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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Nov 10. 2021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더할 나위 없어요

스물네 살 대학생 승혁이는 그의 블로그를 통해서 우연히 알게 됐어요. 누군가의 일기를 합법적으로 볼 수 있는 블로그의 이웃 중 한 명이었죠. 그는 딱 봐도 여느 INFP 유형 사람들처럼 감수성이 흘러넘쳐 보였어요. 강하지만 어딘가 부드러운 얼굴을 가진 그는 시골 오솔길에서 빛나는 햇살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자신의 모습이나, 알록달록 유화물감으로 그린 그림들, 직접 반죽해 만든 쿠키들을 블로그에 차곡차곡 올렸어요. 저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취미를 즐기며 자유로운 에너지를 발산하는 그에 매료됐어요. 그리고 이 인터뷰를 제안하게 됐죠.




글을 쓰는 저는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종종 자유로워지는 듯하거든요. 부끄러운 속마음을 내비칠지라도 그냥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염없이 듣고 싶은 날이 있어요. 그렇게 다른 공간에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승혁이의 이야기가 궁금해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갔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나는 좋아요. (…) 평범한 사람의 일기장 속에는 자신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 차 있어요.’ 가는 내내 가수 이랑의 노래 ‘평범한 사람’의 노랫말을 되뇌고 있었죠.


어떻게 부산에 오게 됐어?


부산과 대구에 있는 대학에 붙었는데, 대구는 원래 살던 곳과 가까워서 되도록 멀리 가고 싶었어. 그래서 부산에 오게 됐지. 낭만이 있어서 온 건 아니야. 힘들었던 그때 그 시절과 거리를 두고 새롭게 살고 싶은 마음으로 온 거 같아.


원래 살던 집은 칠곡군의 조용한 시골 동네잖아. 그 집과 지금 사는 곳은 어떤 점이 달라?


많이 다르지. 일단 칠곡의 집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여러 종류의 새 몇 마리가 지저귀고 있구나.’라고 느낄 정도로 새소리가 구별되고 가까이 들려. 큰 건물이 없으니까 집 주위를 지나는 바람도 다 느껴지고.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하고, 다닐 때 사람이 없으니까 마스크를 안 쓰곤 해. 그 집에 가면 내가 도시에서 싫어하는 것들이 다 사라져서 좋아.


부산 전포동에 살면서 좋은 점은 뭔지 궁금해.


일단 횡단보도를 건너면 서면이야. 서면은 부산에서 해운대 다음으로 손꼽히는 유명한 곳이잖아. 근데 우리 집이 있는 이 골목엔 낮은 건물이 많아. 그곳에 주인장의 유니크한 취향이 담긴 카페나 식당도 많이 생겼어. 카페 거리로 유명한 전포동은 저쪽이었는데 최근 들어 이쪽까지 커진 거야.





이 집에 와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 뭐야?


우리 집에서 친구들의 생일 파티를 자주 해. 그런 날엔 밤늦게까지 놀다가 친구들이 한 번씩 자고 간단 말이야. 그런 날이면 친구들이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숙면을 취해. 심지어 불면증이 있는 애들도 우리 집에 오면 신기할 정도로 잠이 잘 온다고 해. 우리 집에 잠옷을 놔두고 주기적으로 와서 자고 가는 친구들도 있어.


너는 전원생활을 한 경험이 있고, 개성도 강하잖아. 너만의 공간을 어떻게 꾸미고 싶었어?


이 집에 처음 이사 올 때는 꼭 필요한 것만 두고, 요즘 스타일에 맞게 깔끔하고 미니멀한 공간으로 꾸며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살다 보니까 집이라는 게 사는 사람의 성격과 취향을 따라가는 것 같아. 의도한 건 아닌데, 자꾸 뭘 채우고 좋아하는 걸 놔두다 보니까 이 집에 산 지 1년이 지난 지금 이 집이 ‘나와 꼭 닮은 공간’이 된 것 같아.


