다.
삶이 말을 변하게 하듯 말도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