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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Sep 09. 2021

사물과 사람_
상처입은 존재들의 거처

이런 길은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큰일이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는 숲길에서 후진은 내게 무리이고, 공간이 있다고 섣불리 비키다간 진창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갈 때마다 차를 마주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나는, 세계 평화가 아니라, 이런 기도를 할 때 진심을 다한다.)


시골길 도랑에 빠진 적이 있었다. 좁은 비포장도로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차를 피하려고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는데 땅이 꺼지면서 차가 기울었다. 검은색 중형 세단은 트인 길로 그냥 지나가버렸고 나의 흰색 ‘액센트’는 바퀴가 헛돌면서 나오지를 못했다.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지금은 불안과 함께 그 일이 자꾸 떠오른다. 이런 길을 운전하는 것, 아이가 부탁한 일이 아니라면 안 했다.



린아는 동물권(Animal rights)에 관심을 가진 후에 비건(Vegan)이 되었다. 육류, 어류, 달걀, 유제품을 먹지 않음은 물론이고 화장품이나 샴푸 등 생활용품도 동물실험을 한 것은 쓰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을 교육시켜서 이제 가까운 사람은 다 비건이다. 동물보호소(Animal sanctuary, 생추어리는 피난처, 안식처, 

성소라는 뜻이 있다. 일시적인 보호가 아니라 이곳이 삶의 마지막 거처가 되는 동물이 더 많다. 동물보호소라는 말이 그 느낌을 다 담는지는 모르겠다.)에서 자원봉사하는 것도 린아가 하고 싶은 실천 중에 하나였다. 별생각 없이 그러라고 했다.(혼자 갈 수 있는 버스가 있는 줄 알았다.) 금요일 아침마다 내가 린아와 남자 친구 타이를 태우고 그 숲길을 가게 된 경위 설명이 길어졌다.


마른 뼈

우린 네 시간 동안 일을 한다. 린아와 타이는 고양이 서른 마리의 집을 돌본다. 배변 통을 치우고, 바닥을 닦고(설사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바닥에 흘린 걸쭉한 똥을 치우고 걸레로 닦아야 한다.) 젖은 음식 남은 것을 비우고, 마실 물을 갈아준다. 시간이 남으면 말과 양과 염소 우리에서 똥오줌에 젖은 풀을 거둬내고 마른 건초를 넣어주는 일도 한다. 그러는 동안 나는 빨래를 하고 부엌과 화장실 청소를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부엌에서 밥그릇을 닦고 있으면 고양이들이 와서 다리에 감긴다. 의자에 앉으면 슬그머니 무릎에 앉는 놈도 있다. 나는 고양이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알지만, 좀처럼 목덜미를 쓰다듬어주지 않는다. 형편없이 마른 목과 등뼈를 만지는 것이 힘들다. 내가 뭘 부러뜨릴 것 같아서 조심스럽기도 하거니와, 그 처량함을 감촉하는 것이 싫다.(만져주는 것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나는 이리 인색하다.)

이곳에는 늙고 병든 존재들이 많다. 늘 부엌 싱크대 위에 앉아 있는 검은 고양이 ‘바기’는 턱과 목에 걸쳐 종양이 있다. 그 때문에 유달리 턱이 길고 커 보인다.(그 모습이 소설 <정글북>에 나오는 검은 표범 바기라와 닮아서 그렇게 이름 지었단다.) 마당을 돌아다니는 고양이 시저는 꼬리가 없다. 차에 치여 잘렸단다. 고양이 면역결핍바이러스(FIV)에 걸린 놈들도 많아서 10여 마리가 아예 따로 산다. 아파서 버려진 것인지, 버려져서 아프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고양이만 그런 것이 아니다. 뇌전증이 있는 말도 있고, 눈이 안 보이는 개도 있다. 모르긴 해도, 이곳에 있는 고양이, 개, 토끼, 돼지, 염소, 양, 멧돼지, 말, 거위, 닭, 비둘기 200여 마리 식구 중 건강한 동물은 절반도 안 될 거다.