이 집의 어떤 점이 너랑 닮았다고 느껴? 우선 첫인상은 식물이 많아서 생기가 있다고 할까? 침대나 책상 위치도 자주 바꾸고 변화를 준다고 했잖아. 그것도 너의 성격과 닮은 거야?


우선 시커멓고 칙칙한 것보다도 밝고 생기 있는 게 좋아. 친구들 말로는 내가 30초마다 기분이 바뀐대. 오죽하면 다 결정하면 말하라고 할 정도로 변덕이 심하대. 감정도 순간순간 바뀌어서 한순간 엄청 우울했다가 갑자기 밝아지기도 하고. 인테리어에도 내 감정 변화와 마음 상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 가끔 이런 내가 예민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그래서 좋은 점도 많아. 재미있게 살 수 있잖아.





이 집에서 가장 애착을 느끼는 물건이 무엇인지 궁금해.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혼자 가만히 있으면 생각에 깊이 빠지니까 뭐라도 하려고 물감을 사서 마음 가는 대로 캔버스에 그렸어. 처음엔 붓도 없이 손가락으로 그렸는데, 다 그리고 나니까 그날 하루 동안 휩싸여 있던 고민이 마법처럼 싹 없어지는 거야. 다 그려진 그림을 보니까 ‘어, 나 좀 잘 그렸는데’, ‘손에 물감이 많이 묻었으니까 씻어야겠다’ 하는 생각밖에 안 났어. 그림을 그리기 전에 든 우울한 생각을 그림에 가둬버린 거야. 그래서 이 그림을 볼 때마다 그때 그 감정을 멀리서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됐어.





혼자만의 시간에는 주로 어떻게 보내?


내가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인데, 혼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공허하기 이를 데 없어. 미래를 생각하면서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고 외로운 마음이 들어서 혼자 있을 때 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취미가 됐어.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는 시간은 잘 때 말고는 없는 것 같아. 가끔은 남들처럼 침대에 널브러져 쉬고 싶은데 아직은 그게 잘 안 돼.


부산은 너에게 의미 깊은 곳인데, 왜 도시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요즘은 부산을 떠나고 싶어. 이 도시가 내겐 너무 답답해. 산책하다가 길에 마구 버려진 쓰레기나 도로 위의 시끄러운 오토바이들을 마주할 때도 그렇고. 건물 사이에 나를 가둔 기분이 들어서 종종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물론 서울은 호기심이 생겨 가고 싶지만. 서울은 부산보다 더 큰 도시잖아.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궁금해.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유튜브에 ‘No better Feel-ing’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이유가 궁금해.


가수 씨엘의 노래 제목인데, 스물한 살 때 그 노래를 듣고 제목이랑 가사 내용이 마음에 와닿았어. 직역하면 ‘더할 나위 없다’는 뜻이야. 내가 이해한 바로는 항상 지금 느끼는 감정을 맘껏 누리자는 거야. 많은 사람이 나중에야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잖아. 갓 스무 살 된 사람들은 고등학생 때가 좋았다고 하고, 30대가 되면 20대가 좋았다고 하고 말야. 사람들은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는 걸 잊고 새로운 시작 앞에서 망설이는 것 같아. 누구나 지금이 가장 좋은 나이고, 다 좋을 때라고 생각해. 난 다 지나고 나서 후회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지금의 나를 온전히 좋아하려 노력하고 있어.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도 없고, 너무 이른 나이도 없다고 생각해.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늘 지금처럼 더할 나위 없이 살고 싶어. 나이를 먹어도 매 순간 설렘을 느끼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면서. ‘나는 나이가 있어서 못 해’ 같은 후회하는 마음 없이. 늘 현재 기분과 상황에 충실하고 과분하게 바라지 않으며, 내가 갖지 못한 걸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내가 가진 걸 소중히 가꾸며 살고 싶어. 또 외로이 홀로 상심에 빠지기보다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움을 나누며 살았으면 좋겠어.



글. 정규환 | 사진. 태평

전문은 빅이슈 262호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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