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검색창에 내 이름을 종종 넣어본다. 이 글을 쓰기 직전 확인하니 최상단에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이 더 좋은 곳으로 가려면’ 강의가 있고 그 다음엔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 있다. 각각의 조회 수는 53만과 223만, 둘 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을 통해 강의한 것이다. 가끔 사람들을 만날 때 이런 말을 듣는다.
“작가님 유튜브에서 봤어요!”
2018년에 낸 책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 종합 베스트셀러가 되자 나는 얼떨떨하면서도 두려워서 새벽마다 자고 깨고를 반복했다. 선잠이 계속되던 시기에 알게 되었다. 그 어떤 행복에도 불순물은 끼어 있으며 커다란 기쁨에 익숙지 않은 사람은 간절히 원했던 일이 생기더라도 내 몫이 아닌 것 같아 어색해한다는 것을. 10만 부, 20만 부, 30만 부…. 책의 판매량이 높아질수록 겉으로는 대범한 척했지만 겁이 났다. 내가 사실은 별볼일 없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버릴까 봐. 어쩌다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걸 남들이 알아채고 자격이 없다고 비난할까 봐. 그건 겉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가면증후군의 전형적 증세이기도 했다. 언젠가 강제로 이 가면이 벗겨져 맨 얼굴이 드러나고, 그게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거라 실망을 줄 거라는 생각.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조언을 자주 들었으나 내가 어지러움을 느끼는 이곳이 바다인지 호수인지 우물인지 알 수 없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조그맣게 하는 행사가 아니고서는 대부분의 요청을 거절하고 있던 즈음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팀에서 연락이 왔다. 책과 관련해 강의를 해달라는 거였는데 당시 세바시는 한국형 TED를 표방하며 만드는 영상들이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해 화제가 되고 있었다. 요청을 거절하자 담당자는 당황한 내색을 숨기지 않았다. 책 홍보가 되니 당연히 내가 할 거라 예상했던 것이다. 그렇게 통화가 마무리되었다면 내 인생은 지금과 또 달라졌을까? 며칠 후, 당시 다니던 회사의 대표님이 나를 호출했다. 세바시 피디와의 인연으로 나를 설득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며 대표님 생각에도 한번 해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대표님은 전부터도 내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밀어주며 해보라고, 잘할 수 있을 거라 말해주곤 했다. 이처럼 나도 모르는 가능성을 남들이 먼저 알아보고 확신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들의 예언이 맞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무리를 해서라도 노력하게 된다. 자리로 돌아와 담당 피디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제가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해볼게요.”
A4 용지 기준으로 3장 정도를 쓰면 15분 내외로 말할 분량이 나온다.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해 다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로 구조를 넓혀가며 강의안을 써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친근한 에피소드를 넣어 청중의 몰입을 돕고 그 후 본론으로 들어가라고도 했다. 카드뉴스를 만드는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강의안 구조를 짜는 방식은 낯설지 않았다. 한번 피드백을 받아 완성한 대본을 입으로 여러 번 소리 내 읽었다. 어차피 내가 쓴 대본이니 이야기 흐름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고 긴장해서 단어를 잊더라도 흐름만 자연스럽게 가면 되는 거였다. 녹화 당일, 대본을 들고 서 있는데 관계자가 말했다. 대본을 들고 가시는 건 자유지만 추천 드리지는 않는다고. 손에 대본이 쥐여져 있으면 아무래도 제스처가 한정되고 어색해지기 쉽다고. 보고 있던 직사각형의 대본을 대기실 책상 위에 놓아둔 뒤 걸어 나와 마이크를 착용했다.
다음 순서가 나니까 대기하라는 신호를 보며 생각했다. 여기 있는 관객들은 모두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알고 있는 정보는 내가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라는 책을 쓴 작가라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제목만 보고 저자가 조금은 까칠한 스타일일 거라 예상하고 있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초반에 그들이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깬 뒤 편안하게 들을 수 있을까?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섰다.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정문정입니다. 생각보다 너무 예뻐서 놀라셨죠?”
