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만 서른에 독립했다. 서울이 본가인, 거기다 아직 미혼인 내가 같은 서울 내에서 1인 가구로 독립을 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같은 표정과 말을 내뱉었다.
“왜?”
그도 그럴 것이 꼭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진 것이 아니니까. 안 하려면 안 할 수 있는 선택. 이걸 택함으로써 또 다른 무언가는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가령 해외여행 두 번 갈 수 있는 것이 한 번으로 줄여진다거나 목돈이 들어가는 위시 리스트 한두 개는 미뤄진다.
아무튼 이 ‘왜?”라는 걸 몇 번쯤 받아보니 그 질문에 받아치는 대답 하나가 준비됐다. “그냥. 할 때가 된 거 같아서…” 그 말이 거짓도 아니었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엄마, 아빠는 본인들의 자식들이 나이 서른이 넘도록 한집에서 함께 지낼 거라는 걸 예상이나 했을까? 내 나이 전에 이미 결혼에 출산, 육아까지 경험한 그이들에게는 아마 없던 그림이었을 것이리라.
먼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친구는 종종 “난 아이들 어서 키워놓고 남편이랑 여행 다니면서 편하게 쉴 거야.”라는 말을 나 그리고 남은 미혼의 친구들에게 한다. 덧붙여 “너네는 언제 하려고.”까지.
물론 그 말을 들을 때면 ‘맞아! 이럴 때가 아니야!’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든 적이 없으며 고로 조바심이 난다거나 하물며 기분이 상한 적도 없다. 다만 ‘나의 엄마, 아빠도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건넨다거나 혹은 생각을 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추측 정도가 문득 스친 때는 있었다.
모자란 잠을 더 자고 싶어 아침을 거르는 것이 발단이 되어 번지는 엄마와의 실랑이를 막기 위해, 사용한 수건을 빨래 통으로 직행시키지 않아도 되는 것, 부모님에게도 자유를 주자는 명목 등의 이유 수십 개를 들어 내 스스로 독립하기로 마음먹었고,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피자집에서 저녁을 사주기로 한 날, 그 사실을 통보했다. 그 직후 엄마의 대답에는 많은 감정이 묻어 있었다.
“오늘 참 비싼 피자 먹네.”
진정한 독립을 했느냐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면 결코 그렇지 못하다. 주거지는 독립되었지만 여기에도 부모님의 돈이 상당 부분 태워져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부분을 포함해 무너질 때면 가서 기댈 축이 있다는 것을 짐짓 인지하고 있는 것만으로 나는 완전한 독립은 하지 못했다.
집을 구하는 과정은 예상했던 것보다 간단했다. 이 말인즉 쉬웠다는 말은 아니다. 말마따나 간편했다. 직접 나서 보니 가진 돈에 정확하게 비례하는 집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재간을 부려봤자 뛸 수 있는 폭이 크지 않았다.
나는 원하는 동네가 있었고, 몇 개의 조건이 있었다.
1. 일터가 있는 강남과 근접하되 강북인 동네
2. 원룸이 아닐 것
3. 인덕션 아닌 가스가 들어오는 집.
우선 이 세 가지 조건만으로도 많은 집들이 쳐내졌다. 발품을 팔아보니 집값 돈 백만 원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었다. 채광, 엘리베이터 유무, 평지 위치 등 뭐라도 그 근거가 되었다.
그렇게 독립이라는 선언과 함께 만나게 된 나의 첫 집. 비록 내 명의의 집은 아니지만 방이 아닌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생겼음에 신기하고도 나 자신이 기특했다. 원했던 가스레인지(무려 3구)와 벽걸이 에어컨뿐인, 옵션이 하나도 없는 이 집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전용 면적 47m2. 주방 겸 거실이 있는 마루, 꽤 널찍한 방 하나, 욕실과 전면에 창이 난 베란다까지 텅텅 비어 있는 집은 이제 막 사 온 1천 피스의 퍼즐 판처럼 느껴졌다. 돈 백만 원 욕심 부려 얻은 좋은 채광은 퍼즐 판을 비췄고 나는 이 공간을 꾸미기 위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직장에 다니고 있던 때라 집에서 새로운 가구와 전자기기들을 직접 받을 수 없어서 매일 평균 두어 통의 배송 업체 기사님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 이런 경우가 많은 모양인지 기사님들은 내 집의 비번을 물어보시곤 거실에 착착 들여다 놓은 후 인증샷을 찍어 메시지로 보내주었다. 퇴근 후 현관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교체하는 것은 그 주의 루틴이 되었다. 카메라 센서등 체크하는 것과 함께.
중국의 사상가 노자는
없앨 것은 작을 때 미리 없애고 버릴 물건은 무거워지기 전에 빨리 버리라
고 했다던데, 내 집에 들어오는 물건들은 작든 크든 나가는 법을 잘 모른다.
