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상태란 대체로 최소한의 주거비, 당장의 월세조차 지불하기 힘든 형편이 되었다는 것. 그래서 상대적으로 젊은 청년 홈리스들도 꽤 있다고 하면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많다. 청년이라면 건강과 근로 능력이 있을 테니 뭐라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일까. 하지만 여러 데이터들이 젊은 홈리스의 비중이 무시 못 할 정도라는 걸 보여준다.
20대, 30대의 젊은층 홈리스들
서울에서 홈리스 서비스 상담을 받은 홈리스의 데이터를 집적한 보고서를 보니(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의 <2019년 다시서기 사업보고서> 참조), 2018년 1월에서 10월까지 신규 홈리스로 등록된 인원은 1,679명이다. 이 가운데 연령이 파악되지 않은 사람 108명을 제외한 인원은 1,571명. 이 중 20대는 6.4%, 30대는 9.5%로 2~30대의 젊은층 홈리스가 15.9%, 250명에 이른다. 더 이전인 2017년에는 14.9%, 2016년에는 17.3%가 새로 등록된 2~30대 젊은 홈리스였다. 매해 꾸준히 새로운 홈리스가 발생하고 복지 서비스를 찾는데, 비교적 젊은층이라고 할 수 있는 2~30대 청년 홈리스가 15% 내외로 적지 않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데이터이다.
내가 일하는 여성일시보호시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매년 젊은 여성 홈리스들이 거리에서 노숙을 하거나 주거의 위기에서 도움을 받기 위해 찾아온다. 작년에는 1년 동안 총 167명의 여성들이 시설에 머물다 갔는데 그중 20대는 27명, 30대는 42명으로 전체 이용인의 41.3%를 차지했다.
시설을 찾았다는 건 정말 거리 노숙을 하거나 거리에서 노숙하기 직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지만 조금만 상황이 나빠져도 거리 노숙을 피하기 힘든 열악한 상황의 홈리스들이 거리 노숙 잠재군으로 있다. 홈리스들이 전전하는 불안정한 잠자리 중에서 고시원이나 PC방 같은 비주택에는 2~30대 젊은층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이걸 고려하면 실제 젊은 홈리스의 규모는 아마 보이는 것 이상이지 싶다. 작년에 여성일시보호시설을 찾은 신규 여성 홈리스 123명의 직전 잠자리만 봐도 정부의 공식 홈리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거처에 머물다 온 경우가 40%가 넘는다. 16.3%가 고시원이나 여인숙 등 비주택에서, 6.5%가 찜질방이나 PC방 같은 다중이용시설에서, 10.6%가 더부살이를 했고, 기타 숙식제공 일터나 기숙사에도 머물렀다 한다. 우리 사회 홈리스들이 IMF 경제위기 때처럼 실직한 중장년층 중심으로만 형성되어 있지는 않은 것이리라.
왜, 어떻게?
도대체 젊은이들이 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사실 홈리스로 거리 노숙까지 하게 되는 데는 연령 불문하고 일자리 유지가 힘들고, 심신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으며, 가족의 지지를 받을 수 없고, 복지 서비스에 접근하거나 진입하기 힘들며, 당장 회복이 힘든 어떤 사고나 사건 같은 게 개입되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한 청년 홈리스 관련 연구에서는(김소영의 2016년 박사논문 <청년노숙 경로에 관한 연구> 참조) 청년 홈리스의 경험에서 두드러지는 노숙 위험 요소들에 주목한다. 빈곤하고 불우한 가정으로부터 일찌감치 이탈하게 되면서 경험하는 위기, 그리고 불안정한 삶을 스스로 꾸려가는 과정에서 겪는 사회적 피해와 좌절이다. 실제 청년 홈리스들은 청소년기에 집을 떠나야 했거나 일찌감치 청년기부터 노숙을 경험하는 사람들이다. 청년기에 노숙에 진입한 이들은 신체적·정신적인 건강 문제가 많고 노숙 이전에 독립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피해를 입은 경험이 많다. 더 일찍이 청소년기에 홈리스가 된 이들은 특히 노숙 전부터 따돌림, 괴롭힘, 폭력 등 신체적·정신적 피해 경험, 노숙 이후에는 대포폰, 대포통장, 명의대여, 명의도용 등 경제적 사기 피해 경험도 많다. 핵심은 성인으로서 삶을 살아갈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나치게 빨리 경제적 독립과 주거 독립이 이루어져 낮은 질의 단발적 일자리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안정적 독립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도, 정신적 여유도 없이 경제적 궁핍과 부담을 스스로 해결하기에 급급하다가 조금만 주변 상황이 나빠져도 노숙에 이른다는 것이다.