와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영상이 공개된 뒤 강의 요청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러고 보니 최근 두 달간 강의를 몇 번 했나. 코로나19 때문에 줄어들긴 했지만 13개를 했으니 한 달에 여섯 개쯤 한 셈이다. 같은 기간 동안 원고 마감 횟수는 그 절반이다. 강의료와 원고료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10년 전 내가 잡지 기자이던 시절 작가들에게 지급해주던 원고료가 회당 20~30만 원 정도였는데 그 시세가 아직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반면 책정된 예산이 너무 적어 강사를 부르기가 힘들다고 말하는 지역 도서관이라도 최소 50만 원은 강의료로 제시한다. 이 불균형은 어째서 그런가? 하는 일의 비중이나 수입으로 치면 내 직업은 작가라기보다 강사에 더 가깝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뿐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인세나 고료로는 생활이 되지 않아 강의를 함께 소화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막연히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잘 쓰면 말도 당연히 잘할 거라 생각하지만 오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작가들은 강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작가가 되고 싶던 20대에 수없이 많은 작가와의 만남을 쫓아 다녔는데 그중 말을 잘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그 이유가 작가들이 대부분 수줍음 많은 내향인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했으나 강의를 자주 하며 알게 되었다. 작가의 태도와 강연자로서의 태도가 상반된다는 걸. 이 둘을 수행할 때는 전혀 다른 에너지가 사용된다. 예컨대 글쓰기의 중요한 태도 중 하나는 확신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고민에 천착한 과정과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해보고자 노력한 흔적을 보여주는 걸로 충분하다. 작가는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사람이 아니고 다만 독자들이 감상하고 사유하는 길을 암시할 뿐이다. 그러나 강사는 내가 알아낸 최소한의 한 가지에 대하여 구체성을 갖고 설명해야 한다. 명확한 어조와 카리스마로 좌중을 장악하고 설득해야 한다. 글을 쓸 때 나는 항상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아는 상태에서 시작하려 하지만 강연 시작 전에는 내가 강하다고 마인드 트레이닝을 한 후에 이야기를 시작한다. 글은 어떤 ‘척’에서 벗어나야 부담 없이 술술 써지는데 강의를 할 때는 이 ‘척’의 오라를 뒤집어쓴 뒤에 연기하듯 눈빛과 손짓, 호흡과 발성을 조절한다. 유명 강사의 자질은 좋은 배우의 자질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글을 쓸 때 나는 계속 의심하고 말을 할 때 나는 계속 확신한다. 이처럼 상반되는 장르를 병행할 때 나오는 개성이 있는 것 같다. 한 가지에 몰입해서만 전문가의 역량이 나오는 건 아니지 않을까. 물론 이건 내가 둘 중 한 가지에 압도적인 재능이 없으므로 하는 자기합리화다. 그러나 그러면 또 어떤가? 강의를 할 때 작가로서의 자아가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지금 좀 우스꽝스럽지 않느냐고 비웃을 때가 있다. 강의를 하는 정서가 글에서도 스며들어가 논조가 강해질 때가 많다.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지금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뿐이다.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칸막이가 정확히 나뉘지 않아 냄새와 양념이 조금씩 섞여버린 반찬통을 들고서 걸어간다. 어쩌다 보니 글 쓰는 것과 말하는 것 둘 다 내 직업이 되었는데, 글 쓰는 일은 돈 안 받고도 계속하고 싶고 말하는 일은 사람들이 시간을 내어 모여 있으니 최선을 다한다. 둘 다 다른 방식으로 오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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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문정 <더 좋은 곳으로 가자>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썼습니다. 유튜브에서 ‘정문정답’을 진행합니다. @okdommoon
일러스트. 조예람 사소한 주변을 담은 ‘Around Ginger’의 일러스트레이터. @around_gin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