아픈 이

미피는 금요일에 오는 자원봉사자이다. 열여덟 살, 린아 또래다. 첫눈에 그가 아프다는 것을 알았다. 자폐증이라고 했다. 미피는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내게 고양이들의 이름과 특징을 알려준 것도 미피다. 어느 날 부엌 바닥을 대걸레로 닦다가, 잠깐 비켜달라고 그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감쌌다. 내 딴에는 친근함의 표시였다. “만지지 마요!”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나는 만지는 게 싫어요!” 여러 번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계속 미안했다. 나는 무지하고 무례했다.


부엌에는 털이 빠지고, 눈이 흐리고, 늙고 쇠약한 고양이들이 어슬렁거리거나 칸막이 선반 자기 담요 위에서 잠을 잤다. 꼭 그에게 한 얘기는 아니었다. 혼잣말에 가까웠다. “여긴 아픈 고양이들이 많구나…” 미피가 말했다. “아픈 고양이는 입양이 안 돼요. 사람들은 병이 있는 존재와 함께 살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냥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데려다놓고 잊어버리고 싶어 하지요.” 그가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말했다. 말소리에 마음이 담겨 있었다.


고백하자면, 나도 못할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 와서 청소(하고, 좋은 일 했다는 생각에 마음 부듯)할 수는 있지만, 그 여윈 뼈를 만져주고, 곪은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비루한 털과 흐린 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는 것을 내가 안다. 미피는 이 보호소에서 밀란이라는 고양이를 입양해서 키운단다. 아픈 사람이 아픈 동물을 돌본다.


생존 수탉

동물 식구들이 이곳에 살게 된 사연은 각자 다르고 다들 비슷하다. 고양이나 개 같은 반려동물들은 주인이 죽거나 이사하면서 여기 보내진 경우가 있고, 버려지거나 버려진 채로 태어나서 떠돌아다니는 것을 구조해 온 경우도 있다. 이 보호소에도 ‘루마니아 구조 고양이’들이 몇 마리 있다.(우리 옆집 고양이도 루마니아에서 구조된 고양이다.) 도대체 그 나라에서는 고양이들을 얼마나 학대하길래 이렇게 난민 고양이들이 많을까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거기에는 유기묘를 구조해서 안전한 곳으로 보내는 자선단체가 열심히 활동하기 때문이라고 한다.(이 얘기를 듣고, 루마니아 사람에 대한 내 편견을 들킨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고양이들은 이러저러한 슬픈 연유로 여기에 왔다. 개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닭들은 <치킨 런>의 주인공들처럼 농장을 ‘탈출’하거나, 운송 중에 뛰쳐나온 녀석도 있고, 수탉의 경우, 어릴 때 구해 온 녀석들도 있다. 산란 농장에서는 알을 낳지 못하는 수탉은 쓸모가 없어서 병아리 때 감별해 ‘처분’해버린다. 그런 수평아리를 동물구조 단체가 농장에서 사서 이런 보호소에 보낸다.(보호소에 유달리 수탉들이 많은 이유다.) 일찍 도살되는 수탉이나, 평생 쉼 없이 알을 낳다가 도살되는 암탉이나 다 서글픈 삶이다.


인간이었다면

‘의인법’은 내가 인간이 아닌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이들이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낀다면, 아니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는 다른 생명체에게 이렇게 사육된다면… 상상을 하다가 멈췄다. 이 세상에서 인간인 게 다행이고, 인간이라 미안했다.

기도가 통했는지 오늘도 마주 오는 차와 만나지 않았다. 대신 같은 방향으로 가는 말을 만났다. 타박타박 걷는 말 뒤를 천천히 따르는데, 린아가 물었다. “저렇게 사람을 태우는 걸 말도 좋아할까?” 승마를 하는 사람들은 다들 ‘그렇다’고 말한다. 글쎄… 보호소에 있는 말들이 인간의 말을 한다면, 그들이 무슨 대답을 할지가 진짜로 궁금했다.


글 | 사진. 이향규

남편과 두 딸,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영국에서 산다. 한국에서는 대학과 연구소에서 일했다. 지금은 집에서 글을 쓴다. <후아유>, <영국 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 같은 책을 냈다. 작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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