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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Oct 22. 2021

더 이상 죽고 싶지 않기 위해서

탈가정 여성 청소년 집을 찾다


열일곱 살 봄

웹툰 '쉼터에 살았다' 중


나는 열일곱 살 때부터 죽고 싶었다. 엄마는 나만 잘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왜 이런 쉬운 것도 해내지 못하는 거냐고 했고 나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쉽고 간단한 것들을 도무지 해낼 수 없었기에 죽음밖에는, 이 모든 문제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길을 걷다가 차에 치이는 상상을 했고 손톱으로 손목을 그었고 교실 창밖에 나뭇잎이 떨어지는 걸 보고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상상을 했다. 그렇게 겨우 살아만 있다가 그것들이 엄마의 가스라이팅이었고, 나는 가정 폭력을 당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죽고 싶지 않아서 집에서 도망쳐 나왔고 그렇게 나는 탈가정 청소년이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 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도, 그래서 탈출이라는 방법을 선택했어도 죽고 싶은 마음은 없어지지 않았다. 우울은 내 몸을 무겁게 했고 나는 자신을 먹여 살리지 못했기 때문에 두 번이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 과정에서 몇 번이나 ‘사실은 엄마 말대로 내가 글러 먹은 게 맞고 이 모든 게 죽어야 끝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몇 번이나 집을 나갔던 이유는, 죽고 싶지 않아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거기에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물두 살 겨울


청소년 쉼터는 세 번째 가출을 한 지 3개월쯤 됐을 때에 알게 되었다. 많이 망설였지만 결국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입소하게 되었다. 나에게 우호적인 어른들이 있고, 쾌적하고 안전한 잠자리가 있는 쉼터는 탈가정을 한 이래로 가장 안정적이라고 느끼게 해주었다. 이전까진 우울증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는데, 일도 꾸준히 하게 되니 이제 정말 괜찮아질 것 같았다. 계속 일을 하고 돈을 벌어서 방을 구하고, 그러다 보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퇴소 한 달 전, 나는 또다시 무너졌다. 일을 나갈 수 없었고 앞으로도 계속 이럴 거라는, 그래서 절대로 내가 원하는 ‘평범한 삶’은 살 수 없을 거라는 절망감이 나를 덮쳤다. 어차피 계속 이럴 거라면 더 이상 기대하지 말고 죽는 게 행복해지는 길인 것만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쉼터 방 안에서 자살 시도를 했다. 쉼터에는 자해나 자살 시도를 하면 퇴소를 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자살 시도 후 나는 쉼터 선생님에게 울면서 살려달라고 말했다.


스물세 살 가을

때늦은 아빠의 도움으로 퇴소 후 자취방을 구한 뒤에도 3개월은 일을 시작할 수 없었다. 매일 누워만 있으면서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고 휴대폰 게임만 하고 있었다. 현금도 없어서 휴대폰 결제로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결제일이 되면 최소 금액만 어떻게 마련해 결제를 하는 식으로 버텼지만 어느새 연체 금액이 50만 원이 되어 있었다. 그때서야 몸을 일으켜 취직한 직장은 다행히 꽤 괜찮았다. 돈을 많이 주지는 않았지만 집과의 거리도 가깝고 일도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게 가장 좋았다. 내 우울은 정신없이 자다가 일어난 시간이 저녁일 때 가장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데에만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세 달 넘게 일을 했고 최장 기록을 갱신 중이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던 하루가 이어지던 어느 날, 퇴근을 하는데 이유도 없이 머릿속이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당장 차가 다니는 도로로 뛰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곧 ‘어라, 내가 죽을 이유가 없는데? 일도 잘 다니고 있고 지금 완전 괜찮은 상황인데?’라는 생각을 했고 그때 처음 우울증이 내 의지로 이겨내거나 당장의 문제가 사라지면 없어질 수 있는 단기적인 문제가 아닌, 장기적이고 제대로 된 치료가 필요한 병증이라는 인식을 했다. 결국 나는 그날 집에 와서, 돈이 없어 안 가고 있던 정신병원에 다시 예약을 잡았다.


아주 보편의 경험

나의 우울증이 탈가정 청소년의 얘기와 무슨 큰 상관이 있냐 싶겠지만 탈가정 청소년의 심신, 특히 마음이 건강한 상태라는 것은 감히 단언컨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의 경험을 탈가정 청소년들에 얘기하면 다들 자기도 그렇다며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빠르면 10대, 알바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나이에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가능한 한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비행 청소년’ 정도로, 철없는 존재로만 보고 정상가정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만이 답이라는 듯이 행동하기에 우리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겉보기엔 밝아 보이던 친구도 심한 불안증과 공황장애를 겪고 있어 타인의 시선이나 말, 기분에 휘둘리고 스트레스가 과하면 호흡이 힘들다는 얘기를 꺼내는 것이다. 이렇게 탈가정 청소년에게 우울증은 거의 기본 옵션일 정도로 아주 보편의 경험이다.


하지만 안 그래도 날 먹이고 재울 공간만 찾기에도 버거운 상황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마음을 챙길 여유는 없다. 당장의 주거, 일자리, 안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게 얼기설기 이어 붙여 모른 척한 누더기가 된 마음은 결국 일상생활마저 무너뜨린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반드시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치료해야만 한다.


우리도 변할 수 있다






내 경험을 만화로 그리면서 나는 많은 인터뷰를 하게 됐고 또 여러 친구도 사귀게 되었다. 그러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내가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가출 청소년의 이미지’와 놀랍도록 다르다는 얘기였다. 그 이미지가 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당연히 알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극복할 수 없는 우울과 함께할 것 같고 주변의 눈치도 많이 보고 늘 주눅 들어 있을 것 같은, 그런 이미지.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기 싫어서 집을 나온 것이다. 그냥 죽어버리지 않고 뭔가 바꿔보려고, 자신에게 기대해보려는 용기가 있기에 뛰쳐나올 수 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평생을 아득바득 어렵게 살고 싶어서 집을 나온 것도 아니다. 부모와 같이 있는 게 숨 막혀서, 집이 집 같지 않아서,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나온 것일 뿐이다. 가끔은 그렇게 탈가정 청소년이라고 부르며, 우리를 영원히 정상성은 가질 수 없는 불쌍한 존재로 남겨두려 한다는 인상을 받을 때도 있다. 설령 당장은 우울에 잠식되어 있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주눅 들어 있더라도 그건 절대 변할 수 없는 탈가정 청소년의 특성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치료를 하면 나아질 수 있고 제대로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탈가정 청소년을 사회에 편입시켜줄 생각이 있다면 외부에서도 탈가정 청소년의 정신 케어 문제에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스물여섯 살 여름

나는 내 마음을 살펴보려 노력하고, 자신에게 관대함을 가지고 꾸준히 치료했다. 나에게는 이제 주변에 좋은, 함께 살아가고 싶은 사랑하는 친구들이 많이 생겼고, 내 일을 할 수 있고 내 힘으로 돈을 벌고 있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도 많이 있다. 그리고 그걸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있다. 나는 쭉 이렇게 살고 싶었다. 다들 이렇게 살고 싶어 집을 나왔을 거라 생각한다. 열일곱 살 때부터 죽고 싶어 했던 나는 이제 더 이상 죽고 싶어 하지 않는다. 탈가정 청소년에게도 이런 삶이 가능하다. 우리는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 죽지 말자.



글. 하람
리디북스에서 탈가정 이후 쉼터 생활을 그린 「쉼터에 살았다」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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