위기의 젊은 여성 홈리스
여성일시보호시설에서도 그러한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의 궤적을 보이는 젊은층 여성 홈리스들을 만날 수 있다. 젊은 홈리스들이 겪는 생계와 거주의 불안 그리고 혼돈에 더해 여성들은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의 경험, 결코 호혜적이지 않은 인간관계에서 경험한 트라우마, 정신병 증상으로 인한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경험하는 예도 허다하다.
몇 달 전 만난 26세의 영씨는 다섯 살 때 엄마가 사망하고 재혼한 아버지와 살았다. 아버지의 폭력이 심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오빠와 청소년 쉼터에서 지내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 독립한 뒤로 오빠와는 연락이 안 되고 아버지도 연락을 달가워하지 않아 전화도 뜸하게 했는데 얼마 전에 연락하니 전화번호가 바뀌었더란다. 가출과 쉼터 생활을 오가는 가운데 중학교만 졸업했다. 독립한 후 음식점 주방 일을 하며 100만 원 정도의 수입으로 생활했다. 어렵게 친구가 있는 곳에서 원룸을 마련해 지냈는데 친구의 사기로 원룸 보증금을 날리게 되어 방을 빼게 되었고, 그 후로는 공원 벤치에서 앉았거나 돌아다니며 노숙하는 상황이 되었다. 가끔 오가다 알게 된 사람의 도움으로 그의 집에 3~4일 머물기도 했다. 일을 다시 구하려 했지만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청소년 쉼터에서 당뇨가 있다는 걸 알고는 치료를 받았는데 퇴소 후엔 치료도 받지 못했다. 시설에 오고 얼마 후부터 영씨는 당뇨 치료를 재개했고, 정신과 진료도 받기 시작했다. 잠자리에서 끙끙대며 잠꼬대를 한다는 다른 이용인들의 제보로 상담을 하니 매일 폭력에 시달리는 꿈을 꾸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었다.
25세의 정씨는 부모의 폭행과 폭언도 싫고, 자신이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가져가버리는 것도 싫어서 가출했다. 잠깐 가정폭력 쉼터에 갔었지만 위치 노출을 우려해 일을 제한하는 규정 때문에 홈리스 시설에 오게 되었다. 작년부터 최근까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여 월수입 50만 원에서 70만 원 정도를 유지했는데 어떻게든 독립하여 생활하고 싶단다. 어릴 때부터 소아당뇨로 치료를 받고 있으니 앞으로 치료비를 감당하는 게 좀 걱정이란다. 24세의 이씨는 부모가 월 30만 원씩 지원해주어 독립했지만 2년 전 지원이 끊겼다. 생활이 어렵자 남자 친구 집에서 더부살이를 해왔는데 얼마 전 가정폭력을 당하고 집을 나왔다. 가끔 아르바이트를 했으나 공황장애로 길게 유지하지 못했다. 돈이 필요해 신용카드를 사용해서 연체금이 생겼다고 한다.
어쩌면 극단적 빈곤선에 몰려 있는 홈리스들의 현실은 점점 격화되는 경쟁과 취업 절벽의 사회에서 부모에게 의존하는 기간이 늘어나고 독립이 지연되는 젊은이들의 답답한 현실과도 사뭇 다른 절박한 것이다. 빈곤하고 불안정한 환경의 위기 청년들은 불가피하게 집 떠남을 선택하거나 내몰리면서 준비가 덜 된 독립생활을 시작하고 지지 체계가 취약한 상황에서 실업, 주거 빈곤, 피해로 굴절된 고달픈 생활을 전전하다 여차하면 홈리스가 된다. 스펙 쌓기로 고달픈 젊은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위태로움 속에 있다가 그마저도 쉬이 흔들리는 세계에 존재하는 청년 홈리스들이 한 나라에 있다. 물론 젊은층 홈리스의 증가는 우리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경험하는 현상이기는 하다. 일찍이 일본에서는 ‘넷난민’이라는 청년 홈리스에 주목한 바 있고, 유럽에서도 청년 실업과 청년 빈곤의 확산과 관련해 청년 노숙 문제를 환기하는 논의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니 청년 홈리스 문제는 어디에나 있는 거라 하고 밀쳐놓을 것인가. 청년을 홈리스로 만드는 우리 사회의 위험을 어떻게 다뤄서 홈리스가 되지 않도록 할 것인지, 함께 걱정하고 고민해야 하리라.
글. 김진미
여성 홈리스 일시 보호시설 ‘디딤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