무모한 인테리어는 꿈도 꾸지 않고 꼭 필요한 것들만 채워놨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와 뭐가 많네?”라는 말과 함께 입장한다.
이 집에 들어온 지 4년 차. 비어 있던 퍼즐 판은 오늘날에 이르러 스페어 조각까지 겹겹이 쌓인 상태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는 말의 적극 지지자인 나는 여기에 ‘쓸데없지만’이라는 것도 갖다 붙였다. 내 집에서까지 논리정연하게 쓸모를 따질 것이 무어랴. 그 결과 세상 내 마음에 드는 여러 것들이 내 집으로 모였다.
친구네 고양이가 그 집 사정으로 인해 한 달 하숙하러 왔을 때 네 발을 조심조심 디디며 온갖 가재와 소품들을 피해 다녔던 것을 보며 얼마나 웃겼던지. 직업상(이라고 쓰지만 결국은 내 돈 내 취향) 아름답고 멋진 물건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 이를테면 촬영 소품으로 구매했거나 낯선 나라로 출장 가서 만난 것들. 혹은 취재를 통해 내가 소개하고 내가 구입하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해변에서 구르던 돌멩이는 문진으로 사용되고, 도예하는 친구가 만들다 실패한 B급 화병도 거실의 센터에 놓여 있다. 부엌 찬장에 붙여놓은 낱장의 사진 한 장까지도 허투루 들여온 것은 아니다. 물건을 잘 못 버리는 이들은 지금 나의 항변에 공감의 버튼을 눌러줄지도 모르겠다.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물건을 끌어안는 것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그건 또 다른 스트레스를 내재시킨다. 눈에 걸리면 머릿속 역시 따라 복잡해진다. ‘어질러진 방은 언제 치우지?’ ‘그때 저거 하나 더 사 올걸.’ ‘지금 나오는 노래의 밴드를 한창 좋아했었는데…’ 등등. 내가 수집한 물건들은 모두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한 공간에 있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 집 물건 이야기를 펼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가진 물건을 나의 가장 사적인 공간에 들여놓는 행위는 반드시 필요하다.
과거 인간 생활의 3대 요소로 의, 식, 주를 꼽았듯 요즘은 내가 어디서 먹고, 놀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로 확장되었다. 팬데믹 시대를 맞아 더욱이 그 공간, 내 집의 중요도는 높아졌고 이는 앞으로도 더욱 가속도를 탈 것이다.
자신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호불호를 아는 것은 굉장히 큰 힘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업 앤 다운의 리듬을 타기 마련이다. 크게 작은 일상의 번아웃을 맞을 때 그 즉시 ‘도와줄 조력의 대상을 찾을 수 있느냐’는 굉장한 능력이다. 이는 어제보다 내일, 나이를 먹을 수록 실감하는 바다.
근거리에서 곁을 내주고 함께하는 나의 사람들만큼 사물도 그 역할을 맡아 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 몫을 톡톡히 해낸다. 어쩐지 자존감이 깎여나가는 시기, 왁자지껄하지만 어쩐지 불편한 모임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 바로 지척의 침대에 눕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재택 마감러에게 극효 처방은 내 눈에 가장 먼저 닿는 애정 어린 물건일 수 있다고 믿는다.
실 예로 한 주간 꼼짝 못하고 집에 갇혀 원고 편집을 해야 하는 일정에 내가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온라인 꽃 구독 서비스 사이트에 접속해 메인 화면에서 가장 고운 꽃 더미를 구매해 배송받은 것이다. 바로 내일 아침 문 앞에 도착해야 했다. 그만큼 시급했고 중요했다. 최대한 내 눈에 가장 잘 닿는 곳에다가 두었고 효과는 만점.
노트북 앞에 앉아 좀이 쑤셔 기지개를 켤 때마다 꽃이 눈에 들어왔고 순간적이지만 그때만큼은 기분이 좋아졌다. 나로선 수액과 같은 처방이었다. 남서향의 집이 오후 3~5시에 따뜻한 볕을 쬘 때면 좋아하는 잔에 커피를 내려 마시는, 이 아주 사소한 일상의 한 조각이 내가 망가지지 않는 선을 지킬 수 있게끔 지지해준다.
집 안 곳곳에 나와 관계를 가진 사물들을 켜켜이 두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큰 힘을 발휘한다. 시간성이 그 관계에 서사를 더해주기 때문에 어제보단 오늘, 내가 사는 집은 나와 더 닮아 있다. 나라는 사람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 포트폴리오. 나의 집 역시 입주 후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움직이고 변화되고 있다. 이렇게 오늘도 나를 위한 선물을 하기 위해 서두를 길게 늘려보았다.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이의 눈에 지금 당장 닿는 것들은 무엇인지, 당신은 어떤 사람일까?
글. 박지현 에디터
귀여운 것에 돈을 잘 지불합니다. @zhy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