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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Nov 08. 2021

'영끌' 세대를 위한
드라마의 자기책임론

<갯마을 차차차>와 <오징어 게임>

2021년 여름 끝에 찾아와 인기를 꽤 끌었던 한국 드라마로 tvN의 '갯마을 차차차'가 있다. 이 드라마의 초반, 주인공인 홍 반장은 어떤 이유에선가 바닷가 마을 ‘공진’에 와서 최저시급만 받고 동네 온갖 잡무를 맡아 한다. 그에겐 공인중개사, 미장기능사를 포함 수십 개의 자격증이 있다. 자기가 원할 땐 일을 쉬고 서핑을 즐기며, 예쁘게 꾸며놓은 단독주택에서 와인을 즐길 수 있다. 럭셔리하지 않지만, 자기 능력에 따라 유유자적한 혼자의 삶을 즐길 수 있다는 능력주의의 화신 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후반부의 그의 서사가 밝혀지면서, 그의 워라밸 삶은 흔들린다. 잘나가던 펀드매니저였지만 서브프라임 사태를 연상케 하는 증권 시장의 위기 이후 주변인을 잃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공진까지 도망치듯 온 그의 문제는 행복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기조를 유지하면서 지역 공동체를 통한 치유라는 애매한 해결로 급히 마무리된다. 여기서 자기책임론은 여전히 어느 정도는 유효하다.



©tvN


현재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오징어 게임'은 그보다는 자기책임론에 더 비판적인 쇼다. 벌써 수많은 분석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이 쇼의 설정은 단순하다. 어떤 돈 많은 1세계 부자들이 즐기는 잔인한 데스게임이 있다. 이 게임의 주최자들은 생존 절벽에 몰린 사람들을 모집해서 추억의 골목 놀이를 모방한 게임에 참여시키고, 미션에 성공하지 못하거나 진 참가자들은 잔인한 방식으로 탈락한다.


'오징어 게임'은 신자유주의의 노골적인 은유이다. 2회,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미션 이후, 이 게임의 잔인한 규칙을 알아버린 생존 참가자들은 계약서에 쓰인 “과반수가 찬성하면 게임을 그만둘 수 있다.”는 조항을 내밀며, 게임 중지를 요구한다. 하지만 그들 머리 위에 걸린 돼지 저금통 안으로 우르르 떨어지는 상금 돈다발. 결국 게임은 재개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민주적 의사결정이라는 환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결국 사람들은 이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이는 오직 한 명임을 안다. 그렇지만 자기가 그 우승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욕망 때문에 레이스에서 탈주하지 못한다. 게임의 룰이 이미 불공정한데도 나만은 열심히 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는 환상을 주입하는 게 이 사회의 운영 원리이다. 적어도 '오징어 게임'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로 추정되는 성기훈을 주인공으로 하므로 이런 현 상황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지만, 그런 불공정한 게임이 흥분을 주기 때문에 인기를 얻고 있다는 역설도 있다.



©Netflix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나갈 수 있고, 개인의 성공과 실패는 자신이 하기에 달려 있다는 능력주의에 기반 한 자기책임론은 늘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도 이 사회에서는 강력했다. 공부해서 주식에 투자하면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는 취지의 프로그램들이 연이어 방송되고, 그런 사례들이 주변에 난무한다. 영혼을 끌어 모아서라도 부동산을 사야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조성되어 패닉 바잉이 일어난다. 유능한 인간은 살아남는다는 판타지가 있어야 게임은 지속된다. 외국인 공매도로 인한 주가 하락, 재벌 기업의 분할 상장, 부동산 개발 사업 비리 등 눈앞에서 이미 규칙이 참가자들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건들이 일어남에도 능력주의의 환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Netflix

하지만 모든 것이 정말 “능력의 문제”일까? 갯마을 차차차에서 여자 주인공인 치과의사 윤혜진은 홍 반장의 직업을 두고 못마땅해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가 실은 ‘서울대 출신’임을 꼬박꼬박 알려주고 그러면 사람들은 혜진과 어울리는 짝임을 납득한다. 현재 능력보다도 과거의 능력인 학벌이 그를 더 설명해주는 경우이다. 이 세계에서는 바닷가 마을 만능인인 홍 반장은 치과의사 혜진과 사귀기 위해 서울대 출신이어야만 했다. 그래야 마음이 불편하지 않으니까.


©tvN

반대로 '오징어 게임'에서는 개인의 능력을 깎아서 불공정한 룰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 유리 다리 건너기 미션, 주연들 앞에는 유리 공장에서 오래 근무한 사람이 있다. 강화유리와 일반 유리를 구분해야 살아남는 이 미션에서 유리 공장 노동자는 오랜 경험으로 둘을 구분해낸다. 그러자 게임 주최자들은 그의 이점을 없애기 위해 세팅을 바꾼다. 즉, 능력주의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 게임을 운영하는 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능력은 빼도록 바꾸는 이 세계에 대한 풍자이다.


©Netflix

두 드라마는 장르가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인 비교는 맞지 않는다. 이 사회에서 개인이 행복을 위해 자기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은 하나의 도덕이다. 우리가 매일 부딪치는 현실이다. 다만 게임의 룰을 뒤집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희생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야 현실은 바뀔 수 있다. 능력주의에 거리를 두지 않고서는 우리의 행과 불행이 내 능력 부족이나 운일 뿐이라는 자기 체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적어도 드라마에선 벗어나는 얘기를 보고 싶다.



글. 박현주 | 사진제공. tvN·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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